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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길들이기 / 조현미

길들이기 / 조현미

 

 

솥에 쌀을 안친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강낭콩과 푸른 눈의 은행 몇 알, 맵시 있게 가르마를 탄 보리쌀도 한 줌 얹는다. 가스 불에 앉힌 지 얼마나 지났을까. 조곤조곤하면서도 맛있는 소리, 소리들이 코를 간질인다. 무쇠솥은 압력솥처럼 괄거나 요란하지 않아서 좋다. 쉭쉭거리며 밭은 숨을 내뿜는 대신 뚝뚝 밥물을 흘리는 것으로 뜸 들일 때를 알려준다. 솥의 완강하고도 우직한 속성은 진득한 기다림으로부터 연유한다. 이는 무쇠솥이 가진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오래 벼르던 끝에 무쇠솥을 장만했다. 두루뭉술한 몸매가 아이를 여럿 낳은 촌 아낙처럼 수더분했다. 고향 집의 부뚜막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 볼 때마다 정이 갔다. 구수한 밥과 누룽지, 숭늉을 먹을 욕심에 마음이 급해졌다. 동봉된 사용설명서만 믿고 덜컥 길들이기에 나섰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쇳물을 벗긴 뒤 고루 콩기름 칠을 해 약 불에 굽기 시작했다. 비릿하면서도 낯선 쇳내가 고소한 콩기름 냄새에 용해되어 집안은 때아닌 잔치 분위기였다.

밥 짓기를 수행하기 위한 과정의 첫머리가 바로 길들이는 일. 소위 주부 9단들도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까짓 대수려니 했다. 그보다 열 배는 큼직한 고향의 가마솥에도 무시로 불을 때어 밥을 해 본 내가 아닌가.

솥의 반응은 굼떴다. 꽤 여러 차례, 기름옷을 입히지만 기대했던 빛깔이 쉬 나오지 않았다. 끓는점을 넘어선, 체중도 만만찮은 솥을 자반 뒤집듯 안팎으로 구워내는 일이 실상 예삿일은 아니었다. 손목이 휘어질 듯하고 자칫 화상을 입을까 봐 신경이 곧추서니 골치까지 지끈지끈 아팠다. 맞춤한 때 불 조절을 해 가며 재래의 밥맛을 재현하는 일 또한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하긴, 너무 오래 전기 압력솥에 길들여진 생활이었다. 솥과 신경전을 벌이다 보니 신혼 적의 일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성격이 급한 데다 참을성이 부족하고, 작은 일 하나에도 격하게 반응하던 나는 영락없는 압력솥이었다.

남편과 나는 아주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당연히 남편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확신했다. 그런 그가 언제부턴가 애오라지 밥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마자 “밥 먹자.” 또는 “밥 좀 줄래?” 혹은 “밥 다 돼 가니?”

게다 한 술 더 떠 식사를 마치고 나면 당연하다는 듯 잠자리로 직행했다. 그즈음의 그는 오로지 밥과 잠을 위해 세상에 온 듯했다.

대부분의 불화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그가 밥을 청할 때 묵묵히 밥상을 차려냈어야 했다. 과로와 음주에 수면을 저당 잡힌 그를 위해 모른 척 방문을 닫아 줬어야 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연애 때 그러했듯 가정이라는 행성 또한 나를 주축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남편만의 세계를 인정하지 못했고 그와 관련된 일은 무엇이든 공유해야 직성이 풀렸다.

남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집이란 오로지 심신을 편히 뉠 수 있는 안식처였다. 밥 짓기와 빨래, 청소나 설거지는 당연히 여자의 몫이어야 했다. 호의에서 나온 관심조차 돋보기를 들이댄다며 화를 냈다. 어느 땐 이부자리를 개는 일로 비롯된 언쟁을 여러 날 접지 못하고 각방을 쓰기도 했다.

