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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하얀 접시꽃 / 윤남석

하얀 접시꽃 / 윤남석

 

 

 

빠끔, 어김없이 오늘도 미닫이문이 열려 있다. 방 안에만 있자니 번울하여 장뼘만치 열린 문 틈새로 한뎃바람을 들여놓고 싶은 게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그렇게 방문을 조금 열어 갑갑함을 해소하는 듯하다. 일요일이라 아이들과 산책 나가는 길이다. 집 뒤쪽 솔밭으로 가기 위해 고샅을 내려가다 보면 할머니 집을 지나친다. 할머니 집 앞에서 우측으로 따라 돌면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게 된다. 홀로 사는 할머니 집 앞을 지나칠 때마다 절로 익혀진 듯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눈길이 간다. 빠끔히 열려 있는 방문이 시선을 잡아당긴다. 기척도 없다. 조금 열린 방문 보고, 할머니가 밖을 내다보겠거니 눈어림할 뿐이다. 볕살 내려앉은 마룻바닥이 반드럽다. 문틈으로 고샅도 내다보고, 마루에 올라선 낮볕의 온기도 감지할 게다.

툇돌에 놓인 남청색 고무신 한 켤레가 적적함을 더한다. 고무신 옆에 옹그린 황갈색 고양이 눈까풀이 천 근은 되는 듯하다. 고양이 꼬리 뒤에 지팡이가 쓰러져 있다. 언제나 마루 가운데기둥 옆에 얌전히 걸쳐져 있어야 할 지팡이가 뜨럭에 나동그라져 있다. 알루미늄 지팡이가 내쏘는 빛살이 매섭다. 지팡이는 할머니가 마당으로 내려설 때면 항상 곁부축해 주는 도구다. 마루에 쭈그려 앉아 지팡이 줍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혹여 고양이가 무료한 나머지, 꼬리로 바닥을 툭툭 치다가 넘어뜨린 것은 아닐까. 고양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노곤한 하품만 늘어뜨리고 있다. 시치름한 기색이 영 시퉁해 보이지만, 마냥 고양이 탓으로 돌리는 것도 모양새가 그렇다. 옆에 있던 딸아이에게 지팡이를 제대로 세워 놓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고분고분 마당으로 들어선다.

마당은 온통 남새밭이다. 뜨럭 바로 앞까지 채소로 빼곡하다. 좀 너른 가운데 밭골이 통로일 뿐이다. 부서진 철 대문이 외따로 떨어진 화장실 옆에 녹슨 채 서 있다. 그 쇳녹을 탐하려는 수작인지 환삼덩굴의 포박이 야무져 보인다. 대문간 곁에 있는 화장실 갈 때, 할머니는 비로소 지팡이를 짚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남새밭 가꾸는 일은 경기도에 사는 맏딸이 한 달에 두어 번 들러 맡아 하는 편이다. 몇 해 전에 구질(九秩) 넘긴 할머니에겐 딸만 둘이다. 맏딸이 여남은 골, 모종한 고추가 제법 커서 고갯심 버거운 듯 휘청거린다. 받침목 필요한 고추가, 지팡이 없이는 바깥출입이 거북스런 할머니 처지와 비슷해서 애처로워 보인다. 녹슨 대문짝을 휘감은 환삼덩굴처럼 부단히 곁들 넝쿨손도 필요하지만, 쓰러지지 않게 해줄 탱목(撐木)이 더 애바쁠 것 같다.

건넌방 문 옆에는 고리버들로 엮어 만든 키가 걸려 있다. 뭐든지 까불러서 검불 골라내던 키가 얌전히 고개 숙인 채 걸려 있다. 위아래로 흔들며 당차게 까붐질했던 키가 대못 하나에 옴짝달싹 못하는 형편에 처해 있다. 할머니도 여태껏 속가슴에 쌓인 쭉정이나 티끌 따위를 수북이 까불러냈을 것이다. 수없이 걸러내며 버텨 온 지난날이 주마등같이 스쳐가지만, 이젠 걸러낼 것이 얼마나 남았을까. 걸러낼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걸까. 대못에 걸려 예전 기억을 잃어 가는 키처럼, 혹여 할머니 속가슴에도 굵은 대못이 들어앉아 저렇게 방 안에서 꼼짝 못하는 건 아닐까.

재작년에 이사 오자마자, 시루떡을 집집마다 돌리게 되었다. 시루떡 담은 접시를 들고 할머니 집에 들르니, 한참 만에 방문 연다. 저쪽 윗집에 이사 온 사람이라고 하니까 잇몸 드러내며 웃는다. 건강을 염려하니까 이번에도 그저 웃기만 한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할머니는 가는귀먹어서 목청을 돋워야 알아듣는단다. 그 며칠 뒤, 가겟방에 내려가면서 할머니 집으로 우연찮게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마침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있다. 인사하니까 손짓으로 부른다. 급한 일도 아니고 해서 들어가 마루에 걸터앉았다.

잠깐 있어 보라고 하더니, 빙그레 요구르트와 초코파이 하나를 방 안에서 꺼내 준다. 손사래 치며 거절했지만, 연거푸 내미는 할머니 성의를 끝끝내 사양하는 것도 순당하지 않아 보였다. 이미 초코파이는 봉지가 뜯겨지고 요구르트는 뚜껑을 따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초코파이에서 묻어나는 , 을 물어뜯는 걸 보며 할머니는 빨대 꽂아 놓은 요구르트처럼 빙그레미소 띤다. 시루떡 갖다드린 것에 대한 호의의 표시일까. 멋쩍기만 하여 뒷머리를 긁적였다.

할머니는 날이 따뜻하면 그렇게 마루에 나와 있을 때가 많다. 담장 너머로 인사하면 여전히 잇몸 드러내며 가볍게 웃을 때도 있고, 그냥 먼산바라기를 하기도 한다. 몸이 쇠약해진데다가 노안(老眼)이라 분간이 어려운 탓이겠거니 여긴다. 아니면 옛일을 애써 더듬거리다 그만 수심에 깊이 빠져 몽몽한 안개 헤치기가 수월찮은 중이겠거니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은 마루에도 잘 나오지도 않고, 저렇게 방문만 조금 열어 두고 한뎃바람을 끌어들인다.

할머니는 열린 문틈으로 대문 밖을 수시로 내다볼 게다. 빠끔히 열린 문틈으로 바람을 끌어들여 숨통도 틔우지만, 맏딸이 오기만을 학수(鶴首)하는지도 모른다. 그 간절함 때문에 문을 빠끔히 열어 놓는 건 아닐까. 대문 발치에 돋은 접시꽃이 하얀 꽃망울을 터뜨렸다. 가량가량한 접시꽃이 지어 보이는 하얀 웃음이 왜 그런지 모르게 해쓱하다. 웃음빛이 맑지가 않다. 접시꽃 하얀 망울도 덩달아 학의 목처럼 빠질 대로 빠진 탓에 핏기 없어 보이는 걸까. 비록 파리한 낯빛이지만, 방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는 할머니한테 억지웃음이라도 지어 보이려고 봉오리를 한 꺼풀씩 벗겨낸 건 아닐까. 하얀 꽃잎이 톡, 쏘는 양파 껍질처럼 시큰거린다. 뒷산 솔숲에서 솔바람이 너울처럼 출렁이며 한바탕 불었으면 좋겠는데, 젠장칠 땡볕만 풀쐐기처럼 달라붙는다. 그 볕살이 하얀 접시꽃을 무디게 갉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