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좁은 여자 / 공도현
아내는 속이 좁다. 양가 선물이 시집 쪽으로 조금만 기울어도 쌍심지를 켠다. 아홉 마디 좋은 소리에 한 마디 싫은 소리가 섞이면 삐쳐 말문을 닫는다. 어제 꼬인 게 아직 풀리지 않았는지 아버지 문병 가자는 문자에 ‘생색내는 거 좋아한다 할까 봐 병원도 못 가겠네요.’라는 답이 온다.
며칠 전 아버지가 대상포진으로 입원하셨다. 어제 우리가 들렀을 때 마침 부산에 사는 여동생이 와 있었다. 학교에 별난 선생이 있다며 얘기하던 중이었다. 교장으로 퇴직한 지 스무 해도 넘은 아버지는 아직도 동생이 들려주는 학교 얘기에 흥미가 많으시다.
그 선생은 공금으로 인심 쓰기, 부풀린 인맥 과시뿐 아니라 알뜰하게 권리 찾아 먹기 등 얄미운 짓만 골라 하는 문제 선생이란다. 말하는 동생은 물론 듣는 우리도 싫은 마음에 인상이 돌아갔다. 사례가 이어지자 은근히 재미가 있어 나중에는 얘기가 끊길까 걱정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 선생은 같은 나이의 동생에게 일종의 경쟁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아직 교감 자격도 갖추지 못한 자신과 교장 발령을 기다리는 동생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도 장학사인 자기 아내를 들먹거리며 교육청이 마치 자신의 손바닥에 있는 듯 허세를 부린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동생이 그 선생에게 교장실 창문에 블라인드를 하나 장만하라며 인심을 쓰듯 말했다. 욕심은 나지만 재 돈도 아닌 공금으로 생색내려는 속이 훤히 보여 단호하게 거절했다. 거듭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기어코 동생 방에 블라인드를 설치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동생 얘기에 푹 빠져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정신을 차려 보니 집에 갈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내는 병원 밥 드시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그리려고 아침부터 장만한 쑥국을 꺼냈다. 식사 때 적당량을 덜어 데워 드시라며 어머니께 설명했지만, 레인지 사용법도 모르는 어머니는 탐탁지 않아 하셨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집에서 세끼 밥을 하다 병원 밥을 앉아 받아먹으니 더 좋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런 호사를 누리는데 식사 때마다 그렇게 하라니 귀찮기도 하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받은 거로 할 테니 도로 가져가라 하고 아내는 정선 들여 만들었으니 약이 될 거라며 다시 권했다. 어머니는 싫다 하고 아내는 드시라 하는 실랑이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 상황이 동생과 그 선생이 블라인드를 두고 벌렸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옆에 있던 내가 “당신 그러니 꼭 그 선생 같다.”며 툭 한마디 던졌다. 그 소리에 가족들은 한바탕 웃었다. 아내는 웃지 않았다. 가족이 웃는 모습을 보고는 쑥국 통을 주섬주섬 다시 보자기에 쌌다.
우리 집 식구들은 그 누구도 아내의 효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쑥국 끓일 때는 아버지의 쾌유를 빌었으리라. 정성을 다해 만든 쑥국을 어떻게든 드시게 하려고 어머니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단지 어머니의 필요와 맞지 않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 선생과 같다고 했지만, 아무도 나쁜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냥 한바탕 웃고 넘겼을 뿐이었다.
아내는 달랐다. 그 선생과 비교당하는 게 싫었다. 동생 앞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둘은 올케 시누이 사이지만 나이가 동갑이라 친구처럼 지냈다. 쇼핑도 같이 다니고, 집안일도 허울 없이 의논했다. 학교에만 있는 동생보다는 세상 물정 밝은 아내가 모든 일을 주도했다. 몇 년 전 동생이 교감 되더니 예전처럼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오히려 가르치려 든다면 사람이 변했다고 언짢게 생각했다. 그 동생이 어떤 동생을 흉보다가 자신이 그 선생과 같다는 말에 웃음 짓는 걸 보고는 속이 확 뒤집혀버렸다.
왜 혼자 왔느냐고 물으시면 뭐라 대답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속 좁은 아내랑 살아갈 날을 걱정하면서 병실로 가는데 맞은편 산부인과 문구가 눈에 확 띈다. ‘속 좁은 여자가 아름답다. 속 좁은 여자가 더 행복하다. 속 접은 여자로 만들어 드립니다.’ 참 요지경 세상이다. 언제는 나쁜 남자가 인기라더니 요즘은 속 좁은 여자의 세상이라니 나로서는 황당하기가 짝이 없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는 나라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아내는 크게 나무랄 데 없는 여자가 그런대로 현모양처이고 외양도 밉지 않게 생겼다. 단지 속이 좁아 탈이다. 요즘 그것까지 대세가 되고 보니 토라진 아내를 나물랄 자신이 없어진다. 오늘은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 아내의 좁은 속을 달래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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