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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달이 웃다 / 김귀선

달이 웃다 / 김귀선

 

 

"원래 다아 그런 겁니다아."

택시 기사의 축 늘어뜨린 음성에서 능청스러움이 삐져나왔다. 속이 울렁거린다. 나는 여행용 가방과 함께 멍하니 서 있다. 그런 나를 뒤로 한 채 택시는 재바르게 아파트를 빠져나간다.

자정 가까운 시간, 구름 사이 달은 훤한데 집으로 향한 발걸음이 자꾸만 더듬거린다. '원래 그런 것이라!' 혼란스럽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다 1층 출입구에 놓인 의자에 몸을 디밀듯 앉는다. 여행 동안 함께한 가방을 바라보며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본다.

 

◇ 삼십 분 전

 

여독에 절은 채 공항 리무진에 얹혀 대구에 도착했다. 굴속을 들여다보듯 궁둥이를 내민 사람들을 비집고 버스 짐칸 깊숙이 웅크리고 앉은 짐을 꺼낸다. 크고 작은 가방이 세 개다. 무게의 정도에 따라 어깨에 메고 왼손에 들고 하나는 오른손으로 끈다. 불을 환하게 켜고 줄 서 있는 택시 앞으로 갔다. 택시를 먼저 잡은 아가씨가 뒷좌석으로 짐을 밀어 넣느라 허리를 반쯤 내놓고 있다. 빈 차 앞에 도착한 우리도 짐을 실으려 손에 든 가방을 내려놓았다. 택시 운전사가 얼른 내린다. 앞의 택시와는 달리 가방을 번쩍 들어 실어준다. 이런 친절한 기사도 있구나. 피로회복제를 먹은 듯 몸이 가볍다. 예상하지 않았던 친절에 우리는 차에 타자마자 앞서 못마땅한 버스의 서비스에 대해 속풀이 한다.

차가 고속으로 달린다. 밖을 보니 우리 집 방향과 반대다. 당황하며 얼른 목적지를 다시 말하자 그는 깜박했다며 너스레를 떤다. 좀 전 버스 기사의 서비스를 생각하면 기분이 크게 언짢지 않다. 멈췄던 그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서비스에 대한 견해가 우리와 일치하는 등 장단이 잘 맞다. 막내딸아이가 신나 한다.

 

 

◇ 세 시간 전

 

부산 김해공항에 내렸다. 대구로 오는 리무진 버스표를 사기 위해 안내소에 들른다. 안내원은 현금을 주고 타라는 말과 함께 1번 정류소에서 기다리란다. 여행에 지친 몸이지만, 지정석이 아니기에 휴게실 가는 것도 포기하고 줄을 섰다. 가방을 곁에 두고 자세를 고쳐가며 한 시간여를 기다린다. 드디어 버스가 온다. 뒷사람을 위해 짐을 안쪽으로 깊이 넣으라며 버스 기사는 옆에 서서 고함을 지르듯 말한다. 옆의 분이 고맙게도 자기 짐을 제쳐두고 짐칸 문지방에서 미끄러지는 내 짐을 같이 올려준다.

버스가 움직이고 십여 분이 지나자 여기저기 들리던 전화 소리도 멈춰 조용하다. 그제야 의자 깊숙이 몸을 밀어 넣고 잠을 청한다.

“안전벨트 매 주이소오.”

운전사의 투박한 음성이 차 안 공기를 세게 흔든다. 그리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딱 소리와 함께 실내등을 몽땅 끈다. 순간 캄캄하다. 들여다보던 물건을 더듬거리며 챙겨 넣는지 뒷좌석이 잠시 부시럭거린다.

 

 

◇ 이십일 전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 리무진 버스표를 산다. 매표 직원은 버스가 대기한 곳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무거운 가방을 차에 옮길 걱정에 버스 짐칸 가까운 곳에 서서 차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딸아이가 얼른 내 가방을 뒤로 끌어당긴다. 돌아보니 가방과 사람이 나란히 두 줄로 서 있다.

직원이 나타나서 일일이 가방에다 꼬리표를 단다. 직원이 짐칸에 짐을 실을 동안 승객은 버스에 오른다. 차가 출발하자 안전벨트를 매라는 운전사의 낮은 음성이 마이크로 들린다. 여기저기에서 안전벨트 매는 소리가 난다. 너무 조용해 대화하기도 조심스럽다. 간간이 휴대전화 만지작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도착지에 내리자 이번엔 운전사가 짐칸의 짐을 다 꺼내주면서 일일이 확인까지 해 준다.

이어서 택시 승강장으로 간다. 운전사가 얼른 차에서 내려 무거운 가방을 트렁크에 실어준다. 그리고는 차문까지 열어준다. 손에 물건을 든 채 편하게 차에 탄다. 운전사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며 한 방법을 추천한다. 딸아이들이 좋다고 하자 그제야 차가 움직인다. 숙소인 지인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땐 역시나 짐을 다 내려준다.

 

 

◇ 바로 전

 

우리 집 앞에 도착해 택시미터기를 보니 7,700원이었다. 방향을 반대로 간 바람에 2천원 정도 더 나온 금액이다. 만 원을 내밀었다. 돈을 받은 운전사는 얼른 내리더니 트렁크에 얹힌 가방부터 내려준다. 마지막까지의 친절에 그저 감동이다. 가방을 건네받고 거스름돈을 기다린다. 내어줄 돈을 잊었는지 운전사가 그냥 차에 오르려 한다. 얼른 거스름돈 이야기를 하자 능청스러움이 섞인 몇 마디가 움직이는 차 안에서 흘러나온다.

“원래 다아 그런 겁니다아.”

 

헛웃음이 나와 하늘을 봤다. 달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