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동박새와 누나 / 임병식

동박새와 누나 / 임병식

 

 

동박새는 동백나무숲에서 산다. 우거진 동백 숲 사이를 이리저리 건너다니며 지낸다. 푸른 잎, 붉게 핀 동백꽃이 아름다워 시선을 주노라면 그곳에는 터줏대감인 양 동박새가 있다. 나는 그런 동박새가 사는 동백꽃을 보면 스물두 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누나 생각이 난다. 살아생전에 유달리 동백꽃을 좋아해서 일까.

그런지라 나는 동백꽃을 만나면 그냥 옆을 스치듯 지나치지를 못한다. 누나가 생각나고 보고 싶어서 서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붉게 핀 동백꽃을 쳐다보게 된다.

누나는 느닷없이 세상을 떠났다. 무슨 신병이나 예후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이었다. 그러나 누나는 일찍이 자기의 운명을 예감을 했던 것일까. 살아생전 우는 너무나 부지런히 살고 가족에게 유독 살갑게 대해주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동백꽃을 꺾어와 내 책상 필통에다 꽂아주는가 하면 주어온 동백꽃 송이로 목걸이를 만들어 내게 걸어주기도 하였다. 그런 까닭에 나는 동백꽃을 보면 누나 생각이 많이 나고 동백꽃과 함께한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큰댁에는 큼지막한 동백나무가 한 그루 있다. 그 나무는 해마다 많은 꽃을 피웠고, 절정기에는 마치 화관을 머리에 쓴 듯 온통 붉은 꽃 천지를 이루었다. 고향에서는 귀한 나무인지라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런 동백이 여수에 와서 보니 구름밭을 이루고 있었다. 눈이 머문 곳마다 동백나무가 있어서 처음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 동백나무는 여름과 가을철을 제외하고 초겨울부터 늦은 봄까지 끊임없이 꽃을 피워냈다.

흔하디흔해서 땔감도 이것으로 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 동백의 속에 파묻혀 한동안 흥미를 잃었는데, 엊그제는 우연히 시내 구봉산 둘레길을 걷다가 동백나무 사이를 오가는 어떤 새를 보게 되었다. 몸집이 자그마한 새인데 온통 연초록 털로 덮여있는 녀석이었다.

'저게 혹시 동박새가 아닐까.'

동백나무에다 집을 짓고 동백꽃 꿀을 따먹으며 산다는 동박새. 직감적으로 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나는 일찍이 실물은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 새에 관해서 전설을 알고 있다. 오페라로 만들어져 널리 알려진 비련의 주인공도. 전설 속의 이야기이다. 옛날 어느 왕국에 후사가 없는 왕이 있었다고 한다. 왕위가 동생에게 승계가 되면 그의 아들로 이어지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왕은 그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계책을 꾸몄다. 계속 승계를 막기 위해 동생으로 하여금 그 자식들을 죽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듣은 자식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한데 자식들이 죽은 자리에서는 동백나무가 자라났고 그곳에 깜찍한 동박새가 깃들게 되었다.

그렇다면 누나가 스물을 갓 넘겨 급작스레 쓰러져서 일찍 저세상으로 간 것은 동백꽃을 좋아한 비련의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상징조작은 무서운 것이다. 왜 청초한 동백꽃에 그런 비련의 이미지를 덧씌웠을까. 꽃이 피어나는 게 너무 강렬하고 튼실해서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동백꽃의 입장에선 억울할 법도 하다.

전에는 동백의 씨로 짠 기름으로 호롱불도 밝히고 머릿기름으로 쓰기도 하였다. 그러던 것이 유행의 물결에 사라졌는데, 최근에는 이것이 인체에 유용한 항산화 물질이 많다는 것이 밝혀지고 대사질환에도 효용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런 동백은 여수를 비롯해 전남에만 분포 면적이 9천여 헥타르에 이른다고 한다.

관상 자원뿐 아니라 훌륭한 생물자원으로도 대접을 받을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어느 시인은 동백꽃을 두고‘촌스럽고 이무러운 꽃'이라고 했는데, 조만간에 격도 달라지지 않을까 한다.

한데 나는 산책길에서 동박새 한 마리가 한사코 사람을 피해 숨어드는 것을 보고서 혹여 누나의 혼령이 아닐까 생각했다. 눈앞에서 새가 사라진 것이나 누나가 세상에서 잠깐 머물다 간 것이 지극히 촌음에 불과했다는 생각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