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된장 / 김정례
거실 주인이 바뀌었다. 어제 털어 오셨다는 뽀얀 콩이 가득 담긴 함지박이 엄마를 대신하고 있다. 콩 위에 얹혀있는 콩꼬투리 몇 조각은 아직 엄마의 손길이 더 남아있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저기 아프다 하면서도 엄마는 소일거리라며 농사일을 놓지 못하신다. 아버지의 차로 잠깐이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밭은 충분한 소일거리이자 도시에 살면서도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지난여름에 폐질환을 앓은 이후로 자동차 운전이 어려워졌다. 때문에 잠깐 다녀올 수 있던 시골집을 두 번씩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다녀야 했고 일하는 시간과 버스에서 시달려야 하는 시간이 비슷하게 되었다. 엄마의 건강을 염려하여 많이들 말렸지만 어림없는 소리라며 여전히 시골집을 왕래하고 있다. 무, 배추, 상추…, 상에 오르는 여러 가지 소소한 밭작물을 두 분이 얼마나 드실까마는 짬짬이 들르는 자식들에게 한 줌씩 안겨 보내는 재미가 시골길을 재촉하는 것이다. 옥상에 널어놓은 고추를 손 보고 내려온다는 엄마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웃음이 고단함을 밀어내고 있다.
콩 오지지? 이놈의 콩은 심어 놓으면 가을에 털기 힘들어서 그만해야지 했는데 또 하구 말았구나. 그래도 씨 뿌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또 얼마나 오지냐? 하신다. 그렇지만 시간 지나서 수확한다는 그 콩이 얼마나 많이 우리 엄마를 밭고랑에 주저앉혔는지 이미 잊으신 듯하다. 콩이 정말 깨끗하지? 털기 힘들어서 안 했더라면 이거 만져나 보겠냐? 아마 일곱 되는 넘겠다. 여기다 조금만 더 사서 보태면 올 메주도 문제없다. 하시는 입꼬리에 정말 오져하는 기색이 가득하다. 하기야 함지박에 담긴 콩이 유난이 뽀얗고 예쁜 것도 사실이다.
엄마는 맏며느리로 시집 오셔서 대가족에 한두 명쯤 끊이지 않았던 객식구까지 늘 열 서넛이 넘었던 집안일을 꾸리셨다. 더구나 교사이셨던 아버지를 대신하여 품꾼들 부려가며 농사까지 척척 하시던 엄마가 마흔다섯을 넘기시면서 디스크에 심한 공격을 당하셨다. 디스크 수술을 하시고 별로 완화되지 않은 통증을 매일 일삼아 다니던 군왕봉의 산행 덕분에 조금 나아지자 다시금 시골집을 다니면서 소일하고 계신다. 그것이 엄마의 행복이라면 굳이 말리지 못한다. 다만 조금만 줄이기를 바랄 뿐이다.
엄마의 된장은 유난히 맛있다. 무슨 음식이든, 별스럽지 않은 재료일지라도 엄마의 손을 거치면 마술처럼 맛이 겹쳐진다. 된장도 그렇다. 유명하다는 이런저런 재래된장 다 먹어봐도 엄마의 된장 맛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메주를 가르면서 고추씨 빻은 것 약간, 표고버섯 가루를 약간 첨가하신다고 하지만 여름날에 식은 밥을 시원한 물에 말아 한 술 뜨고 날된장을 풋고추 푹 찍어 먹어보면 된장의 참 맛은 판가름 난다. 더위에 시달려 입맛 없다 하면서 시작한 밥이 결국은 제 먹을 것 다 먹고도 서운한 수저를 놓게 만든다. 어떤 이는 메주 띄우는 장소에 아마도 맛있는 균이 있으리라 한다. 된장의 맛은 메주에 피는 노란곰팡이와 비실리스서브틸리스균 그리고 효모가 작용하여 그 맛을 결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의 된장 띄우는 창고에 그러한 효소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고도 된장 하나로 맛있는 나물이며 찌개 등을 충분하게 요리할 수 있다. 그것이 엄마의 된장이다. 아마도 엄마의 체취며 숨결 투박한 손길이 효소처럼 내 몸에 배어들어 있기에 더욱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거실 한켠에 얌전하게 놓인 콩이 서너 달의 숙성을 거치면서 그 맛을 물려받을 것이다. 썩은 콩, 벌레 먹은 콩을 골라내고 하루를 물속에 담가 불린 다음에 큰 솥에 넣고 푹 삶아서 메주를 쑨다. 가마솥에 장작불 지피며 삶아낸 콩은 절구통에서 이리저리 으깨지고 찧어진다. 하루를 불리고 또 솥에 삶아서 무를 대로 무른 콩이 무슨 힘이 남아서 찧기가 어렵겠는가? 하지만 양으로 따져놓고 보면 이런 똑똑한 추리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짓이다. 절구로 비비적거리면서 으깨지는 콩이지만 절구통이 쉴 새 없이 하루 종일 하다보면 어깨가 빠질 듯 아프다. 찧어놓은 콩은 노란 것도 아니고 흰색도 아니다. 갓 찧어낸 메주의 색은 따뜻하고 예쁘다. 이 예쁜 콩 반죽을 네모반듯한 메주로 만든다. 