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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넋대 / 정정자

넋대 / 정정자

 

 

 

어둠이 내리자 독정댁 사랑채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저께 돌아간 독정어른의 자리걷이를 보러 오는 것이다. 어느덧 안채에는 굿상이 차려지고 무당이 들어왔다. 이런 일에는 발 벗고 나서는 황골네가 참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뒤따라왔다.

이윽고 자리걷이가 시작되었다. 굿이 중반에 접어들자 무당은 놋양푼에 쌀을 가득히 담고 참나무 가지에 소창을 휘감아 넋대를 만들고는 방 안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넋대잡을 사람을 찾았다.

그 경황 중에도 넋대를 잡은 것은 독정댁이었다. 무당은 사설을 늘어놓으며 독정어른의 혼을 불러들였다. 서서히 넋대가 흔들리자 독정댁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 온 방안 사람들을 차례로 두드렸다. 혼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독정댁이 불쌍하여 눈물을 흘렸고 독정댁은 무당보다 더 신이 올라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넋대가 독정댁의 새 며느리에게 다가가 사정없이 두들겼다. 그것은 마치 너 때문에 내가 죽었다는 한풀이 같았다. 그에 누군가,

"새사람 들어와 삼 년 나기 어렵다더니, 쯧쯧."

하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가뜩이나 주눅이 든 새 며느리는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 이윽고 넋대는 집밖으로 빠져나갔다. 무당이 굿상에 놓였던 촛불을 새 며느리에게 집어주며 어서 쫓아가라고 소리쳤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키가 작은 새 며느리는 허리까지 흘러내린 복치마를 미처 여밀 겨를이 없이 넋대를 쫓아 나섰다. 발끝에 치맛자락이 걸려 수도 없이 넘어졌다. 그래도 새 며느리는 오로지 촛불 하나를 의지하며 넋대의 뒤를 따랐다.

독정댁이 이른 곳은 마을 어귀에 있는 방앗간이었다. 넋대를 든 독정댁은 커다란 방앗간 문을 미리듯 열고는 여러 기계들의 피대가 괴물같이 걸려 있는 그 안쪽을 헤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무슨 커다란 롤러 앞에 섰다. 독정댁은 넋대로 피대를 사정없이 내리쳤고, 치맛자락을 들어 피대에 걸쳐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고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는 것이다. 피대가 돌아가며 일으키는 바람결에 옷깃이 피대에 쓸려 들어가 일어난 순간적인 사고였다. 현장을 볼 수 없었던 새 며느리는 처참한 시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며 눈물을 쏟았다. 약혼시절, 며칠만 못 보아도 보고 싶다며 며느리 회사로 찾아오던 정 많은 어른이었다.

한참을 땅바닥에 죽은 듯 누워 있던 독정댁이 일어나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아랫말 독정어른의 친구 강화어른 댁이었다. 내 집처럼 찬광 문을 열더니 커다란 술독 앞에 서서 농주 한 바가지를 푹 퍼서는 숨도 고를 사이 없이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독정댁은 목이 말라 있었다. 아니, 독정어른의 혼이 목이 말랐는지도 모른다. 따라간 새 며느리는 다만 악몽 속을 헤매듯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베 열두 발을 끊어 생을 가르는 일을 마치고 자리걷이는 새벽녘에야 겨우 끝났다.

그 후 독정댁은 남편을 잃은 한을 끊임없이 며느리에게 품었고, 죽은 남편을 위해서라면 용하다고 소문난 무당들을 다 불러서 굿을 해댔다. 그리고 굿이 끝난 후에는 잡신을 모셔 놓은 신주단지들을 집안 곳곳에 늘어놓았다. 몸이 아파도 짐승이 병이 나도 독정댁은 그들 신주단지 앞에서 빌었다. 그가 의지할 곳은 오로지 신주단지밖에 없었다.

한편 새 며느리는 자신을 옥죄어 오는 시어머니와 신주단지들 앞에 하루하루 시들어갔다. 앓기를 밥 먹듯 했다. 둘째를 가진 만삭의 몸을 더는 지탱할 수 없었다.

그때 남편이 멀리 직장을 옮겼다. 새 며느리는 그것을 핑계 삼아 남편을 따라 분가를 강행했다. 독정댁의 노여움은 극에 달했다. 스물다섯 칸 넓은 집이었다. 작은동서, 막내동서, 딸 넷, 아들하나, 대종가 맏며느리로 큰소리치던 그 자리에 이제 독정댁 혼자 남은 것이다. 그대로 독정댁은 오랜 세월을 꿋꿋하게 오로지 그가 모시는 신주단지들과 함께 보냈다. 아들이 모시러 가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팔십을 넘었다. 너무 늙었다. 외롭다. 정신이 혼미할 때도 있다. 이따금 지팡이 짚고 보퉁이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이웃 사람이 "어딜 가시려고요?"하고 물으면 "주인이 집을 내 놓으래요."했다. 새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자기 집으로 모셔다 놓고 어머니 짐을 챙기러 시골 집엘 왔다. 지난 세월이 어제 일 같이 생각나서 이리저리 둘러본다.

사치를 좋아했던 독정댁의 한복이 장롱 가득히 걸려있다. 이제 언제 저것들을 입어보실까. 그토록 애지중지 위하시던 신주단지들은 안방에서도 마루 시렁위에서도, 그리고 다락 꼭대기에서도 여전히 새 며느리를 비웃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동안 광 한구석에 놓여 있던 대독이 장독간으로 자리를 옮겼기에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대감단지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뒤란 구석구석 놓여 있던 그 많은 터주까리들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젖어 형체도 알 수 없게 삭아버렸다.

하나 하나 꺼내 들고 밖으로 나왔다. 한곳에 모아 놓고 불을 살랐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허깨비 장난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새 며느리는 가슴앓이를 했는가. 다만 허탈할 뿐이었다.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해 주었던 그것을, 그러나 또한 삶을 옥죄던 그것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한줌의 재로 변해갔다.

어느새 머리가 희끗거리는 새 며느리는 이 글을 쓰면서 가슴으로 울었다. 지난날의 시어머니가 야속해서 울었고 그 시어머니의 일생이 너무 불쌍해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