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화風化 / 홍미자
이름 모를 풀들이 스러지는 산자락에 무덤 한자리가 있다. 육신이야 오래전에 흙 속으로 스며들었겠지만, 고인이 이 세상을 다녀간 흔적은 봉분 앞 검은 돌에 남아 있다. 상석 하단에 새긴 자손들 이름이 인연의 사슬인 양 가지런하다.
아버지가 상석 위에 쌓인 낙엽을 쓸어낸 후 말갛게 닦는다. 살아계신 할아버지를 대하듯 정성스러운 아버지의 손길을 의식하면서, 나는 바구니 속에 든 떡과 과일을 꺼내어 상석 위에 올린다. 음식 놓인 자리를 일일이 챙긴 다음 향을 피우는 아버지 뒤에 맏아들인 동생이 우두커니 서 있다. 끈끈한 정을 자랑하던 삼대가 한자리에서 만났는데 아무런 말이 없다. 묵묵한 두 사람 너머로 할아버지에게서 손자로 이어진 날들이 꽃처럼 피었다 진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벼슬한 사람을 부러워했다. 자식들 누구 하나 그 소원을 이루어주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어린 장손을 희망처럼 안고 나중에 꼭 한자리하라며 입버릇처럼 되뇌었지만, 손자가 다 자라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마루에는 붉은 명정銘旌이 드리워졌다. 명정 속 본관 앞에 학생이라는 글씨가 노랗게 적혀 있었다. 벼슬을 못 해서 영원히 학생이 된 할아버지는 손자 대에 이르러 반드시 관직에 오를 수 있게 해준다는 묏자리에 묻혔다.
선대의 소원을 유산처럼 물려받은 아버지는 아직 학생 신분인 아들을 데리고 철마다 할아버지 묘소에 찾아갔다. 봉분 앞에 아들을 세워놓은 아버지는 ‘손자가 소원을 꼭 이루어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며 무덤 속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다. 동생은 타의 반, 자의 반 벼슬을 얻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집안 어른들의 기대와 배려를 한 몸에 받으며 힘든 길로 들어선 그는 깊은 밤에도 잠을 못 이루고 벌떡 일어나 앉아 있었다. 잠이 달아난 밤마다 집안의 바람과 자신의 꿈이 일치한다는 자기 주문을 끊임없이 걸어야 했다. 그렇듯 집안 기대치에 맞추려고 용을 쓰느라 동생은 애늙은이가 되었다.
할아버지 소원이 이루어진 날 아버지는 잔치를 열었다. 동생은 일가친척이 건네는 축하의 말에 좋은 세상 만드는 데 일조하겠노라며 거창하게 답사했다. 어깨를 활짝 펴고 호기롭게 말하는 아들을 아버지가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았는지 말해 무엇 하랴. 아버지는 할아버지 제사를 모실 때 더욱 경건해졌다.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지방을 쓰는 아버지의 등은 생이란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식으로 이어지는 영원하고도 두려운 일이라 토로하고 있었다.
삼대 간의 결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느슨해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시절의 변화는 막아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지난 연말에 조부모님의 제사와 함께 당신 내외분 사후 제사까지 절에 맡겼다. 새해 첫날에 자식들을 부른 아버지는 거두절미하고 제사에 대한 결정을 통보했다. 놀란 자식들을 뒤로하고 아버지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당당했던 등줄기가 몰라보게 줄어든 것이 한눈에 보였다. 가벼이 변하는 세상을 형식으로나마 막아보려 했던 당신의 시절이 속절없이 저물고 있었다.
