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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역(逆)에 관한 명상 / 구활

 

역(逆)에 관한 명상 / 구활

 

 

'역逆'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도로에서의 역주행과 KTX 열차의 역방향이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 승용차 한 대가 역방향으로 달리는 고속도로의 화면이 실시간으로 비쳐졌다. 사무실에서 무심코 화면을 보던 아들이 차가 달리는 방향 쪽으로 '볼일을 보러 가신다.'는 아버지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가시는 고속도로에 역주행으로 달리는 차가 있으니 조심해서 운전하세요."

"야야, 나 빼곤 모두가 역주행으로 달리고 있으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전화가 끊기기도 전에 '꽈당'하는 소리가 들렸다.

KTX 열차가 프랑스에서 도입될 때 수입을 맡은 공직자가 TV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선진국에도 역방향 좌석을 같은 가격에 이용하고 있으며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말 같잖은 말을 믿지 않았으며 한결같이 역방향을 기피하고 있다. 그래서 철도공사에서도 역방향 좌석의 값을 내렸다. 역방향 열차를 수입할 때 무식해서 그랬다곤 보기 어렵고 아마 말 못 할 속 사정이 있었겠지.

역린逆鱗이란 낱말이 있다. 거꾸로 붙어 있는 비늘이란 뜻이다. 임금의 진노, 상관의 노여움을 비꼬는​ 말이다. 원래 용이란 짐승은 잘 친하기만 하면 올라탈 수도 있지만 목 아래 붙어 있는 역린을 만졌다간 살아남기가 어렵다. 임금 또한 역린만 건드리지 않고 살살 아부만 잘 하면 모든 걸 얻을 수 있지만 코털을 잘못 쑤셨다가는 "여봐라, 이놈의 목을 매달아라."는 엄명이 떨어진다.

이런 모든 것들은 순리順理를 거역한데서 빚어진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명심보감에도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이니라'고 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보면 순존역망順存逆亡이란 등식이 반드시 성립되는 것 같지는 않다.

서부영화에서는 총을 조금 늦게 빼도 서부는 살아남고 재빨리 뺀 악당은 엔리오 모리꼬네 음악이 회오리바람처럼 스쳐가는 거리에서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러나 우리네 세상은 남의 배를 어뢰로 두 동강 내도 민초들이 저축은행에 저축한 돈을 통째로 삼켜도, 국회의원들이 제멋대로 세비를 올려도, 공직자들이 일은 하지 않고 룸살롱에서 비싼 술 마시고 성 접대를 받아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 권선징악은 서부시대의 전설이다.

나도 순리를 그르치고 역주행을 하다 혼이 난 적이 있다. 한국탐험협회 대원 10명이 스쿠버 장비를 들고 남해 욕지도 옆 우도에 들어가 이박 삼일의 일정을 마치고 통영으로 나올 때 일이다. 우린 12개의 공기통과 날선 작살을 갖고 물속으로 들어갔지만 생선회가 될 만한 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평소에 큰 돔들의 놀이터로 소문난 구멍바위 쪽으로까지 들어갔지만 고기들은 근해의 수온이 너무 높아 바다 안쪽으로 피신한 뒤였다.

우도에 머무는 사흘 동안 생선 다운 생선은 맛도 보질 못했다. 숙소로 빌린 우도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밤하늘의 휘영청 달을 안주로 "달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베먹지 마."라는 농담을 던져가며 별빛을 탄 투명하고 순진한 소주만 죽였다. 인근 주민들은 우리가 싣고 간 공기통의 숫자와 소주 박스를 보고 놀라더니 나올 땐 빈병 무더기를 보고 다시 놀랐다.

대원들이 생선회 맛 좀 봤으면 하는 염원이 화두로 변할 때쯤이었다. 연화도 근처에서 인근 섬을 돌아다니며 낚시로 잡은 광어를 수거해 가는 물 칸 배를 만났다. 마침 배 주인은 여자였다. 우린 그간의 사정을 아주 곡진히 설명하자 "스쿠버 선생님들 체면 구겼네요. 작은 것 두어 마리면 되겠네요." 하면서 고기를​ 꺼내준다. 작다는 광어가 방석만 했다. 그래도 배 주인은 육지사람 대접한다며 사만 원밖에 받지 않았다. 의논 끝에 칼잡이로 내가 뽑혔다. 칼질을 할 알맞은 자리가 배가 달리는 역방향이었다. 평소에 멀미가 심하지 않은 편이어서 거꾸로 앉아 포를 뜨고 회를 쳤다. 칠월의 태양 아래 엇 썰어 놓은 광어회는 비취반지처럼 은은하면서도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대원들의 젓가락이 회를 담아둔 코펠 뚜껑 위에서 칼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나는 한 점도 먹을 수가 없었다. 순리를 그르친 역방향의 부작용이 심한 멀미를 일으킨 것이다. 안타깝고 불쾌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역可逆반응이란 것이 있다. 화학반응 때 정반응과 역반응은 동시에 일어난다. 에틸과 물이 생기는 실험에서는​ 정반응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고, 역반응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된다. 두 반응이 균형을 잡아주어 물질의 양이 변화하지 않고 반응이 중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화학평형이라고 한다. 그걸 국가와 사회에 대입하면 안정과 평화다. 그래서 모든 반응은 가역반응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밸런스를 잃어버렸다. 가역반응 자체가 사라진 느낌이다. 촛불집회가 그렇고 결사항전을 외치는 화염병 시위가 그렇다. 오른쪽으로 돌 놈은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돌 놈은 왼쪽으로 돌아​ 평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고함을 크게 지르는 왼쪽의 역반응 팀들이 실험실의 프레스코와 비커를 깰 정도로 난리를 치고 있다. 나라가 위태롭다는 말이다.

아이들 체벌 문제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체벌에도 순기능과 역기능이 상존한다.​ 그것은 조장과 억제로 바꿔 말할 수 있다. 가정교육에서도 매 맞고 큰 아이들은 크게 나쁜 짓은 하지 않지만 어릴 적부터 버릇없이 큰 놈들은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사회의 골칫거리가 도는 경우가 아주 많다.

역기능이 도를 넘을 때의 폐해를 짐작 못 하는 이들에게 감히 권하고 싶다. 열차를 탈 땐 역방향 좌석에도 앉아보고 나처럼 달리는 뱃전에서 거꾸로 앉아 생선회라도 한 번 쳐보면 '순천자 존 역천자 망'이란 명심보감의 가르침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싫다면 고속도로에서 신나게 역주행이나 한 번 해본 후 때 느끼시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