이틀에 걸쳐 무쇠솥 길들이는 작업을 마쳤다. 필요 이상으로 조바심을 낸 탓인지 온 삭신이 삐걱거렸다. 옛집의 솥처럼 도담한 멋은 덜했지만 공을 들인 만큼 태깔이 나는 솥을 보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이제 맛있는 밥을 지을 일만 남았다.

쌀을 씻어 쌀 반, 설렘 반 솥에 안쳤다. 생김처럼 의젓한 양이 스위치를 올리기 무섭게 호들갑을 떠는 압력솥과는 차원부터 달랐다. 이윽고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솥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밥맛은 어째 기대치에 못 미쳤다. 솥을 길들이는 과정이 잘못되었나 싶어 사용법을 재차 읽어봤지만 별다를 게 없다. 밥때를 알리는 압력 추처럼 수다를 떨었던 게 못내 머쓱했다.

무쇠솥은 고깃국을 다섯 번이나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몸에 기름이 배어야 태깔도 나고 녹에 대한 내성이 생겨 길이 드는 것이다. 물기를 닦는 걸 깜빡하고 며칠 집을 비웠더니 그새 녹이 슬어 온몸이 열꽃투성이었다. 깜냥에 솥과 친해지려고 무시로 기름옷을 해 입혔는데도 어지간해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외모만 수더분했지 순 엄살쟁이에다 저만 봐달라고 조르는 욕심쟁이었다. 어쩌면 데리고 사는 내내 길을 들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솥의 형상을 갖추었다고 해서 다 솥이 아니듯 부부 사이 또한 마찬가지다. 전기 압력솥의 만능을 무쇠솥에도 기대했다. 삼십 년 가까이 시댁의 문화에 길이 든 남편을 하루아침에 내 식으로 바꾸려 했다. 물의 양과 불의 세기와 뜸 들이는 시간이 두루 밥맛에 관여하듯 남편의 이면 또한 내가 모르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설익거나 탄 밥이 오로지 솥의 무능으로 비롯된 거라고 생각했다. 잦은 다툼의 근원은 애오라지 남편 쪽에 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무쇠솥은 천생이 느림에 맞춰져 있었다. 섭씨 천여 도의 용광로를 거친 쇳물이 솥의 꼴을 갖추기까지 오로지 인내심 하나로 버텼으리라. 쇠를 녹이고 다듬는 데 투입된 시간만 셈했지 솥이 불길을 받아들이는 시간은 간과했다. 누대를 대물림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길이 들었을 옛집의 솥을, 구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무쇠솥과 비교했다.

솥과의 동거가 수년째 접어든 지금, 늘 쾌속에 머물던 내 삶의 속도도 어지간히 더뎌졌다. 차진 밥과, 아삭한 누룽지를 얻기 위해선 솥의 일거수일투족을 맥박처럼 읽어야 한다. 종종 관심의 옷을 해 입혀야 녹이 슬지 않는다. 이러한 우직함과 단순함이야말로 남편과 솥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구수한 밥내가 남편을 깨우러 간 사이 밥상을 차린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그에게 보송보송한 수건을 건네준다. 내친김에 밥상까지 대령하니 얼굴이 갓 핀 메꽃처럼 환해진다. 거안제미(擧案齊眉)까진 아니더라도 제때 밥만 주면 아이처럼 단순해지는 남편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면 어떻고, 부창부수(婦唱夫隨)인들 또 어떠하리. 우리 집의 일기가 종일 ‘맑음’에 머물 수만 있다면 까짓 수고쯤 대수랴 싶다.

애초 이질적인 쌀과 보리, 콩 들 또한 물과 불, 시간을 함께 겪으며 조금씩 서로에게 익숙해졌으리라. 그러는 동안 기꺼이 서로에게 삼투되었으리라, 솥이라는 둥근 우주 안에서.

돌아보니 길들인다는 것은 면면이 다른 그를 내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이면을 인정해 주고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상대를 배려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천천히 배어드는 것이었다. 한 사물이 다른 사물과, 하나의 성질이 다른 성질과, 내가 당신에게 물들어 가듯,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