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 박금아
1호선 지하철 안, 광명역 멀리 구름산이 보인다. 산을 넘어온 구름이 쉬었다 간다는 곳, 우리 가족이 튼 세 번째 ‘둥지’였다.
오랜 시집살이가 끝나고 네 식구만 살게 된 첫해였다. 지병을 앓고 있던 내게 또 다른 질환인 폐결핵이 찾아왔다. 결핵은 약을 먹는 순간에 전염력이 없어져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떼어놓아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던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를 데리고 서울을 떠나 광명시 소하동 구름산 아랫자락으로 들어갔다.
새 봄, 새 집, 새 이웃…. 천지가 새 빛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무리 속에 끼어 있으면 우리 가족에게도 따스한 볕이 내릴 것 같았다. 그러기를 한 달여, 결혼한 지 여섯 달밖에 되지 않았던 막내 동서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해 온 두 분 시부모님의 초상을 치르고, 막내 시동생까지 혼인하여 분가한 뒤라 겨우 한숨 돌리던 참이었는데 충격이었다. 다시 한집 살림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한 움큼의 약을 먹는 일은 형벌이었다. 약이 결핵균을 찾아 공격을 퍼붓는 동안, 몸은 고스란히 전쟁터가 되었다.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욕실로 뛰어 들어가 뜨거운 물을 맞으며 플라스틱 빗으로 몸을 긁으면 선홍빛 핏방울이 명자꽃잎처럼 툭툭 터져 나왔다. 살이 쪄야 낫는 병인데 밤낮으로 악몽에 시달리면서 대꼬챙이가 되어갔다. 마음에도 병이 찾아왔다. 집 안 구석구석에서 유령이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다. 아이가 학교 갈 때 함께 집을 나서면 종일 밖에서 떠돌다가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춰 들어갔다.
그날도 깜깜해져서야 집에 갔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지한 적금이 들어있던 손가방이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새벽녘에 전화를 받았다. 처음 듣는 목소리가 가방을 잃어버리지 않았느냐며, 남편이 주워서 경찰서에 맡겨 두었으니 찾으러 가라는 것이었다. 경찰서에 가서 보니 그녀의 말 대로였다. 가방을 찾아 준 사람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었다. 인사를 하러 집을 찾아갔다. 갈색 뿔테 안경 아래로 큰 눈망울을 가진 선한 눈빛의 여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곁에는 그녀를 꼭 닮은 어린 소녀가 손깍지를 끼고 있었다.
“가방 주인이시지요? 들어 오셔요.”
평범한 인사말이 어찌나 따숩게 들리던지…. 자석에 끌리듯 거실 바닥에 올라섰다. 열 명 남짓한 아주머니들과 아이들이 같이 있었다.
“새로 이사 오셨지요?”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손님들을 소개했다. 아이들 학습 품앗이 식구라며 ‘산수’와 ‘과학’, ‘음악’으로 부르고는 자신은 ‘그림’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우리도 초대하고 싶다는 게 아닌가.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그전부터 우리 가족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를 매우 혼란스럽게 했다. 몇 달 전부터 아파트에 나타나 아이들과 하루 종일 밖을 도는 나를 눈여겨본 모양이었다. 새벽기도를 가던 남편이 가방을 주워 경찰서로 가져갔고, 내용물을 확인하다가 가방 주인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며 품앗이 식구로 지내자고 했다. 뜻밖의 제의였거니와, 그러자면 나도 한 과목을 맡아서 가르쳐야 하는데 그럴 의욕이 없었다.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녀는 집을 나서는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겨울 들판에 선 마른 수숫대 형색이었으리라. 그 후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문을 두들겼고, 설득 끝에 우리도 품앗이 가족이 되었다. 무섬증에서도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주말이면 음식을 나누었고, 아이들은 함께 논두렁을 달렸다. 겨울이면 아파트 앞 논바닥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스케이트를 탔다.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어른들도 키를 키웠던 것 같다. 나도 몸무게를 조금씩 늘릴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품앗이 식구들이 부르는 소리가 창문을 타고 올라왔다. “구름산에 갑시다아!” 아침이면 녹초가 되고 마는 나를 일으키는 소리였다. 산에 올라 약수터에 앉아 있으면 소하리 논배미 너머로 전철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처음으로 광명에 집을 마련한 품앗이 식구들의 다음 꿈은 1호선을 따라 가장의 직장이 있는 서울로 가는 것이었다. 네 번의 봄이 지나는 동안 두 집이 이사를 했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도 돌아갈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엑스선 사진을 찍었다. 왼쪽 폐의 위쪽, 꽤 넓은 부위에 하얀색이 선명했다. 의사는 결핵균이 머물렀던 자리라며 더는 폐 기능을 할 수 없다는 말로 무거운 완치 판정을 내려주었다. 아파트 담장 위로 개나리가 노란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리고 그해 늦은 봄, 남편의 갑작스러운 해외 파견 발령으로 우리도 그곳을 떠나왔다.
이십오 년의 시간이 지났다. 우려했던 후유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오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허파의 기능이 떨어지기는커녕, 몸속 그 하얀 자리를 떠올리기만 하면 숨통이 트이고 침침하던 눈이 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정기검진 날, 엑스레이 기계 앞에 서면 등 뒤로 들려오는 촬영 기사의 주문에 가벼운 설렘이 인다. 마음으로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시고…. 호흡을 멈추세요. 찍습니닷!”
“찰칵.”
까만 필름에 찍힌 흰 자리가 또렷하다.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701번지. 하늘 아래 빛 좋은 땅, 광명 터. 생의 찬바람 몰아치던 그 때, 따끈한 어묵 한 그릇을 받아들고 감사했던 내 간이역의 흔적이다. 고추바람 부는 날이면 그 따뜻한 빛 속으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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