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의 풍경이 되려면 / 김애자
지금은 봄이다. 대지는 신생하는 것들의 기운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럴 땐 강가로 나가는 것이 좋다. 이랑져 흐르는 물결 위로 굴절하는 빛의 눈부심, 볼에 와 닿는 상큼한 바람결이 다함없다.
강변에 깔린 마름 갈대들의 음률도 들을만하다. 그 어떤 악기가 겨우내 살을 깎아내고 육탈한 뼈들끼리 서로를 껴안고 부르는 조곡弔哭을 연주 할 수 있었던가. 강물이 뒤척이는 에로틱한 신음까지를.
청둥오리와 도요새들이 끼리끼리 모여 부리로 제 깃을 다듬는다. 더러는 머리를 날개 죽지에 파묻고 조는 놈도 있다. 이제 저 새들은 곧 남한강을 떠날 것이다.
나는 깍지 낀 손으로 무릎을 감싸고 눈을 감는다. 그러면 강변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있는 내가 보인다. 자신을 자연 속에 밀어 넣고 바라보고 있으면 나의 진정한 정체正體를 확인할 수 있다. 이래서 인디언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주 평원이나 산림 속으로 들어가 홀로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했던 모양이다. 최소한의 먹을 것을 가지고 열흘 이상씩 무리에서 떨어져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는 그들만의 성인의식이 현대인들을 부끄럽게 한다. 명상을 통해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확연히 깨닫게 했던 것은 그 깨달음이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정체 찾기와 중심잡기였던 것이다. 가끔 그들이 남긴 말에 밑줄을 긋고 몇 번씩 재독한다.
"홀로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오랫동안 갖지 못하 사람은 그 영혼이 중심을 잃고 헤매게 된다"
나 역시 그들처럼 자연으로의 잠행을 통해 삶의 중심잡기에 들어간다. 자연의 품에 안겨 자신을 바라보면 실재의 상황과 현재의 모습이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빛 가운데서 빛을 보기보다는 그늘에서 햇빛을 보아야 그 빛이 더 돋보이는 것과 같은 소이일 것이다. 홀로 바라본 나의 자화상은 밤기차를 타고 먼 여정에서 돌아오는 모습과 다름없다. 먼지 낀 차창에 어린 자기 모습을 보고 비애와 회한을 느끼지 않을 사람 어디 있을까.
하나 이러한 모습은 도처에서 사는 숱한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어제와 오늘을 판 박아 놓은 것과도 같은 일상의 반복이란 얼마나 권태로운가. 그러함에도 어느 날 문득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살아온 나날들마저 한없이 빠르게 지나갔음을 발견하게 된다. 순간 허탈감과 아쉬움이 뼈에 사무친다. 권태로운 일상일망정 그것이 삶의 근간을 이루는 진실한 것들이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비로소 도요새가 제 부리로 제 깃을 다듬듯이 자신의 부리로 버려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을 쪼아내고 회한으로 얼룩진 깃을 다듬는다. 그러고 나면 삶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다.
지금 나는 노년의 중간지점에 와 있다. 굳이 외진 산협으로 돌아온 것은 자연의 일부로 조용히 살다가 떠나서 싶어서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도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극히 사소한 일이었으나 산협으로 들어와 두 번째 겨울을 맞던 그날의 일은 내 삶의 전환을 가져다 줄 만큼 획기적인 사건에 가까웠다.
눈발이 난분분한 저녁 무렵이었다. 산맥을 타고 넘어오던 바람도 숨을 죽인, 자욱하게 퍼붓는 눈발만이 그저 아득할 뿐이었다. 며칠간 코피가 터지도록 독감을 앓고 난 끝이라 부르튼 입술에 맺힌 물집까지 근질거려 밖으로 나와 본 풍경은 그러했다. 책상 위에다 받아 놓은 두 통의 원고 청탁서가 마감날짜를 넘겨 목을 조르던 초조함도 일시에 사라졌다.
군불로 지펴놓은 낙엽송 향이 코끝에 스몄다.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른 불길과 연기가 고래 깊숙이 흘러들었다. 고래로 흡입된 연기는 굴뚝을 타고 위로 솟구쳤다가는 스멀스멀 아래로 내려와 산허리를 감았다. 산허리를 감고 흩어지는 연무煙霧속에 그가 서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그는 뒷짐을 지고 산 밑에서 눈발이 흩날리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망연함은 차라리 무위자연無爲自然하였다.
나도 자연한 풍경 속으로 걸어가고 싶었다. 걸어가선 연인처럼 뒤에서 그를 껴안고 등에 얼굴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오랜 세월을 사랑하고 신뢰하면서 함께 늙어온 순정이 눈물겨웠다. 너무도 눈물겨워 장독대 앞에서 그가 돌아설 때까지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나 또한 자연한 풍경 속의 인물로 서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사람도 하나의 풍경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능한 자연을 배경으로 하되 홀로 있는 그림일수록 더 좋았다. 두뇌의 잣대로 물리적인 현상을 판단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것들과 만나고 싶었고, 그 무위한 아름다움이 거친 내 삶을 매만져 주었다.
봄이 오고 있다. 이미 남녘에선 매화가 피었다는 꽃소식이 들려온다. 이곳 남한강 가에도 육탈한 뼈들이 서로를 껴안고 부르는 마른 갈대들의 조곡을 제치고 새싹들이 여릿여릿 머리를 내밀고 있다. 순환하는 자연의 지순한 기운을 폐부 깊숙이 호흡한다. 언젠가 적멸로 향하는 길도 이와 같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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