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질 / 이장희
군색한 솜씨로나마 땜질했더니 한결 개운하다. 붓으로 칠해 둥근 달처럼 오려 붙인 도안이 빛바랜 천정과 차이나도 그리 흉하진 않았다. 그끄저께 낡은 등을 새것으로 갈려는데 점등관부품들이 허물 벗듯 떨어졌다. 너무 낡아 일자형 램프로 통째 갈았더니 등에 가렸던 곳이 퇴색돼 너저분한 부분이라도 안 보이게 메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천정 일부를 종이로 땜질하다 보니 우리 삶이란 땜질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기나긴 인생의 생로병사란 때우지 않고 헤쳐가기 힘든 여정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액땜하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어떤 곳은 메우고 감싸고, 또 어떤 때에는 틀어막고 더러는 상한 부분을 갈아 끼우지 않는가.
어린 시절 납땜 일로 살아가는 땜장이를 보았다. 골목골목 누비며 ‘솥이나 냄비 때우소.’ ‘헌 양재기, 그릇 때웁니다.’ 가난하여 물자가 귀했던 그때의 땜질은 알뜰소비의 교과서요, 근검절약의 표상이었다. 땜질기술자는 헌 물건을 새것으로, 폐품을 신품처럼 부활시키는 능력자로 신기한 마술사 같았다.
소년주부가 되었던 열한 살 시절이 떠오른다. 대소변조차 신경 쓰이던 동생의 돌보미로, 저녁끼니를 맡아야 할 조리사로 살았다. 십리길 걸어 약장수 공연 구경이 학교생활을 접은 나의 문화생활이었다. 이태 만에 생판 낯선 새 엄마를 맞아들이고서야 학생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니 땜질 인생의 시작이었다.
군 입대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지휘관에게 보고할 브리핑 자료작성이 주된 임무였다. 과제는 예고 없이 안겨졌고 신속 정확을 요구하는 작업들이 밤낮없이 이어졌다. 요즘은 컴퓨터가 대신하지만 그 당시는 보고하고 보고받는 이의 소통을 잇는 핵심 연결고리가 내 손으로 쓴 신문지 반 장 크기의 차트였다.
인쇄물의 작은 글씨를 바쁘게 읽어 써내려가다 보면 실수도 있었다. 사인펜으로 적다보니 지우고 고치기 힘들었다. 실수 없도록 신경 쓰지만 신문기사에도 오탈자가 보이듯 간혹 초안이 바뀌거나 한두 자 고칠 경우가 있었다. 막판에 실수하면 두벌 고생을 감수해야했다. 작은 실수 정도는 땜질이란 수호천사가 번번이 나를 살려주었다.
땜질은 종이를 밑에 하나 더 받치며 시작되었다. 예리한 칼로 글자 바깥을 네모나게 도려내면 똑같은 모양의 종이가 두 장 오려졌다. 잘못 쓴 걸 버리고 새 종이는 빈 곳에 반듯하게 끼워 넣었다. 뒤쪽에 투명테이프로 붙이고 글자를 써넣으면 끝이었다. 앞에서 보아 감쪽같고 구김도 없어 땜질 덕을 톡톡히 보곤 했던 것이다.
배고팠던 시절 의식주를 막론하고 각양각색의 땜질이 성했다. 밥 대신 국수나 죽으로 때운 날이 있고, 깨어진 옹기는 철사로 테를 얽어서 썼다. 옷도 팔꿈치나 무릎 부위가 닳고 헤져 구멍이 나면 천으로 누벼 입어도 흉이 아니었다. 널빤지 담장이 낡아 안이 훤히 보이면 송판을 덧대어 가렸다. 태풍에 기울어질 뻔했던 고물 철 대문도 용접 덕분에 수십 년 썼다.
예전에 비해 세상이 퍽 좋아졌다. 사고로 얼굴의 흉터나 상처 때문에 시름 깊은 사람들이 있었다. 수술을 여러 번 받는 수도 있었지만 요즘은 멀쩡한 얼굴에도 칼질하는 세상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제 모습이 맘에 안 든다고 눈, 코는 물론 머리에서 발끝까지 미용성형이란 핑계로 땜질을 즐기니 생사를 넘나드는 간절한 수술마저 인술仁術의 고결성을 망각할까 두렵다.
요즘은 고귀한 생명도 인공수정으로 태어나는 세상이다. 인공신장, 인공심폐장치도 귀에 익숙해진 세상이다. 누가 인공눈물이나 인공관절, 인공심장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장담하랴. 인간에게 땜질은 시대의 흐름이며 거듭나는 과정이란 생각이다. 일회용도 잘 쓰면 반영구제품이 되고 고물도 명품과 보물로 거듭날 수 있다. 길고 짧은 차이야 있지만 인간의 삶도 일회용으로 사라질지 보석처럼 빛날지는 땜질하기 나름이 아닐까.
정신적 영역에도 땜질할 일이 허다하다. 간격을 좁히고 채우며, 틈을 메우거나 기워야 할 분야는 무척 넓다. 시대 여건이 바뀌면 법률도 제도도 새로 정하거나 고쳐 바로잡는다. 마찬가지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평생 공부라는 땜질에 나이나 국적, 성별, 직업귀천이 없다. 그러니 생명을 이어가는 한, 때우고 보충하고 대신해야하는 일에는 끝이 없다.
납땜 같은 물리적 땜질이 뭔가를 메우는 행위라면 인생의 땜질은 위기에 대비한 예방과 저축이며, 난관에 직면한 방어와 대처가 아닐까. 뿐만 아니라 비우고 나누고 덜어내는 것까지 넓혀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신을 위한 땜질이 학업, 경륜, 재물의 비축과 재충전으로 ‘채움’이라면 남을 위한 땜질은 봉사와 나눔이 바탕인 ‘비움’이 아닐까. 누군가를 칭찬하고 보듬어 보살피며 기쁨과 용기, 행복을 나누는 것이 땜질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나에게도 긴급한 상황은 예약하지 않은 손님처럼 밀어닥친다. 내 삶을 되짚어보게 하는 땜질은 나 스스로 그 가치를 부여할 때 부단히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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