사람이 살면서 꽤나 지혜도 늘고 기계도 좋아져서 더러는 방앗간에서 찧기도 하고 더러는 두꺼운 비닐에 넣어 밟아서 메주콩을 찧는 이도 있다 한다. 하지만 절구통 속에서 익어나는 맛을 따르지는 못할 것이다. 흔히 못생긴 사람을 메주에 비유하지만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메주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유다. 반으로 갈리기만 하고 덜 찧어진 콩알이 간간이 섞여 있는 고운 콩 반죽을 큰 판에 놓고 이리저리 굴린다. 이 과정을 거쳐 조금 더 단단해진 메주를 네 귀를 반듯하게 맞추어서 네모나게 만들어 놓으면 귀티가 나기까지 한다. 이리저리 쳐대면서 육면체를 만들었지만 어느 모서리 하나, 어느 귀 하나 날카로운 모가 나지 않는다. 판에 쳐가면서 육면체를 만들어낸 메주의 모서리는 한복소매의 배래처럼 부드럽고 둥그스름하다. 그런 메주를 못생긴 것에 비유하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어려서부터 메주를 쑤고 김장을 하시는 엄마를 옆에서 보면서 자랐던 나는 그렇게 메주가 완성되기까지는 항상 몇 번의 힘을 보태야만 했다. 자연스럽게 메주를 쑤는 것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듯한 막연한 자신감도 함께 자라났다. 별로 귀할 것 없는 농부의 딸이었던 고모는 시누이 노릇을 단단하게 하며 올케언니인 우리 엄마 덕분에 꽤나 귀하게 자랐다. 매년 하는 김장이며 메주 쑤는 따위의 겨울준비로 힘든 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살더니 결국은 그렇게 시집을 갔고 하나부터 차근차근 배워가는 생활인이 되어가느라 시행착오도 많이 했다. 거기에 내가 하나 더 보태 준 웃지 못한 시행착오가 메주와 함께 했다.
스무 살 남짓 했을 때, 늦가을에 고모 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난 당당하고 짓궂게 고모의 자활의지에 불을 붙였다. 살림살이에 대하여 별로 자신이 없던 고모는 많이 해봤다, 자신 있다 하는 내 자신만만함에 추호의 의심도 없이 끌려들어 왔다. 지금 생각하면 객기 부린 나나 그런 나를 믿고 일을 시작한 고모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당시에 난 내가 어린 줄을 몰랐다. 다섯 되나 되는 메주콩을 사서 우리는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돌멩이 고르고 썩은 콩 골라내어 말끔해진 메주콩을 일단 물에 씻었다. 그리고 세 시간 정도 물에 불린 후 불에 올렸다. 콩과 물을 밥하는 비율로 담아 연탄불에 올려놓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이 끝나고 잠시 쉬었다가 잘 무른 콩을 찧어 메주를 만들려는 옹골찬 계획이었다. 이때까지 난 내가 메주를 잘 쑬 줄 아는 사람인줄 알았고 세 시간 정도로는 콩이 알맞게 불려지지 않는다는 것도 콩과 물의 비율조절과 콩이 끓으면 물이 넘쳐서 뚜껑을 반쯤은 꼭 열어놓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두어 시간이 지난 후 아무 의심도 없이 신나게 목욕탕을 나서서 집으로 오는데 골목 입구에서부터 타는 냄새가 온 동네를 휘어 싸고 있었다. 겨드랑이 밑을 스쳐지나가는 예감이 좋지 못했다. 어느 집에서 뭐 올려놓고 정신 줄 놓았다고 웃으면서도 나에게는 짚이는 바가 있었다. 집에 들어서는데 아뿔사! 콩이었다. 부엌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메주콩은 이미 삼분의 이가 재로 변해 있었고 솥에 불이 붓기 직전이었다. 밤새 불려 퉁퉁 부은 콩을 저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을 붓고 은근하게 끓였어야 마땅한 것을 모든 것에서 어긋난 것이다. 불지 않은 콩, 적은 물, 센 불, 그리고 끝이었다.
그 후, 30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지금도 메주를 쑤실 때면 그때 일을 이야기하시면서 내 오지랖을 웃으신다. 그냥 스쳐가는 일들, 쉬워 보이지만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 일들, 하는 사람만 알 뿐 아무리 열심히 해도 표 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엄마의 콩이 그렇고 메주도 된장도 모두 그렇다. 이 뽀얀 콩으로 엄마는 내년에도 된장을 담가 놓으시고 자식들을 기다리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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