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있는 풍경 / 김잠복
연휴를 맞아 서울에서 아들네가 내려왔다. 승용차를 몰고 천릿길을 한나절이나 달려왔다. 갓 돌을 지낸 손녀를 데리고 나선 걸음은 무척 힘들었을 테지만, 내겐 세상없이 반가운 선물이다. 혈육은 언제 어디서 만나든 꽃이고 잎이다.
하던 일을 밀치고 버선발로 나가 맞았다. 제 어미 등에 따개비처럼 찰싹 달라붙어 곤히 잠든 아이를 보석을 훔치듯 끌어당겼다. 어느 별에서 온 천사가 이리도 고울까. 풀잎 같은 어린 볼에 늙고 처진 내 얼굴을 갖다 댔다. 남들이 보면 호들갑이 과하다 할지 몰라도 이건 순전히 본능적으로 끌어당기는 자석 같은 힘이었다. 누구를 의식해서 억지로 감정을 자제하지 않아도 될 할머니가 된 모양이다.
온 집안이 금세 활기를 띤다. 적막강산이던 공간이 벌떡 일어나 생기가 돈다. 졸고 있던 거실 공기가 순식간에 일어나 설레발을 친다. 며칠째 베란다에 군자란 꽃이 필까 말까 망설이던 참이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일시에 망울을 터뜨리지 않았는가.
남편과 아들은 가지고 온 짐을 정리하고, 며느리는 아이에게 수유를 하는 동안 나는 저녁 밥상 준비를 시작한다. 며칠 전부터 딴에는 솜씨를 부려 몇 가지 밑반찬을 준비했다. 손길이 많이 들어간 생선전은 냉동실에서 꺼내 익히고 고사리와 물미역, 시금치나물은 삼색으로 정갈하게 담는다. 이제 어묵조림을 데우고 생선찌개 끓일 일만 남았다.
한창 김치냉장고에서 곰삭아 맛이 깊어진 김장김치를 내고, 살얼음이 낄 만치 시원한 식혜는 후식으로 낼 것이다. 김치에 찌개 한 가지만 있으면 평소 우리 부부는 다른 찬이 그다지 필요 없지만, 자식은 더 신경이 갔던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를 중심으로 다섯 식구가 둘러않았다. ‘아, 가족이란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에 울컥했다. 이마를 가까이 대고 고슬고슬한 밥 위에 생선살을 발라 서로에게 올려주는 식탁 풍경이라니…. 나는 이 순간을 행복이라 부른다. 이런 순간이 모여 가족은 진정한 혈육의 울타리를 더욱 탱탱하게 치게 되리라.
가족은 혈육과 인연으로 만난 이들이 함께 밥상 앞에서 영혼을 나누고 살찌우며 돈독한 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어미가 주는 것을 납죽납죽 받아먹는 아이. 입이 오물거릴 때마다 ‘아이구’ 라는 탄성을 지르며 가족은 이어간다. 아이가 장난감에 정신을 팔다가 동그란 눈으로 살짝 뒤돌아보며 웃어주는 재롱에 온 식구가 까무룩 잦아지는 웃음소리가 이중 창문으로 훌쩍 넘어간다.
아들은 몇 해 전에 짝을 만나 인륜지대사를 치렀다. 이듬해 손녀가 태어나고부터 한결 믿음직한 가장으로서 철이 들어가는 모습을 본다. 자식이 자기 자식을 낳고 길러봐야 제대로 철이 든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어느새 내 가슴에 똬리를 튼다. 저희도 이제 가족을 알아갈 것이다. 그래서 황금연휴를 우리가 있는 울산에서 보내겠다고 한달음에 달려온 며느리의 진심이 살갑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며느리가 처음 우리 집 문턱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를 떠올리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한눈에 인연을 직감했다. 요즘 젊은 사람답지 않게 나지막한 말씨와 선한 눈빛이 주는 편안함에 매료되었다. 예비 시어른의 목도리를 손수 털실로 짠 것을 선물로 준비한 그 섬세함에 오롯이 녹아들었다. 송곳니를 드러내어 웃을 때는 세상 근심을 순식간에 백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모르는 사람한테는 경박한 호들갑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내 솔직한 속내를 감추거나 자제하지 않아도 되는 사실이어서 일부러 내숭 떨 생각은 없다. 그간 내 글에서 두어 번 남편과 아들을 은근히 자랑하며 데려온 적이 있긴 하지만, 턱없이 과장하지는 않았다. 자연스러운 일성을 나열한 것에 불과했었다.
