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물상지玩物喪志 / 이윤기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수집하고는 하지요? 내게도 그런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표, 성냥, 수석, 도자기, 벼루 같은 걸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그중에서 수석 수집이 취미인 친구는, 강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떤 수석 한 점을 1천만 원에 팔았다고 술을 사기도 했습니다.
수집가들에게 포위당하면, 나도 평생 뭘 하나 수집해 보아야겠다는 어줍지 못한 생각을 합니다만, 곧 포기해 버리고는 하지요. 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만 내게는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지요.
미국에서도 사람들이 뭘 수집하는 걸 좋아하기는 마찬가지군요. 미국의 한국인 중에는 영화 포스터를 수집하는 사람, 카메라를 수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한국인이 숟가락을 수집하고 있는 걸 보고, 어릴 때 얼마나 굶었으면 숟가락을 수집할까……하고 농담해 준 적도 있습니다. 미국인 중에는 자동차 수집광이 많더군요. 집터가 넓어서 수십 대씩 수집해서 세워두고 틈날 때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해서 시내로 몰고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행기를 수집하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장자』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문이라는 가야금의 명인이 있었는데, 이 양반은 당대의 최고 연주가이면서도 어느 해 한 깨달음을 얻고부터는 가야금을 타지 않더랍니다. 무슨 깨달음인가하면, 가야금을 타고 있을 때는 한 소리에만 정신을 쓰기 때문에 자연의 온갖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지만 가야금을 놓고 있으면 오음이 고루 귀에 들린다는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도연명 같은 분은 줄 없는 가야금을 즐겼던 것일까요? 하지만 무현금도 가야금은 가야금이니 품격으로 치면 도연명은 소문만은 못한 것 같군요.
무엇을 많이 가진 사람들, 가진 것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이면 거 참 외로워지지요? 특히 내가 많이 가지지 못했을 때, 그래서 가진 것을 사랑할 수 없을 때 더욱 그렇지요? 그러나 전혀 외로워질 필요가 없답니다. 사물에 대한 지나친 애정은 오히려 그 사람의 큰 뜻을 상하게 할 수 있답니다. 한문으로는 완물상지(玩物喪志)라고 하지요.
미국에 있는 한국인들은 자동차를 참 비싼 것으로 탑니다. 그런데 그런 한국인들의 모임에 태연하게, 2백 달러짜리라면서 다 썩은 트럭을 몰고 나오는 한 유명한 한국인 교수가 있습니다.
그분이 다 썩은 트럭을 타고 다니는 이유가 들어둘 만합니다. 「번쩍거리는 차를 몰고 다니면 신경이 쓰여서 공부가 안 된다」는 겁니다. 사실, 그 교수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한 한국인 교수를 나는 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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