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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모정(母情) / 서민용

모정(母情) / 서민용


 

 

 

오늘도 한 가족의 손님이 찾아왔다. 고양이 가족은 매일 같은 시간에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미를 앞세우고 올망졸망한 새끼 다섯 마리가 쭈르르 사무실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이놈들은 내게는 인사도 없이 미리 준비된 접시 주위로 몰려들어 조용히 먹이만 먹는다.

지난여름이었다. 더위를 식히려 사무실 문을 열어두고 있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사무실 문턱 앞에 와서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기는 오래된 골목길이라 길고양이가 많다.

나는 먹다 남은 안주를 살며시 던져주었다. 그런데 그놈은 음식을 쳐다보기만 할 뿐, 얼른 주워 먹지 않았다. 내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인가 싶어 딴청을 부리듯 외면하였다가 잠시 뒤 돌아보니 어느새 음식을 먹고는 다시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러기를 며칠, 이 녀석은 어느새 습관적으로 마실 나오듯 사무실 문턱 앞에 나타났다. 그때마다 주전부리를 던져주었더니 점차로 내 눈치를 보는 시간이 줄면서 널름 받아먹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받아먹는 것이 재미있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음식을 던져주었더니 처음에는 먹지 않다가 나중에는 슬그머니 다가가 주워 먹었다. 고양이는 매일 찾아와 챙겨둔 먹이를 먹고 갔다.

고양이는 어느 날부터 찾아오지 않았다. 무슨 사고라도 나서 다음 생()으로 돌아갔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섭섭하게 생각하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약 한 달 후에 녀석이 다시 찾아왔다. 예전에 앉아있던 그 자리에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맞추려고 하자 저만치 도망가더니 다시 슬그머니 다가오는 게 아닌가. 녀석은 분명 나를 잊지 않았다.

다음날도 녀석이 찾아오자 일부러 준비한 참치 캔을 문턱에 놓아주었다. 녀석은 맛있게 먹다가 어디론가 바삐 달려가더니 조그만 새끼를 한 마리 데리고 와서 먹이를 먹도록 하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를 보호하려고 경계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다음날부터는 음식을 문밖이 아닌 문안 쪽에 놓아두었다. 다른 큰놈들이 새끼를 해칠까봐 경계를 보는 어미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녀석은 주변을 살피더니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살며시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새끼에게 먹이를 먹도록 하고는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다른 새끼 한 마리를 더 데리고 왔다.

그렇게 매일 한 마리씩 불어난 새끼가 다섯 마리나 되었다. 번갈아 한두 마리씩 데리고 나타나더니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새끼 모두를 줄을 세워 찾아와서 여유롭게 먹이를 먹고 사무실 안을 돌아다니기도 하며 즐기다 갔다. 마치 오래 전에 옥이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어릴 적, 어머니는 함바(현장식당)’를 했다. 인부들의 숙식을 제공하다 보니 김치를 담그는 일이 중요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이라 김치는 무한정으로 필요했다. 인부들은 김칫독이나 된장독을 마음 내키는 대로 손을 댔다.

그 김치를 어찌 감당하랴. 열흘에 한 번씩 김치를 담가야 했으므로 가까운 동네의 아주머니를 도우미로 불렀다. ‘옥이엄마라고 불리는 그 아주머니는 딸부자 엄마로 동네에서도 소문난 억척스런 아주머니였다. 그녀의 남편은 뱃사람으로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는 흔한 일이었다. 자식이 여섯인 옥이엄마는 시쳇말로 고무신 바꿔 신을수도 없었다.

마을의 남자들이 대부분 배를 타는 직업이었으므로 남정네들은 의례 뒷일을 서로 부탁하곤 했다. 자신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면 가장 믿을만한 친구에게 식솔들을 부탁하곤 했다. 즉 남편 친구의 그늘로 들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옥이엄마는 젖먹이 막내까지 혼자 키워내겠다고 동네방네 다니며 큰소리 쳤다.

옥이엄마는 부두의 생선 다듬는 일부터 동네 잔치집의 허드렛일까지 닥치는 대로 하며 자식들을 먹여 살렸다. 그녀는 특히 상갓집이나 잔칫집에 도우미로 가는 것을 더 좋아했다. 자식들을 배부르게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정옥이, 둘째 순옥이, 셋째 미옥이, 그 밑으로 동생들이 줄줄이 더 있었다. 그 중 미옥이가 나와 같은 학년이었다. 김칫거리를 다듬으러 부르면 옥이엄마는 미옥이와 동생들을 모두 데리고 나타났다. 그들은 온 식구가 달려들어 배추를 다듬어 소금에 절여놓고는 어머니의 가마솥을 마음껏 비우고 갔다.

어머니는 김치 담그는 날은 그들을 푸짐하게 대접했다. 미리 가마솥에 비록 보리가 섞인 밥이었지만 모자라지 않게 지어놓았고, 옥이 엄마가 데리고 온 자식들을 흘겨보지 않았다. 옥이엄마는 젖먹이에게 한쪽 젖을 물리고 커다란 양재기 속의 보리밥에 배추김치를 얹어 게걸스럽게 먹곤 했다.

단장(斷腸)’이라는 말이 있다. 새끼를 잃은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더라는 데에서 유래한 말인데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큰 슬픔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끼를 보호하는 일은 어미로서 가장 절박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요즘, 자신이 낳은 자식을 학대하고 내팽개친 흉한 뉴스들이 자주 들려온다.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란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내일도 고양이 가족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진수성찬이라도 차려주고 싶다. 비록 미물이지만 그 모정이 눈물겹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