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 강숙련
나비는 아름다운 곤충이다. 애벌레나 번데기였을 적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활짝 편 날개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기하학적 무늬가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너울너울 날아다닌다. ‘호접’이라고 불러 보면 운치가 있다. 그러나 나비라고 부를 때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나비-. 하고 불러 보면 어쩐지 그 느낌이 안타깝다. 아래위의 입술이 순간적으로 살짝 붙었다 떨어지면 가볍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잡힐 듯 말 듯 달아나는 모습이 금새 눈에 어린다. 조금 세게 잡으면 꽃잎 같은 날개가 으스러질세라, 너무 살짝 잡으면 어느새 팔랑 날아가 버릴세라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설화 속의 나비는 슬픈 열녀의 옷섶이었다. 혼인식 전에 죽은 남편의 무덤 속으로 빨려 들어가다 찢어진 저고리 섶이 나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흰 가마를 타고 온 새색시가 이승에다 남긴 마지막 흔적이라니, 어쩐지 애련한 생각이 든다.
하늘하늘한 두 날개가 손안에서 파르르 떠는 절대 무저항의 몸짓은 가마를 타고 온 여인의 혼백인양 애처롭다. 벌이나 모기처럼 따끔한 침을 쏘기는커녕 이따금 안간힘으로 물어뜯는 잠자리나 매미의 발악 같은 것도 없다. 오로지 손끝에 살짝 묻혀 놓은 분진 같은 비늘가루가 고작이다. 그래서 나비는 더욱 아름답고 가련한 이름이다.
나방과는 그 족속이 다르다. 성품이 다르고 아름다움이 다르다. 처녀나비, 물결나비, 제비나비, 신부나비, 신선나비, 공작나비, 부전나비... 종류만 해도 수백 종이 넘건만 하나같이 꽃이나 작물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꽃 속에서 꿀을 먹고 꽃 속에서 잠을 잔다. 한여름 밤, 불을 향해 돌진하는 부나비나 독성을 지닌 나방과는 근본이 다르다. 그들이 야행성의 해충이라면 나비는 암 수 꽃술의 사랑을 전해 주는 한 낮의 전령사다.
이른 봄, 나비 중에서도 흰나비를 먼저 보게 되면 상주가 되거나 이별을 한다고 언짢아 한다. 호랑나비나 검은 나비는 괜찮고 흰나비는 안 된다. 무덤 속으로 들어간 나비의 본체가 소복의 저고리섶이기 때문일까. 실제로 배추밭이 많은 우리나라는 십중팔구가 흰나비다. 검은 나비나 호랑나비를 먼저 볼 확률은 상대적으로 적다. 나비의 설화는 이미 우리들의 의식 속에 괜한 고정관념을 심은 셈이다.
이규태의 <한국인의 기속>이란 책에 나비 이야기가 있다. 옛 기방의 여인이 저고리 앞섶에 노란 나비 수를 새기고 있으면 기둥서방을 찾는다는 광고요, 이른 새벽에 성황당 고갯마루에서 남자의 옷섶을 자른 ‘나비 베’를 내미는 여인을 만나면 이유를 불문학 아내로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나비 수를 앞섶에 새긴 기생은 머리를 얹어 줄 한량을 기다리고 아비 베를 지닌 소박녀는 평생을 책임 져 줄 남편을 기다린다. 나비는 여인의 순정을 안고 나붓이 사내의 가슴속으로 날아든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 땅에서 노랑나비 한 마리가 막 부화하여 화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나비가 허물을 벗듯 자신의 옷을 벗어 던짐으로 유명해진 여인이다. 그녀가 벗으면 도색도 예술이 되는 묘한 일이 벌어졌다.
인터넷 플레이보이의 누드모델인 그녀는 처음 영상을 통해 우리에게 날아왔다. 젖가슴 보다 더 은밀한 곳에 나비 문신을 한 여인, 한국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여인. 그녀는 뭇 남성에게 마음의 여인이다.
조선의 기생은 옷섶에 나비를 수놓고 미국의 누드모델은 맨살에 나비를 새겼다. 나비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미인의 몸에 자국을 남겼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슬픈 나비들이다.
오페라 나비 부인도 일본의 기생계급인 게이샤의 사랑 이야기다. 나비는 주로 화류 방의 여인과 상관이 있나보다. 하기야 ‘꽃과 나비’, ‘미인과 나비’는 퍽도 관계가 있을 것 같은 어감이다.
나비의 이런 속성은 ‘벗는다’는 데서 생각의 시작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추한 애벌레의 허물을 벗고 화려하게 날아 보고 싶어요.’노랑나비 신드롬을 일으킨 여인의 말이다. 나비의 한 살이야말로 어두운 과거를 벗어버리고 다시 태어나는 미래지향의 과정이다.
신분 상승과 현실탈피를 위해 필연적으로 허물을 벗어야 할 필요가 그들에겐 있었던 것이다. 평생을 열녀로 살아야 하는 흰 가마의 여인도, 소박녀의 치욕 속에 살아야 하는 나비 베의 여인도, 돈 많은 한량을 기다리는 기방의 여인도, 누드 사진 속의 그녀도, 모두 모두 벗어나고픈 삶의 껍질이 있었던 게다. 나비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발돋움하는 일이다. 꿈을 일구는 일이다.
누가 이 나비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슬프고 가련하고 아름다운 내 누이 같은 나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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