가족은 하나의 나라와 같다. 가족 간에 불만이 있다고 밖에 나가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다면 그건 나라의 기밀을 밖에서 누설하는 것이나 같은 행위일 것이다. 가족문제는 그 안에서 서로 이해와 사랑으로 극복할 일이다. 단 며칠간만이라도 서로 무주하며 가족을 익히겠다는 며느리의 갸륵한 심성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가 없다.
앞으로 살다 보면 오해할 일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른답게 사랑과 이해로 바라보면 지혜로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 식구를 품을 때 어지간한 얼음이야 봄눈 녹듯 하리라. 요즘 젊은 여자들은 시댁 쪽이라며 거부하고 밀어내는 습성이 있어서 ‘시금치’조차 꺼린다는 발은 그냥 하는 말로 치부하고 말련다.
서울 식구가 떠나기 하루 전인데 금단 증상이 일어날 정도로 마음이 허허로웠다. 아이를 사랑하는데도 마약과 같은 중독 현상이 있는 것일까. 막상 내일이면 돌아간다는 것에 마음이 텅 비어 숭숭 구멍이 생겼지만, 남편이나 나나 서로 속내를 감추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쨌든 아들 내외는 서울로 돌아갔다. 아들네를 저만치 바래다주고 계단을 오르는 내내 우리는 서로 침묵만 지켰다. 온 집안의 훈기는 그들이 떠나자마다 급속도로 식어 갔다. 다시 빈집이 되었다.
집안은 다시 적막강산이다. 엄연히 남편과 내가 있고 아들네만 빠져나갔을 뿐인데 그 빈자리가 온통 집안을 점령해서 빈집이라고 표현한다. 조금 전까지 온 집안을 꽉 채우고 재잘대던 장소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두 늙은이만 속빈 공기를 움켜쥐고 어슬렁거린다.
절간 같은 집에 어둑살이 치기 시작한다. 햇살이 물러간 거실에 물빛 같은 그늘이 밀려든다. 더 어둡기 전에 저녁밥상을 차렸다. 낮에 온 식구가 같이했을 때보다 찬은 이미 미각이 사리진 뒤다. 수저질은 하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속도나 음식물을 넘기는 것이 느리기만 하다.
새삼 적막을 느끼는 나이가 되어 슬프다. 그렇지만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는 사실 또한 소중히 여기며 살리라.
아들 내외를 보내놓고 생각 끝에 손전화기를 최선 스마트 폰으로 바꾸었다. 영상을 통해서라도 가족이 자주 만날 수 있도록 거들어 줄 문명의 기계를 소중하게 만지작거린다.
서울 집에 도착할 때를 기다렸다가 영상통화를 해볼 작정이다. 그때 화면에는 가족이라는 꽃이 계절을 망각한 채 화르르 순식간에 함박웃음으로 피어날 테니.
'수필세상 > 좋은수필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꿈꾸는 신발 / 우희정 (0) | 2017.11.10 |
---|---|
[좋은수필]시간 더하기 / 권민정 (0) | 2017.11.09 |
[좋은수필]소년벙(少年兵) / 목성균 (0) | 2017.11.07 |
[좋은수필]넋대 / 정정자 (0) | 2017.11.06 |
[좋은수필]손 / 박성희 (0) | 2017.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