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싸개 / 정성려
우리 집에는 자그맣고 예쁜 키가 창고 벽에 걸려 있다. 오래 전에 담양 대나무 박물관에 구경을 갔다가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사온 것이다. 그런데 막상 쓸 일이 별로 없었다. 키가 하는 일은 1년에 서너 번쯤이나 될까? 참깨를 볶아 껍질을 날려 보내고 뽀얀 통깨를 분류할 때나 쓸 뿐이다. 장식품이라고나 해야 맞을 것 같다.
어릴 적에 우리 집의 키는 내 키와 똑같았다. 오래 사용해서 까맣게 변했고 낡아 떨어진 밑 부분을 삼베헝겊으로 촘촘하게 꿰매어 사용했었다. 그런데 그 키는 하는 일이 무척 많았다. 초가을이 시작되어 논밭에 심은 곡식을 거두어 드릴 때면 늘 마당에서 어머니가 하는 일을 손쉽게 해결해 주곤 했었다.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옆집 아줌마 댁에 소금을 가지러 갈 때면 머리 위에 그 키를 쓰고 가기도 했었다. 그런 키를 보면 어릴 적 생각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른다.
요즘 어린이들을 보면 너무 예쁘고 영특하다. 예쁜 아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남들보다 자식이 많지만 아기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길을 가다가도 우연히 아기를 보면 너무 앙증맞고 깜찍하게 예뻐, 오래 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얼러주며 눈인사를 하곤 한다.
산모들이 임신했을 때부터 아기를 위한 태교를 시작하고 좋은 말, 좋은 음식, 좋은 생각들을 하면서 태아에게 좋은 영향이 미치도록 많은 노력을 한다. 그래서 그러는지 예쁘고 영특하지 않은 어린이들을 볼 수가 없다.
부모들이 온 정성을 어린이에게 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린이를 위한 여러 가지 놀이기구들이 성장과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되는 교육적인 장난감들이다 보니 성장이 빠를 것이다. 아기를 위한 거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조기교육을 시킨 이유도 있을 것이고, 또 영양을 풍부하게 골고루 먹여서 키운 까닭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요즘 어린이들을 보면 코를 흘리고 다니거나 두 돌만 지나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 또한 볼 수가 없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어떠했을까? 젖을 먹여 방에 뉘어 놓은 채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배가 고파 우는 애기에게 잠시 젖을 먹이고 또 일하러 나가기 일쑤였다. 그러기에 애기와 엄마가 눈을 마주치는 시간은 젖을 먹는 짧은 시간뿐이었다. 장난감은 물론이고 TV도 없었으니 성장이나 두뇌 발달이 늦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요즘은 아기를 낳아 기르기 좋은 시대다. 손자 손녀가 있는 집들을 보면 왕자와 공주처럼 귀하고 예쁘게 키우며 자식사랑에 푹 빠져 산다. 환경 탓으로 불임이 늘어남에 따라 임신을 하면 친정, 시댁에서는 물론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서까지 축하 메시지가 줄을 잇는다. 오죽하면 결혼 전에 임신을 하면 제1순위 혼수라고들 할까?
어릴 적에 할머니는 내 별명을 오줌싸개라고 했다. 매일 오줌싸개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어쩌다가 잠을 자다 옷에 오줌을 싸게 되면 버릇을 고치게 하려고 그랬는지 2~3일은 그렇게 나를 놀려 댔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자다가 옷에 오줌을 싼 기억이 있다. 분명히 꿈속에서 화장실이나 요강에 오줌을 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깨어 보면 옷과 요, 이불이 흠뻑 젖어 있었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자는 척 움직이지도 않은 채 그대로 누워 있었다. 얼른 일어나 세수하고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가야 하는데 애가 타면서도 창피하고 혼이 날까 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불을 둘러쓰고 울고 있었다. 엄마와 할머니는 어른이니까 괜찮다지만 동생들한테 창피해서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어나지 않는 나를 엄마는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라. 얼른 밥 먹고 학교 가야지.”
그래도 꼼짝을 하지 않자 눈치를 챈 엄마는 이불 밑으로 손을 밀어 넣더니만 오줌을 쌌다는 것을 확인하고 옷을 가져다주며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엄마도 때로는 혼을 내기도 했지만 오줌싸개 버릇을 감싸 주기도 하셨다.
“오줌이 마려우면 참지 말고 일어나야지.”
라고 타이르셨다. 그러다가 할머니의 눈에 띄면 여지없이 혼이 났다.
2학년 때의 일이다. 꿈을 꾸다가 화장실에서 오줌을 쌌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옷에 오줌을 싼 것이다. 그날은 할머니한테 들켰다. 혼이 날 줄 알고 겁을 먹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오늘은 혼나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부엌으로 가시더니 부엌 벽에 걸려 있는 키를 내오셨다.
“이걸 쓰고 옆집에 가서 아줌마한테 소금을 달라고 해서 가지고 오너라.”
하는 것이었다. 혼이 나지 않고 심부름을 가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할머니가 시킨 대로 키를 쓰고 옆집으로 달려갔다. 옆집 아줌마는 나를 보자마자 다른 때와 달리 대뜸 혼을 내는 것이었다.
“다 큰 것이 언제까지 자다가 옷에다 오줌을 쌀 거냐? 이제 소금 못준다.”
하며 떠밀듯이 대문 밖으로 나가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오줌 싼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아줌마의 큰소리에 그 집 아이들도 방에서 뛰어 나왔다. 할머니한테 혼나는 것보다 더 창피했다. 하는 수 없이 소금도 가져오지 못하고 울면서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할머니는 소금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또 혼을 내셨다. 머리에 쓴 키를 내던지고 마당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때 엄마가 내게 오셔서 일으켜 세우며
“이제 자다가 옷에 오줌을 싸면 안 된다. 알았지?”
하며 달래 주셨다. 어찌나 창피했던지 그 뒤, 밤에 자다가 옷에 오줌을 싼 기억은 없다. 그렇게 해서 나의 오줌싸개 별명은 없어졌지만 키를 보면 그때 일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막내딸과 이야기를 하다가 어릴 적 창피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딸아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뭐 그런 것이 있어? 키를 쓰고 소금을 얻어 오면 오줌싸개 버릇이 없어진다는 걸 엄마는 믿었어?”
한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심부름을 시키면 믿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오줌싸개에게 왜 옆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 오라고 했을까? 그게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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