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문학적 영역 / 정목일
수필은 사실을 토대로 쓰는 글이다. 고백의 문학, 자조의 문학, 독백의 문학이라는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문학이다.
시, 소설, 희곡이 상상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창조문학이라고 하지만, 수필은 사실을 바탕으로 쓰기 때문에 비창조문학이라 한다. 상상을 통해 창조된 세계가 아닌, 이미 있었던 것에 대한 것을 토의하는 문학으로 분류된다. 근대 문학 이론가이며 문학평론가인 몰턴(R. Moul-ton:1849~1924)의 이론에 따르면 시, 소설, 희곡을 창조문학, 역사, 철학, 웅변, 수필을 산문문학, 토의문학으로 분류한다. 이미 있었던 것을 가지고 쓰는 것이므로 비창조라는 개념으로 분류한 것이다.
역사는 기록성, 철학은 논리성, 웅변은 교설성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수필은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 문학의 바탕은 상상이고, 상상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낸다.
시, 소설, 희곡이 상상을 바탕으로 개연성 있는 세계를 창조하는 문학이라면 수필은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문학이다. 시, 소설, 희곡이 허구를 통해 창조의 세계를 구축한다면, 수필은 사실을 바탕으로 여기에 상상을 부여하여 창조적인 세계를 구축해 낸다.
시, 소설, 희곡 등은 허구를 통한 창조 작업을 하므로 구체적이고 일정한 형식이 요구된다. 이와는 달리 수필은 사실을 토대로 하므로 형식은 있되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자유롭다. 수필은 결코 경험을 그대로 쓰는 글이 아니다. 자신의 체험과 느낌이 인생에 어떤 의미와 깨달음을 주는가를 담아내는 글이다. 작가의 사상, 철학, 지식, 상상, 인생관, 가치관, 인격, 감성을 포함한 인생의 총체성에 의해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세계로 표현되므로 이를 창조행위라 할 수 있다. 시, 소설, 희곡 등이 상상으로 이뤄지는 것과는 달리 수필에선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이 보태어져 창조 세계를 표현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상상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과는 달리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수필은 장점과 함께 단점도 지닌다. 장점이라면 ‘사실’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와 진실의 힘이다. 픽션 부류의 문학과는 확연한 차별성을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호소력이다. 단점으로는 픽션의 경우엔 기상천외, 특별, 기적 등 있을 수 있는 온갖 일들을 상상을 통해 끌어들인 수 있지만, 수필에서의 상상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갈수록 개인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의식이 높아가고 있어, 픽션보다 논픽션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인터넷 시대는 말보다 글이 효과적인 소통 도구가 된다. 인터넷에 소통되는 문장, 편지문, 일기문, 감상문, 기행문, 댓글, 칼럼 등이 수필 영역의 문장이다. 인터넷 시대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수필을 쓰는 시대, 사람들이 저술을 남기는 시대로 변모시키기에 이르렀다.
근대문학 이론가 몰턴의 이론대로 ‘수필은 이미 있었던 것을 거지고 쓰는 것이므로 산문 문학, 토의 문학’으로 규정하고 ‘비창조 문학’으로 구분하는 분류법은 현대에 와서 통용될 수 없는 일이다.
수필은 사실을 토대로 한 문학이지만, 여기에 상상과 감정, 인격을 부여하여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창조 문학으로 진화해 나가고 있다. 서양의 에세이는 사회적인 문제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논리를 바탕으로 시비를 가려서 자신의 논조에 동의하도록 설득하는 데 있기 때문에 토의 문학이라는 인상이 있다.
동양의 수필은 개인적인 일을 주관적인 관점에서 감성을 바탕으로 삶을 드러내며, 상상과 명상을 끌어들이므로 창조 문학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인생에 대한 발견과 의미를 부여한 비교적 짧은 산문이다. 형식이 자유롭고 개성적이다.
수필은 인생을 담은 그릇이므로, 좋은 수필을 쓰려면 좋은 인생이어야 한다. 인생 경지가 곧 수필 경지가 된다. 인격에서 향기가 나야 문장에서 향기가 난다. 좋은 수필을 발견한다는 것은 곧 좋은 인생과 만남을 뜻한다. 좋은 수필이 많이 나오게 하는 일은 우리 공동체를 맑고 아름답게 조성하는 일이다. 수준 높은 수필이 나오도록 힘쓰는 일이야말로 진, 선, 미를 꽃피우는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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