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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춘매(春梅) / 김애자

춘매(春梅) / 김애자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한 번도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에 대해 많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키가 훌쩍 크고 말수가 적으며 고집이 세다는 것을.

그뿐이 아니다. 아버지는 길을 걷다가 소낙비를 만나도 결코 남의 집 추녀 밑으로 들어가 비를 피한다거나 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리고 시와 그림을 좋아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달빛 아래서 매화를 즐겨 그리셨다는 이야기를 늘 어머니에게 들어왔던 것이다.

오늘은 봄비가 내린다. 입춘이 지나고 처음으로 내리는 비다. 바람조차 잠든 저녁답, 이슬비에 함초롬히 젖은 가로등 불빛이 퍽이나 환상적이다.

지금쯤, 고향 집 동편 화단에 매화나무는 한창 꽃망울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삼동의 매운바람을 이기고 온누리에 첫 봄을 알리는 전령의 꽃, 매화의 그윽한 향기가 그립다.

매화가 피면 어머니는 제일 먼저 딸에게 꽃소식을 전해준다. 그분은 오랜 세월 동안 외로운 혼을 만나 영원을 이루듯 매화를 가꾸어 왔다. 입춘이 지난 봄비 끝에 매화가 피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창지문을 열어보신다. 묵은 가지에 수정같이 맑은 생기로 하얗게 피어나는 매화를 완상하는 어머니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직도 팔순을 넘긴 노인답지 않게 흐트러지지 않은 몸가짐이 조심스럽다. 모시올 같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쪽진 모습이며 굽지 않은 반듯한 어깨선이 그러하다.

"무정한 사람, 무슨 역마살이 끼어 그렇게도 떠돌다 갔담, 쪽박에 밤톨 같은 어린 것들만 두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바느질하며 혼자 되뇌던 말이다. 쪽박의 밤톨이란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나는 어머니의 그런 푸념을 귓등으로 흘려버리곤 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간 지금은 어머니가 신음처럼 내뱉던 그 말이 가슴 아프게 되살아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의 서른여섯이던 어머니의 나이보다 열세 살을 더 먹고 나서야 정말 아버지는 무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오십이 다된 딸이 노랗게 빛바랜 사진으로 삼십대의 젊은 아버지를 대하면 아직도 바람 부는 벌판을 혼자 걷고 있는 것 같다.

옛말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면 평생 외롭고 어머니를 일찍 여의면 평생 슬프다고 했다. 유년시절의 일이다. 명절날 아침이면 쪽박의 밤톨끼리 차례를 지냈다. 아버지 사진을 내다 놓고 서투른 글씨로 큰 오빠가 지방을 썼다. 고사리 손으로 잔을 올리는 우리들 등 뒤에서 어머니는 행주치마로 눈물을 닦곤 하였다. 이렇듯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은 언제나 적연한 곳으로 우리들끼리만 밀려나온 듯 외롭고 쓸쓸하였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것은 일제시대에 창씨개명 문제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부터다. 타고난 성품이 대쪽 같던 아버지는 그 일을 기회로 방랑객이 되고 말았다. 한 번 집을 나서면 5년 이상 해를 넘겼다는데, 어쩌다 집에 온다 해도 고작 삼사 일 머물면 다시 떠나갔다고 했다. 우리 삼남매의 터울이 뜬 것은 어머니가 몇 년에 한 번씩 하늘을 보고 별을 땄기 때문이다. 여인이 수태할 때가 되면 동경 간 서방님도 돌아온다고 했는데, 아버지도 그런 삼신의 조화였던가, 중국 상해에서, 때로는 만주 하얼빈에서 소리 소문 없이 돌아와 우리 삼남매가 태어나는 인연을 만드셨기에 말이다.

어머니는 나를 낳을 때 산고가 컸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도 산모의 건강이 나빠 아버지께 전보를 쳤다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아버지는 매화나무 한 그루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고 했다. 그 길로 동편 화단에 매화를 심어 놓고 어머니에게

"저 매화나무는 우리 딸이 태어난 기념으로 심었소, 매화처럼 성정이 맑고 고운 딸로 키웁시다."

이렇게 말씀했다는 것이다. 위로 아들 형제를 두고 얻은 딸이라 아버지의 기쁨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강보에 싸인 아기를 자주 안아주었다며 길 떠나기 전 날 밤에는 지필묵을 꺼내다 묵매 한폭을 그리셨다. 화제는梅以冷而花 其品潔" 이라고 써 어머니께 주었다고 한다. 어쩌면 당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아내와 어린 딸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말씀이 아니었던가 싶다.

아버지는 다음 해, 해방을 사흘 앞두고 객지에서 얻은 돌림병으로 '만주 길림성 부여현 부여가 동문외구'에서 서른여섯 나이로 불귀의 객이 되었다. 암울한 시대에 항상 높은 이상과 절대의 자유를 지향하던 그분은 가족들이 찾아갈 무덤마저도 이국땅에 두고 가셨다. 내가 태어난 지 열 달밖에 안되었을 때라니 나도 어지간히 아버지와의 인연이 박복한 사람이다.

창밖에는 여전히 봄비가 소곤거린다. 문풍지 바람에도 피가 잦아들던 내 젊음의 뜰에 늘 어두운 그림자로 서성이던 아버지, 매화꽃으로 다시 환생하는 그분의 고혼孤魂이 실려 오는 걸까, 거미줄 같은 세우細雨가 시린 음계로 가슴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