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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빈 둥지 / 차하린

빈 둥지 / 차하린  

 

 

 

집 근처 인적이 드문 곳에 느티나무 가로수 길이 있다. 날씨가 화창하거나 시간이 나면 이곳으로 산책을 나선다. 긴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천천히 걸어서 굽이진 메타세쿼이아 길을 돌아 삼십여 분쯤 걷다보면 이 길 끝에 선다.

한아름 남짓한 느티나무는 거미줄 같은 잔가지를 수없이 뻗었다. 한여름에는 무성한 잎사귀들이 하늘을 가렸는데 겨울이 되니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찬바람이 씽씽 지나가는 나뭇가지 사이로 온전한 것과 허물어지는 빈 둥지가 다섯 개 보였다. 까치들이 새끼를 키우기 위해서 부리가 닳도록 공들인 난공불락의 성이다.

공중에 매달린 둥지는 인적이 끊긴 폐가처럼 고립되었다. 새끼를 키우던 까치들의 곡진했던 삶이 바람 따라 휘청거리는 둥지에 고스란히 남았다. 온기가 식어버린 빈 둥지를 올려다보니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구순이 다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까치집처럼 낡아가는 집에서 삼십 년 동안 혼자 계셨다. 자식들이 다 출가해서 말상대조차 없다. 낙이라고는 오로지 하루 종일 혼자서 떠드는 텔레비전 보는 것이 전부다.

뚱뚱했던 어머니는 60대 초반에 고혈압과 당뇨가 생겼다. 인슐린 주사를 직접 놓으면서 혈당을 관리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저혈당으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간 적이 서너 번이나 됐다. 이승과 저승을 오갔던 숨 막히던 시간이 자식들 애간장을 태웠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어머니 안부가 궁금할 때가 더 많아졌다. 전화로 안부를 물어보지만 직접 볼 수 없으니 답답했다.

3년 전 어머니를 들여다보는 CCTV를 달았다. 저혈당으로 쓰러질까봐 오남매가 결정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앱으로 수시로 본다. 눈으로 보니 안부전화보다 확실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도 도둑고양이처럼 인기척을 내지 않고 볼 수 있어 좋다. 새우등처럼 구부리고 주무시는 모습이 떨어진 낙엽처럼 맥이 없다.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숨소리까지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 무슨 꿈을 꾸시는지 뒤척이기도 한다. 어머니가 원했던 삶은 어떤 것이었으면 꿈속에서 떠올리는 삶은 어떤 것일까. 평온하게 잠든 어머니를 보고 있으니 티격태격 거렸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가 전부였다. 비만해진 어머니가 안쓰러워서 심부름과 설거지 빨래 집안청소를 자청해서 도와드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조종 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나를 당신 말씀에만 순종하는 마마 걸로 만드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그것이 효도라고 생각하고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길들여졌다. 나이가 들어서야 어머니의 자기중심적 이기심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갈등이 시작되었다.

모녀지간이지만 외적으로 내적으로 너무 달랐다. 애착이 많은 어머니는 자식을 과잉보호하면서 우리의 삶도 좌지우지하고 싶어 했다. 세 분의 오라버니와 막내 여동생보다 첫딸인 내게 더 심했다. 매사를 당신의 가치관으로 시시콜콜한 것까지 간섭했다. 잔소리장이 어머니의 아집과 내 자존심은 번번이 충돌했다. 그럴 때마다 지구가 무너지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파란 하늘, 하얀 뭉게구름, 화사한 햇살,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 푸른 들판에 부는 바람 따위는 어머니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화단에 난 작약도 잡초라 여겨 뽑아버리고 상추를 심었다. 모든 것을 경제적 관념으로만 따졌다.

내 삶의 주도권도 당신이 원하는 대로 휘두르고 싶어 했다. 자식의 모든 일을 알고 싶어 안달했고 에둘러서라도 알아야 직성이 풀렸다. 자식을 소유물이라 여기는 지나친 간섭은 상처가 되었다. 어머니의 어쭙잖은 코치를 따라하는 나약한 딸이 아니라 자신감 넘치는 알파 걸이 되고 싶었다. 절대불변의 법칙처럼 고집을 꺾지 않는 어머니의 아성에서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목소리만 들어도 얼굴이 먼저 찡그러졌다. 집착은 내가 결혼한 후에도 계속되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사랑이라 여겼다.

결혼한 뒤에는 어머니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마음과 달리 유전자로 촘촘하게 엮어진 모녀관계를 마음대로 자를 수 없었다. 어머니는 고혈압과 당뇨로 병원을 다녀야했고 그 뒷바라지를 온전히 내게 의지했다. 그때부터 유별난 어머니를 모시고 20여 년 넘게 대학병원에 다녔다. 생각과 감정이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못하는 우리는 만나면 늘 삐거덕거렸다.

당뇨가 심해지면 망막병증이 생기고 신장기능이 나빠진다. 삶 그 자체를 순응하며 받아들이지 않는 어머니는 건강염려증이 생겨서 매사에 예민하게 굴었다. 신경이 곤두서서 마음을 졸이며 사는 게 보기에 딱할 정도였다. 완곡한 표현도 못하고 느긋하게 참지 못한 말들은 가시처럼 가슴을 찔렀다. 그러면 어머니 스트레스가 내게 전염되어 복리이자처럼 불어났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던 답답했던 날들이 남편이 퇴직하면서 희망이 생겼다.

우리는 수도권으로 이사를 감행했다. 자식을 위한 결정이었지만 어머니 방어권에서 벗어나니 홀가분했다. 병원 가는 일은 어머니 가까이 사는 두 오라버니들께 물려주었다. 처음에는 내가 할일을 오빠들께 덤터기 씌운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멀리 있어도 어머니는 예전처럼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서 그 끈을 계속 잇고 싶어 했다.

성의 없이 전화를 받으면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삐지기 예사였다. 다시는 전화 안한다고 선언하지만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자식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어머니를 다섯 남매가 성토를 해도 그때뿐이었다.

CCTV를 단 후로 내가 생각을 바꾸었다. 누워있기도 하고 멍하니 앉아서 TV를 보는 뒷모습에서 외로움이 보였기 때문이다. 삼십 년이 넘게 혼자 보낸 세월이 얼마나 모질었을까 싶다. 그것도 모르고 지나치게 간섭 할 때마다 잔소리 같아서 듣기 싫어했다. 제발 자식들 신경 쓰지 말고 친구 분들과 재미있게 놀 생각만 하라고 다그쳤다. 그때는 생각해주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그런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허리와 심장이 탈이 났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 간병하러 내려갔다. 일주일간 병실에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와 둘이서 잤다. 난생처음으로 목욕도 시켜드렸다. 냉철한 감정에서 돋아난 꼿꼿한 가시 같은 모난 성정도 구부려진 허리처럼 많이 누그러졌다. 시퍼런 서슬은 어디로 가고 육신은 쪼그라져서 삭정이가 되었다. 한평생 알찬 속을 자식에게 다 내어준 사그라진 몸이 빈껍데기가 되었다. 병실에서 돌아누워 자는 어머니의 초라한 등에는 외롭고 고단했던 긴 세월이 담겼다. 그것을 보니 한평생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려고만 했던 내 가슴이 왜 이렇게 아려올까.

어머니 퇴원이 언제 될지 모른다. 간병을 마치고 집에 와서 어머니가 안 계신 집을 들여다본다. 인기척 없는 집이 쓸쓸하다. 바깥은 폭염이 기승을 부르는데 어머니 집은 온기가 식어가고 있다. 한겨울 추위에 떨고 있던 까치집처럼 빈 둥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