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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단풍 들다 / 김잠복

단풍 들다 / 김잠복

 

 

 

며칠 전, 서울에서 돌아오던 중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을 때다. 평일인데 휴게소 안은 마치 설 대목 시장처럼 사람들로 북적댔다. 주차장은 각처에서 달려온 미끈한 광광버스가 사열해 있고 식당가나 화장실은 초만원이었다.

화장실 앞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주변 사람 대부분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붉은색 상의에 예

쁜 모자와 스카프로 치장한 것이 단풍놀이에 나선 이들이 분명했다. 그런데 저만치 화장실 안 한쪽에 마련된 거울 앞 풍경에 자꾸 시선이 꽂혔다. 그 복잡한 공간에서 얼굴을 거울에 갖다 대고 연신 분첩을 토닥거리고 립스틱을 바르며 유난을 떠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힐끔힐끔 쳐다보자 오리려 나 예뻐?’ 하는 표정이 나를 더 의아하게 했다. 은연중에 안 사실은 모두가 칠십대 시니어 단체라는 사실에 더 관심이 갔다.

서로 무릎관절이 탈이 났다고, 허리가 아파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을 하면서 시선은 연신 거울 속 얼굴을 분칠하는 데 정성을 다했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죽을 때까지 예쁘다.’는 소리를 원하는 건 빈말이 아니었다. 취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모두가 발그레하게 흥분된 얼굴로 화장실을 나서는 그들 등 뒤에서 여자를 읽었다.

그랬다. 육십은 이미 인생이란 가지에 달린 단풍잎 신세가 됐다지만, 곱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 젊어 한때 곱던 얼굴과 펄럭거리던 에너지는 식구들한테 다 내어주고 낡은 몸뚱이는 소슬바람에도 꽃비로 지는 단풍이 파리 숙명인 것을. 붉은 웃옷에 분단장하고 싶은 것이 아직은 여자라는 솔직한 본능이리라. 광장을 가로질러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가는 풍경은 마치 샛바람에 팔락거리는 철부지 소녀의 치맛자락처럼 여리고 예뻤다.

끼리끼리 어깨를 비비며 하찮은 우스갯소리에 아이처럼 깔깔 맞장구를 친다. 누군가가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부르는 한 소절의 유행가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몸짓을 더해 가며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그들의 유흥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함께 어우르고 쓰다듬었다.

그 세대 아낙들은 유교적인 가부장제에 억눌리고 무시 아닌 무시를 당해가며 지낸 질곡의 삶이 대부분이었다. 한 집안의 며느리는 부모 봉양이 당연하고 아랫세대한테는 섬김을 받지 못한 억울한 시대를 산 증인이다. 지지리 가난했던 살림살이에 에오라지 가족을 위해 젊음을 송두리째 반납하느라 정작 본인 인생은 대책 없는 미래였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늙은이가 자신인 것에 회한과 탄식이 밀려왔을 가련한 늙은이가 아니던가.

서리가 한 움큼씩 내린 푸석하고 성근 머릿결에 수분을 잃어버린 얼굴은 거울 속에서 마치 삼베수건을 쥐어짠 듯 볼품없이 초라해 저절로 한숨이 나왔으렷다.

현대는 여자들이 대접받고 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모했다. 남정네들만 인간다운 대접을 받았던 것을 보고 들은 나로서는 부정하지 않겠다. 누가 그들의 지난했던 삶을 감히 알아줄까. 그런 자신이 안쓰러워 몸부림치듯 법석을 떨어보는 단풍놀이, 그 유흥이 단순한 놀이만은 아니라는 것에 코끝이 다 찡하다. 어쩌면 신명 같고 어쩌면 억눌린 한을 쏟아내는 것 같은 몸짓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들은 이미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몇 순배쯤 술잔을 돌렸을 것이다. 고장 난 벽시계같은 유행가는 절규하듯 가슴 맞대어 외쳤을 거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신명으로 뒤뚱거리다가 헐렁해진 허리춤을 몇 번이고 추슬렀을 거다. 본래 우리 민족은 춤추고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기질은 타고났다고 하지 않는가. 아직 가슴은 여자이고 청춘인 것을 감히 누가 나무라고 싶을까. 그렇게 한참이나 정신을 팔고 있다가 나는 하마터면 울산행 버스를 뫃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