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 류영택
식탁위에 놓인 뚝배기를 바라본다. 생전에 어머니가 쓰던 물건이다. 지금은 식탁중앙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동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법랑용기에 자리를 내주고 주방 한구석에 밀려나는가 싶더니 끝내는 대문 앞에 버려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양 볼을 감싸듯 두 손으로 뚝배기를 감싼다. 식사를 마쳤지만 아직도 따스한 온기가 손바닥에 느껴진다. 잠시 눈을 감고 그렇게 있다 보면 뚝배기의 따스한 온기가 어느새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처럼 내 가슴에 전해진다.
뚝배기는 어머니의 모습을 많이도 닮았다. 테두리에 비해 둥그스름 넓은 속은 육남매를 품어 안기에 부족함이 없고, 거칠고 두터워 모양새는 없지만 그 속에서 우러나는 된장찌개의 변함없는 맛은, 힘든 삶을 살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은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 같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거무스름한 겉면이 햇볕에 그을린 어머니의 얼굴모습처럼 거칠기 그지없지만, 가슴으로 전해오는 그 따스함은 언 손을 녹여주던 어머니 겨드랑이의 체온처럼 느껴진다.
어머니는 늘 된장찌개를 끓였다. 먹고 뒤돌아서면 배고프던 시절 된장찌개는 하얀 이밥에 고깃국만큼이나 우리가족의 중요한 영양식이었다. 파, 마늘, 된장, 고추장을 넣은 뚝배기에 된장찌개가 끓을 때면, 그 냄새만 맡아도 입가에 군침이 돌고, 보글보글 바닥에 내려앉은 멸치가 허연 배를 뒤집으며 위로 두둥실 떠오르면 ‘달그락’ 형제들은 일제히 숟가락을 부딪쳤다. 우리는 두레 판에 둘러 앉아 어머니의 사랑을 퍼 날랐다.
나와 형제들은 구수한 된장냄새를 맡으며 그렇게 몸과 마음을 키웠다. 마당 한쪽에 우뚝 선 감나무도, 봄이면 피어나던 담장 아래 한 떨기 민들레꽃도 어머니의 된장냄새를 먹고 자란 셈이다. 때로는 창호지 너머로 들려오던 소리마저 얼어버리는 한겨울 저녁 답에도 설핏 코끝에 풍겨오던 그 냄새 때문일까. 삽짝을 지나던 떠꺼머리 아이도 머리를 끌쩍이며 마당을 들어서곤 했다.
그러고 보니 뚝배기는 우리 가족의 애환과 당시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물이나 진배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수십 년이 되어간다. 어머니는 임종 전에 모든 일을 유언으로 정리해두셨다. 많은 유산을 남긴 것도 아니고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이었던 만큼 내게 돌아올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니 재산에 관한한 나는 얼굴 붉힐 일도 신경 곤두세울 일도 없었다. 작은 바램이이라면 부모님의 손때가 묻은 물건이나마 하나 물러 받는 것이었다. 나는 남모르게 마음 한곳에 점찍어 둔 게 있었다.
값비싼 것도 아니고 결코 욕심을 낼 물건도 아닌데, 물건에 미련을 두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요상해서 값어치를 떠나 마음에 드는 유산이라면 누구든지 꼼수를 부릴 수 있겠다 싶었다. 재산 싸움은 부부간에도 욕심을 부리게 된다. 욕심 앞에는 체면도 없다. 자주 있는 기회도 아니고 이참에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내 것이 된다. 자존심이나 체면이 손상되는 시간은 짧지만 그것을 소유하는 시간은 길지 않는가.
부끄럽지만 이 물건이 그 격이다. 나는 몸 져 누운 어머니를 걱정하면서도 틈만 나면 딴 궁리를 했다. 다행히 내 것이 됐지만, 당시 내 마음은 늘 콩밭에 가 있었다. 임종이 가까운 어머니를 앞에 두고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못난 자식이라 한들 어쩔 수가 없었다. 형님 집 축담위에 놓인 그것들을 흘깃 쳐다볼 때마다 아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집에 갖다 놓아야지.
하지만 어머니는 맏이 우선이라며 형님께 모든 것을 다 주고 돌아가셨다. 미리 점찍었다고 속내를 분명히 비쳤지만, 어머니의 임종을 앞에 두고는 더 이상 욕심을 낼 수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형제들은 내가 점찍어둔 물건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물건이었지만 형제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슬슬 눈치를 봐가며 생전에 어머니가 쓰던 물건들과 형님 집 장독대에 엎어져 있던 요강과 뚝배기를 고스란히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형제들은 유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듯도 했지만, 내 속 마음을 눈치 채고 일부러 모여 의논까지는 하지 않았더라도 이심전심으로 양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밤잠을 설치는 버릇이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꿈을 꾸었다. 생시처럼 낮에 사달라고 조르던 운동화를 갖고 싶어 잠결에 '운동화'를 부르짖었다. 아닌 척 시선을 감추었지만 형제들은 내 눈빛을 보면 명경을 들여다보듯 내 속을 다 알아 차렸다. 가재미눈을 뜨고 장독대를 바라보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형제들은 생각 했을 것이다.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옛날 버릇이 나올까. 그런 생각에 미치자 곰살궂은 형제들의 마음 씀씀이가 찌릿하도록 고마워진다.
물건이라는 게 평소에는 관심이 없다가도 누군가가 눈독을 들이면 별 것 아닌 것도 그 속에 대단한 게 있지나 않을까 의심을 하며 서로 가지려고 경계의 눈초리를 보낸다. 크게 값이 나가는 물건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을 하자면 형제들 중 누구라도 부모님의 손때가 묻은 물건을 왜 갖고 싶지 않았겠는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아내는 설거지하게 자리에서 빨리 일어나라는 눈치다.
나는 손에 감싸고 있던 뚝배기를 내려놓는다. 아내는 식탁에 내려놓은 뚝배기를 얼른 싱크대로 가져간다.
어머니가 남기고 간 뚝배기, 아내는 된장찌개를 끓일 때마다 음식은 손끝에서 우러난다며, 자신의 음식 솜씨를 자랑한다.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리고 빙그레 웃는다.
아내는 내가 왜 웃는지 웃음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법랑용기를 장만하고 더 이상 쓸모없다며 뚝배기를 대문 앞에 내다 놓다 내게 야단맞던 일을 떠 올렸을 것이다.
아내도 따라 씽긋이 웃는다.
뚝배기에는 어머니와 아내의 손때가 묻어있다.
물건도 제 것이 되려면 사람사이처럼 연이 닿아야 한다. 그저 욕심으로 얻은 것이라면 오래가지 못한다. 남의 손을 타거나 그것으로 인해 자신과 가족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오랜 세월동안 물건을 아끼는 마음과 정성이 담겨있는, 자신의 손때가 묻은 물건이라면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애착이 간다. 연이 닿아 함께 한 세월, 그 세월의 흔적이 쌓여 끈끈한 정이 되고 마음마저 닮아간다. 뚝배기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내 대에서 끝날 마지막 매듭이겠지만,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어머니와 형제들을 떠올리게 되고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을 공유하게 된다. 뚝배기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가족의 끈이다.
훗날 아내와 나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소중한 기억,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줄 마음의 끈은 무엇일까.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에 배를 뒤집고 있는 멸치만 봐도 눈시울이 뜨끈해지는 그런 끈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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