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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공기가 달라질 때 / 손훈영

공기가 달라질 때 / 손훈영


                                                                                   

 

긴 연휴가 끝나고 남편이 출근을 한다. 출근가방을 챙겨주며 현관까지 배웅을 한다. 삐리리리, 현관문이 잠긴다. 기다렸다는 듯 세상을 잠근다. 혼자다.

혼자인 것이 너무 좋은 월요일 아침이다. 연휴 동안 계속 식구들과 함께 지냈다. 같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혼자가 되니 혼자인 것이 얼마나 좋은 상태인지를 절감한다. 나를 둘러싼 공기마저 가볍게 느껴진다. 아무런 저항 없이 유유히 물속을 헤엄치고 있는 기분이다.

사람이 무리 속에서 늘 즐겁다는 것은 어쩌면 심오한 경지인지도 모르겠다. 유머러스하고 싹싹해 항상 모임에서 환영받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둑한 고민과 회색빛 허무에 점령당한 채 혼자 생각만 많은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잘돼야 예술가고 대개는 부적응자로 간주된다. 행동보다 생각이 많고 광장보다 밀실이 더 좋은 나는 분명 예술가는 아니니 그러면 부적응자인가. 스스로를 생각해보면 그 어느 때보다 혼자 있을 때 가장 활동적이고 창의적이라는 것은 맞다.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자주 심심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은 나만이 가진 어떤 특수한 체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밤이었다. 문학회 행사가 있었다. 반주 음악이 울리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혼자 조용히 연회장을 빠져 나왔다. 오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밤하늘은 여전히 빗물을 물고 있었다. 톡톡 얼굴에 와 닿는 빗방울이 여진처럼 남아있는 행사장의 소란을 씻어주었다. 돌연 심장 깊숙이 홀연함이 감싸들었다. 갑자기 세상의 얼굴이 바뀌고 새로운 기운이 솟아났다. 타인과의 시간 속에서 조금씩 메말라가던 내 존재가 아연 활기를 띄며 생기로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모임에 함께 있다 헤어져 돌아설 때면, 그 순간 매번 느껴지는 어떤 느낌이 있다. 공기가 달라진다는 느낌이랄까. 나를 에워싸고 있던 대기의 질감이 부드러운 타올천처럼 온 몸에 감겨져 온다. 주름져 있던 가슴이 폐활량 깊이 들이마신 공기로 한껏 펴진다. 몸과 마음이 경계 없이 서로에게 스며든다. 두 개의 내가 비로소 하나가 되는 느낌, 문득 세상이 조용해지는 느낌이다.

‘로리 헬고’라는 작가가 내성적인 사람에 관해 쓴 한권의 책이 있다. 모임에 나갈 때면 자주 가면을 쓰고 필요이상의 외향적 연기를 하곤 한다는 께름칙함이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싶게 했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읽은 책 중 나를 가장 잘 읽어 주는 책이었다. 나 스스로에게 나를 가장 잘 이해시켜주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 성격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었다.

마이어브릭스 성격검사(MBTI)를 토대로 한 성격테스트를 해보니 내 성격은 아주 내향적으로 나왔다. 성격은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나누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가지가 어느 정도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내 성격은 내향성 쪽으로 완전히 치우쳐져 있었다. 떠들썩한 것이 싫고 어울려 다니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은 이유가 내 환경의 특수성으로 인한 마음의 어둠 때문인 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책에 의하면 나는 갈데없는 내향적 인간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마음이 왜 그리 힘들고 갈등에 빠져들곤 했었던 지가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본성은 내향적인데 내향적 성격은 좋지 않는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지낼 수 있는 외향성 쪽으로 끊임없이 바꾸려고 애썼기 때문이었다.

내성적인 사람이란 혼자 산길을 걸으며 자신의 마음속을 하나 둘 뒤집어 펼쳐보는 사람이다. 타인과의 불화보다 자신과의 불화를 더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협동보다 단독 작업에 능하고 스포트라이트보다 조용한 그늘이 더 편한 사람, 화려한 파티보다 코드가 비슷한 한 둘 지인들과의 소박한 담소를 더 우위에 두는 사람, 자기 안에 고독을 위한 장소가 상비약처럼 구비되어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혼자 있는 지금, 나는 안과 밖이 모두 자연스럽다. 몸과 마음이 어긋남 없이 편안하다. 상반된 두 개의 감정 사이에서 참 오랫동안 갈팡질팡했었다. 내내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사람이 사람 속에서 살아야 하지 않나하는 또 하나의 마음 사이에서 자주 흔들려왔다.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는 마음과 혹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닌가하는 자체검열은 언제나 쌍을 이루어 나를 교란시켰다.

‘공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는 감각이야말로 내가 나임을 일깨워주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내 존재의 특별한 감수성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를 잘 이해하고 존중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있고 싶다는 욕구와 세상이 제시하는 바람직한 인간상 사이에서의 갈등을 접기로 한다. 굳이 사교적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이런 나의 성격적 특성을 살려 나만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조용한 시간 속에서 내면 깊숙이 내려 갈수록 나는 점점 더 만족스러워진다.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감정을 분명히 알수록 지금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을 알고 안정될수록 내 주변과 지인들에 대한 더 폭넓은 이해를 하게 된다. 혼자서만 지내면 세상에 대해 이기적이고 몰인정한 사람이 될 거 같아 불안했었는데 오히려 더 열려진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니.

호젓한 물가에서 하루를 보내고 외진 까페에서 어둑한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대면할 때, 부드러운 귤빛 등 아래서 오래 된 책을 넘겨보듯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해 볼 때, 그 때는 바로 ‘숨은 신’을 만나는 시간이다. 신에게 위로 받은 온전한 몸과 마음은 우리들을 두려움 없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게 한다. 자아의 경계선을 넘어 타자와의 진실한 교류를 도모할 수 있게 한다.

고독이 모자라 우리는 외롭다. 고독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타인과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다. 고독이 익을수록 인간의 아픔을 이해하는 마음도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복잡한 현대를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힘은 바로 고독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