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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잘 가요, 아버지 / 김상영

잘 가요, 아버지 / 김상영   

 

 

 

그해 여름, 나는 배탈이 나 며칠째 설사를 해댔다.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하늘이 노랬다. 사립문 언저리 대추나무에 기대앉아 점방 앞에서 노닥대는 동무들을 딴 세상처럼 바라보았다. 어른들은 아침밥을 깨작거리다가 나앉은 나를 보다 못해 병원에 보내기로 했다. 제풀에 낫겠지 했지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 거다. 아버지가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병원으로 가게 됐다. 할머니에게서 모처럼 손자 진료비 턱으로 용돈을 타신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읍내로 가는 시오리 신작로는 울퉁불퉁하고 자갈이 많았다. 더구나 굽이도는 윗재를 넘어야 했다. 자전거를 끌어 고갯마루에 오르고 나면 안평면장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재였다. 자전거 짐받이에 나를 태운 채 힘겹게 밀어 올리는 아버지 등이 금세 땀에 젖었다.

아부지, !”

나는 어지간히 참을 수 있었지만, 아버지가 안쓰러워 뒤가 마렵다고 했다. 장날이 아니어서 넘나드는 사람이 드물어 다행이었다. 산은 첩첩하고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버지는 길섶 넓적 풀을 여러 겹 뜯어 건넸다. 내리막길에서는 참말로 급해서 한 번 더 쌌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셨다.

읍내 하면 공생병원과 후광의원이 전부였을까, 아니다. 역전 삼거리에 조그마한 의원이 하나 더 있었다. 보건소였지 싶다. 나는 엉덩이 주사를 겁나게 맞았고 거짓말처럼 설사가 멎었다. 링거액이 똑똑 떨어질 때 아버지와 의사 선생은 주막으로 내빼셨다. 술값은 누가 냈을까, 열에 아홉은 아버지셨을 거다. 얻어먹고는 도무지 견딜 수 없으신 분, 마음 여리고 경우 바른 어른이셨다.

해군에 입대하고 진해에서 중사로 진급했을 즈음이었다. 숨 가쁜 날을 지나 약간의 여유를 갖게 되자 오토바이를 샀다. 편찮던 아버지가 나를 보자는 연락을 받자 오토바이 길을 낼 겸 한달음에 고향으로 달려갔다. 자리보전하던 아버지가 힘겹게 몸을 추스르며 읍내로 가자 하셨다. 아버지가 가위로 수염을 다듬자 어머니는 새 옷을 대령하셨다. 자식과의 마지막 나들이란 걸 짐작하신 듯했다.

아부지요, 내 허리 꽉 잡으세이.”

힘 좋은 오토바이는 자전거 끌어 올리기에 숨 가빴던 윗재를 가볍게 넘었다. 정미소 사장만이 부리던 오토바이를, 그것도 125cc를 내 자식이 타니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오일장은 이미 썰물 빠지듯 끝나가고 있었다. 가을빛 고운 마늘 전 언저리 허름한 막걸릿집에 마주 앉았다.

월산 어른, 오랜만이시더.”

늙은 주모가 어질러진 술상을 훔치며 반가워했다. 장에 올 때마다 들리시던 단골집인 듯했다.

남이 장에 가니 거름지고 간다는 속담이 있다. 아버지가 그 짝이셨다. 장거리가 없는 철에도 어지간하면 장에 가고 싶은 기색이셨다. 장날 하루는 고된 일상에서 온전히 해방되고 싶으셨던 거다. 막걸리로써 시름을 잊었으니 술 좀 덜 드시란 지청구를 노래처럼 듣고 산 건 당연했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그 좋아하던 술이었건만 입술만 축였다. 허드레 돼지고기 안주 접시는 내가 비웠다. 아버지는 연민 어린 눈으로 지긋이 나를 보고, 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아버지를 더듬었다.

윤경이는 잘 크냐?”

먹고 살 만은 하고?”

장남 노릇을 제대로 못 한 실망은 세월에 사그라지신 듯했다. 궁핍한 살림을 돌봐드려야 했으나 장가를 들어 분가하게 된 터였다. 아버지 술값 정도는 드려가며 살고 싶었지만, 처자식이 눈에 밟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진해 산다는 큰아들인 갑제요?”

부자간 애틋한 대화를 엿듣던 주모가 안주 삼아 끼어들었다. 그러면서 눈을 껌뻑껌뻑했다. 아버지가 술자리를 견디기 힘들어하자 얼른 모시란 뜻이었다. 서둘러 지갑을 꺼내자 주모가 쭈뼛거리며 입을 뗐다. 외상값이 적잖다는 거였다. 주모는 오늘내일하는 아버지 앞에서 차마 못 할 말을 한 듯 얼굴을 붉혔다. 나는 지갑을 비우면서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드리지 못했던 술값을 벌충한 격이었다. 초췌하신 아버지 눈가로 설핏 눈물이 번졌다.

아부지요, 울긴 왜 우니껴?”

짠해진 내 목소리가 떨렸다. 질곡의 세월이 봄눈 녹듯 허물어져 내렸다. 주모도 가만있지 않았다.

오늘 술값은 싸비스.”

그 가을날, 아버지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던 석양 길 코스모스가 참 애잔했다. 애증이 너울지는 아버지의 강을 건너며 나는 소망했다. 이 불효자식을 부디 용서하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