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본 세상 / 김길영
한티 재에서 파계 봉으로 오르다가 되돌아오는 산행이었다. 하산 마지막 계단 몇 개를 남겨놓고 잔설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찌나 아프던지 내 몸이 두 동강 나는 줄 알았다. 동행한 일행들의 걱정을 덜어주려면 참아야 했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주사를 맞았다. 첫날밤은 별일 없이 잠을 푹 잤다. 아마 약효 때문이었으리라. 다음날 아침 아내의 근심 어린 눈빛을 피해 병원엘 들렸다. 한 달 정도 치료하면 회복될 것이라 했다. 대수롭지 않게 흘린 의사의 말 한마디에도 위로가 되었다.
의사의 말과는 달리 견딜 수 없을 만큼 허리가 아팠다. 잠자리에서 몸을 뒤척일 때면 상하체가 따로 노는 것 같았다. 양손으로 엉덩이를 감싸들어 올려야 했다. 내 몸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사고가 나고 달포를 지날 때까지 허리에 압박붕대를 감고 살았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는 일 외엔 진통제로 아픔을 달랬다.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다고 했다. 내 허리가 회복이 될지 아니면 끝까지 불편한 몸으로 지내야 할지 못내 의심이 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상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하고 간절한 바람뿐이었다..
내 허리는 조여지지 않는 풀린 나사처럼 뻐근했다. 한겨울에 얼음찜질하듯 서늘하고 멍멍했다. 누웠다 일어서거나 앉았다 일어설 때면 아내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벽에 기대어 통증을 삭일 때는 차라리 이대로 눈을 감아버리면 좋겠다는 불길한 생각까지 했다. 천년만년 살 것 같았던 나의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검진결과를 보면 건강상에는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 해도 연식이 오래된 차량처럼 노쇠해진 육신을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머지않아 심전도 그래프가 황색선을 넘나들 것이고, 내 몸에서 작동하는 요긴한 부분들이 할 일 다 한 것처럼 뒷짐 지고 물러설지도 모른다. 벌써 머리는 백발로 듬성듬성해졌다.
내 나이 또래가 가장 어렵게 살아온 세대다. “할 수 있다.”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구호를 들고 정신없이 살아왔다. 모질게 닳아 사선으로 빗겨선 구두창에 수평을 맞추기 위해 굳은살로 채웠듯이 세상 따라 잡기가 숨이 차고 버거웠던 세대로 살아남았다.
세상은 초고속으로 변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따라갈 만한 세상이다. 시간을 쪼개어 바삐 살아야 하는 이때에 의미 없는 천정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니 답답하고 답답했다. 이브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쁜 일정표를 작성해야 했다. 마음은 다급해지고 몸은 따라 주지 않았다.
내 일찍 꿈꾸었던 꿈은 깨어진 지 오래되었다.. 무엇이 나를 조급증에 시달리게 하는지 모르겠다. ‘천둥번개 치고, 소낙비 내리고, 바지게 넘어지고, 소가 뛴다.’는 여름 한 자락 풍경처럼 엉거주춤한 모양새가 현재 나의 모습인 것이다. ‘백수 과로사’한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노년에 의식주가 해결되고 소통할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은 아직 이 세상 살만하다. 99세 시바다 도요 할머니가 시를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용기와 즐거움을 주었다. 내가 하는 문학 활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잠시나마 위로를 받거나 즐거울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빨리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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