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뱅이 / 장금식
중간은 둥글게 비어 있고 가장자리를 향해 짚으로 촘촘히 엮여있다. 숭숭 구멍이 난 곳이 없어 흐트러짐을 볼 수 없다. 각진 모서리도 없다. 짚으로 만들어져 차갑지 않고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인내심 많고 흔들림이 없는 강인한 우리의 옛 어머니들을 닮았다.
그 옛날 힘든 시절, 따뱅에는 밭에서 무·당근·고구마·감자 같은 것으로 식솔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이고 날랐던 운반 수단이었다. 빨래와 일꾼들의 새참까지 이것이 없었다면 여인네들의 고된 삶을 더욱 힘들게 하였을 터, 어떻게 보면 여자들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물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짚으로 둥글게 빙빙 틀어 놓은 따뱅이 안에는 한 올 한 올 우리의 옛 어머니들의 사연이 얼마나 많이 얽혀 있을까? 씨줄과 날줄 사이에는 양지가 음지가 되고 빛이 어둠으로 되는 서러운 이야기. 앞이 뒤가 되고 행복이 불행으로, 삶이 죽음으로까지 바뀌는 수많은 사연들이 그토록 빼곡하게 얽혀있기에 세월의 무게에도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우리 어머니도 이 따뱅이 속에 숱한 사연을 숨겨 놓고 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어머니를 찾아간다. 낙동강 젖줄을 끼고 있는 한적한 마을이다. 시골집 텃밭 한구석에 따뱅이가 다소곳이 앉아있기에 어머니에게 요즘도 따뱅이를 쓸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너그 온다케가 떡 한 말 방앗간에 맽낏다가 무거버가 따뱅이 머리에 얹저가 안왔나" 따뱅이의 흔적을 더듬으며 어린 시절 촘촘히 엮어놓은 기억의 똬리를 풀어본다.
개울가와 논두렁을 오고 가며 따뱅이를 얹고 새참과 빨래짐을 머리에 인 어머니를 따라다녔다. 나도 어머니처럼 따뱅이를 머리에 얹고 대야를 이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가 올려준 짐은 무겁지가 않았다. 나도 재미로 해 보았지만 어머니가 따뱅이와 함께한 삶은 무겁고도 벅찬 것이었다.
양반집이라고 장남에게 시집온 어머니다. 당연히 식구가 많고 일이 많았다. 아버지는 집안의 장손이라 온통 사랑만 받고 자라서 밭일과 같은 힘든 일은 할 수 없을뿐더러 성격마저 우유부단했다. 어머니 옆에서 늘 뒷짐만 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이렇다고 불평을 할 수 있었던 시대는 아니었다. 한 가문의 맏며느리는 무엇이던 참고 헤쳐 나가야 하는 은밀한 임무를 지니고 있었기에 불평을 하면 자격 미달이거나 스스로에게 잘못된 죄의식을 덮어 씌어야만 했다. 늘 수많은 식구와 과수원 일을 도우는 일꾼들 관리까지 어머니가 다 하면서도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여장부 같은 어머니가 계셨기에 배고프지 않은 풍요로운 유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과일의 달콤한 과즙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영원하지 않았다. 내가 고3 때 아버지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사과밭과 복숭아밭을 담보로 함께 운수사업을 하자는 친구의 제안에 전 재산을 다 투자해서 날려버렸다. 집안의 허리 역할을 해 주어야 할 아버지는 어머니의 허리를 굽어지게 하고 어머니에게 무거운 짐을 얹어 주었다.
모두는 한순간에 따뜻한 보금자리를 잃고 낙동강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빠져나오기에는 강물이 너무 깊었다. 한 가닥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도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한창 공부를 해야 할 우리 모두가 남의 집 일꾼이나 식모로 들어가도 모자랄 판이라고 했다. 자식을 길거리로 내 몰아야 하는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따뱅이는 펄펄 끓는 뜨거운 냄비를 받치고 있듯이 실질적인 고통이 시작되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뜨거운 열기가 머리 밑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원래 마른 몸은 무거운 빨랫줄을 지탱하고 있는 바지랑대보다 더 가늘어졌다. 머리에 가득 담은 짐을 지고 허둥지둥 바동바동 주춤거리다 또 한 발 한발 곧 쓰러질 듯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 없는 강인한 힘이 어디에선가 솟아올랐다. 올망졸망 다섯 자식이었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순간순간 따뱅이를 벗어던지고 싶었지만 자식을 보며 따뱅이의 새끼줄을 꽉 잡았다고 했다. 따뱅이 테두리에 늘어져 있는 그 새끼줄을 우리도 놓지 않으려고 움켜쥐고서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금융업에서 일하는 언니에게 네 자식을, 둘째 삼촌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살펴 달라 하며 차미만 가지고 아버지와 상경했다. 그날부터 김밥을 말아서 남대문 새벽시장에 발이 부르트고 닳도록 다니기를 수십 년, 조금 남아 있던 빚마저 다 갚고 다시 오뚝이처럼 흔들림 없이 바로 섰다.
무슨 힘으로 그렇게도 강하게 내리누르던 그 짐을 지탱할 수 있었을까? 자식에 대한 질긴 사랑이다. 어머니가 이고 진 짐이 때로는 미지근하고 어떨 때는 뜨겁고 또 차갑게 느낄지라도 그 짐을 받치고 있어야 된다는 오로지 그 일념 하나다. 새벽시장의 험한 말투를 참은 것도,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쩔까 하는 당혹감도, 장사한다고 함부로 무시하는 아픔도, 자식과 부모를 두고 떠났다는 비난의 소리도 모두 참을 수 있었다.
이렇게 가족들을 위한 어머니의 따뱅이가 있었기에 다섯 자식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었고 삶의 쓰라린 아픔을 모두 견뎌 낼 수 있었다. 어머니도 제일 소중한 가정을 지킬 수 있었다. 따뱅이 위에 앉아 쉬고 있는 어머니가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다.
따뱅이는 닳고 닳아 허물 거린다. 어머니의 힘든 삶도 세월 속에 풍화로 먼 산에 하얗게 피어나는 바람꽃이 되어간다. 질곡 같은 어머니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는 어머니의 따뱅이를 보며 마음속에 흐르는 눈물을 꾹 삼키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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