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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콩나물을 키우며 / 변해명

콩나물을 키우며 / 변해명

 

 

 

콩나물을 키운다.

가을에 검은 기름콩油太의 눈이 좋은 것을 골라 물에 불려 싹을 틔우고 시루에 안쳐 놓고 물을 준다. 하루에 열 번쯤, 조금 더 정성을 들여 몇 번 더 물을 주고 콩나물시루 보자기를 덮어 햇볕을 받지 않도록 하고 정갈하고 따뜻한 곳에 둔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시루에 물 붓듯이> 라는 속담처럼 물을 줄 때 뿐, 물은 그 즉시 모두 밑으로 빠져나가고 콩나물은 샤워를 한 모습으로 잠시 촉촉할 뿐이다. 콩 눈에서 싹이 트고 올챙이처럼 꼬리를 내려 고개를 들면 콩들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보게 된다.

혼자 욕심을 부리며 물을 머금고 있는 것도 아니고, 비좁다고 자리다툼하며 자신의 자리를 넓히려고도 않으며 포개어진 대로 서로 얼싸안고 다독거리며 자리를 잡는다. 이따금 받아 마시는 물은 목마를 때 목을 축이는 만큼으로 족하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냇가를 지날 때 손으로 흐르는 물을 떠먹고는 그저 길을 가듯 그만큼의 물로 만족하며 봄비 맞는 새싹처럼 고개를 세운다.

옛날 어른들은 먼 길을 떠날 때면 따로 물을 지니고 가는 것이 아니라 표주박 하나만 달랑 매달고 떠났다. 그런 나그네의 목마른 시간만큼 거리를 두고 물을 주면 콩나물은 한 모금의 물로도 행복한 듯 잘 자란다. 어둡고 비좁은 공간, 서로 어깨를 비비기에도 힘겨운 공간이지만 콩나물은 얌전하게 잘도 어울린다.

어느 날 아이들이 문득 자라 있듯이,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들이 나이만큼 행동하듯이 콩나물은 자신들도 모르게 그렇게 훌쩍 훌쩍 자라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학교에서 매 시간마다 배우고 돌아서면 아무 것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해도 알 것 다 알고 잘 자라는 아이들처럼 이따금 스쳐 가는 물을 머금고 있지 않아도 콩나물은 신기하게도 다른 모습으로 매일매일 잘도 자란다.

그렇게 자라 주는 콩나물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대견하기보다 엉뚱한 생각들로 콩나물에 욕심을 부려본다.

거름을 주면 더 잘 자랄 거라고 콩나물에 거름을 주려 한다. 거름을 주면 콩나물 뿌리에 잔뿌리가 생기고 더 시간이 지나면 거름에서 뿜어 나오는 열로 이내 몸이 썩어버리지만 그런 것은 모른 채 자기 생각대로 콩나물을 키워 보려 한다. , 찔끔찔끔 부어 주는 물보다 물속에 담가 두면 한꺼번에 많은 물을 먹고 콩나물이 더 잘 자라리라 생각하고 물 호스를 대어놓고 좋아라 한다. 그런데 콩나물은 물속에서 자라기는 고사하고 썩어버린다.

콩나물은 이따금 소나기처럼 부어지는 물에 자라는 것이고 그 이상의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 콩나물이 요구하는 만큼의 물주기, 그 정성 하나면 족한 것을 콩나물이 아닌 자신의 생각대로 콩나물을 키우려 한다.

콩나물이 바라는 만큼의 정성으로 지켜보면 스스로 잘 자라는 것처럼 그저 부모가 지켜보는 사랑과 정성만으로도 자신들의 모습으로 잘 자라는 아이들을 부모들은 거름을 주려하고, 물 호스를 대어 놓으려 하고, 무리 속에서 키 재기를 시키려 하고 욕심껏 물을 머금게 하려 한다. 그렇게 자녀들을 자기식대로 키우려는 사람은, 산 속에서 스님에게 칼을 들이대며 불법佛法을 보여 달라고 하던 도둑 같은 생각이 든다.

옛날 산길을 가던 스님이 도둑을 만났다. 그 도둑이 스님의 배낭을 빼앗아 풀어 보았지만 배낭 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화가 난 도둑이 스님에게 말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것이 무엇이요?" "나는 중이니 불법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뿐이요."

"그 불법을 내어놓으시오."

그 말을 들은 스님은 시 한 수를 읊었는데.

 

해마다 봄이면

나무들은 꽃을 피우지만

그 나무를 베어 봐도

그 속엔 꽃이 없네.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그렇게 자라는데, 또래들 속에서는 서로 어울리고 잘 자라 자신들의 인격과 품성을 지녀가고 세상을 살아가는 안목을 넓히고 삶의 길을 스스로 열어 가는 능력을 키우는데, 그들의 학습능력이나 결과만을 보여 달라고 달려드는 어른들을 생각하면 그 도둑과 무엇이 다를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어른이 된 뒤에도 모두 기억하는 바보는 없을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