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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푸른 잔 / 남민정

푸른 잔 / 남민정

 

 

 

푸른 잔은 천마총 진열장에 놓여 있었다. 옛 신라 지증왕의 능인 경주의 천마총, 어두컴컴한 고분 안으로 들어가면 발굴된 왕의 소지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진열장 맨 앞에 맑고 투명한 푸른색의 유리잔이 보인다.

고분 속의 푸른 유리 잔, 청동으로 만든 장신구와 흙으로 구운 토기들 속에서 그 잔은 어둠 속에 켜놓은 작은 램프처럼 은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처음 그 잔을 본 것이 언제였던가. 나는 경주에 가면 먼저 천마총으로 간다. 푸른 잔 때문이다.

가을 하늘처럼 푸른 그 잔의 모양은 동그랗고 손잡이는 조금 길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포도주잔이지만 도자기를 술잔으로 쓰던 천 년 전 그때에는 경이로운 물건이었으리라.

그 잔은 어디에서 왔을까? 실크 로드를 따라 아득히 먼 곳 페르시아에서 낙타 등을 타고 오지 않았나 싶다. 어느 상인이 아름다운 모양과 처음 보는 색이 신비로워 임금님께 진상했을 것이다. 임금이 지극히 아꼈던 술잔이기에 세상 떠날 때 함께 땅에 묻혔던 것 같다.

현대 작품만 전시하는 미술관에서 개나리가 담긴 질항아리를 본 듯 조화롭고, 어느 외국인 집 거실에서 서양 가구들과 같이 놓여 있는 조선 시대의 반닫이를 본 듯 청동 그릇과 토기 그리고 푸른 잔은 격조 있게 잘 어울렸다.

내가 그 잔 앞에 오래 서 있으면 일행들은 어서 나가자고 재촉을 한다. 천마총 안은 어둡기도 하고 발굴할 당시의 왕과 왕비의 누워 있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라 오래 머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똑같은 사물을 보고 있어도 서로 다른 의미로 본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임금이 귀히 여기던 술잔으로만 보이는 푸른 잔, 그 앞에 서 있는 나에게는 어렸을 적에 다른 곳에서 본 또 하나의 푸른 잔을 생각나게 한다.

여섯 살 때였다고 생각된다. 어느 날 저녁때 어머니는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서 마루에 놓고 내 발을 씻어 주셨다. 고개를 숙이고 오랫동안 발을 닦아 주시던 어머니가 "내일 너 혼자 아빠한테 간다. 엄마가 나중에 데리러 갈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셨다. 아버지는 그때 작은 다른 도시로 전근 가서 혼자 계실 때였다.

이튿날 누군가의 손을 잡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버지께 갔다. 그곳 아버지 집에는 다른 여인이 아버지와 같이 지내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아는 듯 저녁도 먹지 않고 엄마를 찾았다. 칭얼대는 나를 업고 아버지는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달래셨다. 이층 방으로 올라간 아버지가 "저것 봐라. 예쁜 것 있다." 하며 다가간 곳에는 색이 푸르고 모양이 예쁜 잔이 있었다. 방 한쪽 반닫이 위에 귀중품처럼 놓여 있는 그 잔은 언젠가 아버지 손을 잡고 언덕에서 바라보았던 어느 바다처럼 푸르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등에서 내려 그 잔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계속 칭얼대며 울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새벽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 딸을 아버지께 보내고 하룻밤을 지새우신 어머니가 동트기 전에 보낸 친척 아저씨가 나를 등에 업고 안개 자욱한 새벽길을 걸어갔다. 내가 떠날 때 아버지는 내 등을 두드리며 "곧 집에 가마." 하셨다. 안개 가득한 마당에서였다. 그리고 바로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얼마 후 전쟁 때문에 돌아가셨다.

내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나가신 아버지,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그러나 아버지 등에 업혀서 바라보던 푸른 잔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 잔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버지는 어떻게 그 잔을 갖게 되셨을까. 집 치장하기를 좋아하셨다 하니 흔하지 않은 푸른색이 신비하여 장식품으로 사셨을까. 선물로 받은 것일까, 그 잔은 아버지께 어떤 기쁨을 주었을까. 어머니는 그 푸른 잔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유월에는 동작동에 있는 국립 현충원에 간다.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전쟁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기에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진혼곡의 나팔 소리는 늘 나를 슬프게 한다. 누군지도 모르는 어느 묘비 앞에 앉아 시간마다 울리는 진혼곡을 여러 번 듣고 올 때도 있었다. 슬픈 나팔 소리가 끝나면 숲 속에서 뻐꾸기가 화답하듯이 울어줄 때도 있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푸른 잔을 찾아서 아버지의 묘소에 넣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천마총에서 푸른 잔을 본 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푸른색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색이다. 푸른 하늘도 그렇고 푸른 바다도 그렇다. 그러나 나에게는 푸른색이 아버지를 그리는 그리움의 색이 되었다. 그래서 푸른색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적해 하기도 한다.

우리 집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푸른 잔들이 놓여 있다. 손님이 오면 푸른 잔이 많은 이유를 묻지만 나는 대답할 수가 없다.

아버지 사진을 농 속에 넣어두고 가끔 꺼내 보시는 팔순의 어머니도, 옛날 어느 날 밤 아버지 등에 업혀 바라보던 어린 딸의 푸른 잔 사연을 알지 못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