세 아들은 거실에 제각각 앉아서 아버지 심중을 헤아렸다. 작은방 문틈으로 팔을 베고 돌아누운 어머니가 보였다. 딸인 나는 주방 앞에 서성거리면서 맏아들인 동생의 표정부터 살폈다. 그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최근까지 집안 대소사를 챙기고 해마다 할아버지 묘소의 벌초를 책임져온 그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아버지가 제사를 절에 맡겨버린 것이었다. 동생은 짐을 벗어버린 동시에 집안의 절대적인 믿음과 애정까지 잃어버린 셈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내린 결정을 벌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리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장손이라는 부담을 안고 결혼한 동생은 편치 않았다. 집안에서는 맏며느리에게 기대가 많았으나 자유롭게 자라서 들어온 새사람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동생은 오랜 고민 끝에 아내와 첫 딸을 데리고 대구에서 서울로 멀찌감치 떠났다. 몸이 멀어졌다고 부모의 애착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동생에게 둘째 딸이 태어나자 아버지는 손자 하나만 더 낳으라는 애원 어린 압력의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맏아들에게서 손자를 보고 싶은 아버지의 욕심은 며느리가 생산 능력을 잃어갈 즈음에야 포기되었다. 포기하고서도 서운한 마음 달랠 길 없는지 명심보감을 꺼내놓고 노트에 빼곡히 옮겨 적었다.
탁자에 옹그리고 앉아 필사하는 아버지를 보다가 딸도 제사를 물려받는 세상이 되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아버지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출가외인은 네 집 봉사奉事나 잘하라며 경계를 그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에게서 손자를 보았으나 그 아이 또한 장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부모의 끔찍한 편애와 형제들의 질투와 변해가는 가치관 사이에서 동생은 머리가 일찍 세어 허옜다.
인연의 끈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을까. 동생이 기우뚱거리며 할아버지 봉분에 술을 뿌린다. 아버지는 다리를 접고 조그맣게 앉아서 아들의 움직임을 바라본다. 나는 골이 깊어진 부자 사이에서 무슨 역할이라도 할 수 있을까 싶어 따라나섰지만,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하고 비스듬하게 깎여나간 묘소 앞자락만 내려다본다. 봉분 앞으로 아파트 두어 동이 점령군처럼 다가와 있다.
얼마 전부터 무덤이 시민 공원에 흡수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온다. 묘소 앞자락이 개발에 밀려 걷잡을 수 없이 잘려 나갈 때마다 아버지의 핏줄에 대한 집착도 조금씩 허물어지지 않았을까. 겉치레만 남은 제사를 정리한 것은 닻 놓친 배처럼 오래 흔들린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평생 붙들고 있던 가치를 놓아버린 허전함이 아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아버지가 묘소 앞에 말없이 앉아 있다.
옆으로 다가온 동생이 멀리 도심을 바라본다. 도시를 향해 서 있는 그의 등은 수많을 말을 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 사는 그에게 직장에서 기회를 준 적이 있었다. 그 선물을 받으면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나라에서 살 수 있었다. 생애 한 번 찾아온 기회였지만, 그는 자신만 바라보며 연로해가는 부모를 두고 떠날 수 없었다. 맏아들답게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경제적인 지원을 책임져야 했고, 아버지가 무거운 병이 들었을 때도 가까이에서 뒷일을 도맡아야 했다. 부모의 사랑이 평생 지고가야 할 짐처럼 무거웠으리라. 그가 새처럼 자유로웠더라면 더 멀리 더 높게 날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생각이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돌아보니 둥그런 봉분을 마주하고 앉은 아버지의 뒷모습이 역광을 받아 푸르스름하다. 같은 꿈을 꾸던 날이 있었으나 변화의 시간을 조율하지 못한 아버지와 아들은 좀처럼 말꼬를 트지 못한다. 침묵이 버거운 나는 머뭇거리다가 동생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준다. 멀어졌던 그의 눈길이 발아래로 당겨지면서 흔들린다. 산란한 얼굴로 한참을 서 있던 그가 아버지를 돌아본다.
지나가는 바람에 숲이 버석거린다. 동생이 아버지 옆에서 술을 따른다. 아버지는 한숨에 비운 술잔을 아들 손에 들려준다. 술을 부어주면서 ‘너도 한잔 해라’는 짧은 말을 건넨다. 낮고 부드러운 한 줄 말씀 속에 당신의 아들로 사느라 고생 많았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공유하는 화해법인지, 두 사람은 마음을 주고받으면서도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대화 행간에 묻는다.
이어졌다 끊어지는 우리의 말 사이로 마른 잎 부대끼는 소리가 간간이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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