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 신성애
전광판에 도착하는 열차가 표시되면서 빨간 불빛이 깜박거린다. 나는 대합실 바닥의 무늬를 헤아리며 속절없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윽고 개찰구로 사람들이 밀려오고 오락가락하던 내 발길이 분주해진다. 엇비슷한 얼굴들이 다양한 표정을 하고 썰물이 되어 빠져나온다. 망망대해에 부표 같은 얼굴을 찾아 인파 속을 헤집는 가슴이 요동친다. 아들과 함께 걸어 들어올 그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터널입구에 선 듯 아득해지며 기다리는 내 마음이 갑자기 바빠진다. 보이지 않고 형체도 알 수 없는 터널에서 기적소리가 울린다. 마음속 터널의 모습을 찾아 잠시 눈을 감아본다.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출렁이는 수면위로는 온전한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승객이 거의 들어왔다고 생각되는 순간 내가 쳐두었던 울타리가 허물어지며 바람이 인다. 개찰구 너머 저 만치서 커다란 여행가방을 밀며 아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해풍에 씻긴 바위처럼 소금기를 머금고 있는 구릿빛 얼굴이다. ‘여기다’ 아들을 향해 외치면서 나의 눈길은 재빨리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에 머문다. 무슨 말인가 해야 할 텐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린다. 나도 모르게 굳은 얼굴로 ‘어서 와요’ 한마디를 건네고 가방을 받아든다. 가방의 무게만큼 묵직한 둘의 마음이 내게로 옮겨졌다. 재바르게 나는 아들과 그녀를 나란히 세워두고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려본다. 그들에게서 하늘을 향해 비상할 날개가 돋아나는 환영을 보며 구름 위를 걷듯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로등 불빛에 하루살이가 날아들고 후텁지근한 유월의 밤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시동을 건채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남편 앞으로 짐을 밀고 역사를 빠져나온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남편에게 인사를 한다. 무슨 말인가를 해야 되는데 쉽게 입이 열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냥 웃기만 한다. 활짝 웃으니 가지런하지 않은 덧니가 불쑥 드러난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었다. 전형적인 그 나라의 얼굴모습이다.
유학간 아들이 여자친구를 사귄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 요사이 결혼하기 힘들다는데 자기가 골라온다면 그런 다행이 없다 싶었다. 중매의 번거로움도 없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통하면 이국땅에서 서로에게 힘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사귀는 여자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도 내가 심정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나라의 여자라니 무조건 거부감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느껴지는 저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무언의 감정, 묘한 라이벌의식이 나의 자존심을 건들었다. 남편은 국제화시대이니 별문제 없다고 말을 했지만 하필이면 일본사람이냐고 어깃장을 놓았다. 나는 절대로 그 나라말을 배울 수 없으니 결혼을 하려면 한국말부터 배우라고 엄포를 놓았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부릴 수 있는 특권인양 당당하게 요구했다. 나와 달리 남편은 그 날부터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책읽기를 즐겨하지 않더니만 매일 같이 회화 책을 펼쳐들었다. 서로 정이 들려면 대화가 되어야한다고 이어폰을 끼고 연습하였다. 그 모습에 나는 괜히 심술이 나서 쓸데없는 일에도 꼬투리를 잡고 시비를 걸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은 내 말을 콧등으로 들으며 어눌한 일본말을 은근슬쩍 하곤 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해가려는 남편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나는 자꾸만 심드렁해지는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설마 결혼까지 할까, 저러다가 헤어지겠지. 나는 아들의 전화가 올 때마다 꼬치꼬치 캐물으며 안달을 했다.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TV 속에 비친 외국인 며느리들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며느리는 남편 하나만 바라보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지만 말이 통하지 않은 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았다. 부모형제를 떠나 이방인으로 살면서 느끼는 소외감은 그녀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내딛는 그 걸음에서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는 그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목적지를 잃어버린 여행객처럼 어두운 터널 속에서 허둥거리고 있었다. 그 터널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통로이면서 사람을 꼼짝 못하게 가두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들이 뚫고 지나 가야하는 터널은 너무 길고 아득해 마음 졸이게 했다.
터널은 세상의 안과 밖을 이어주는 통로이면서 빛과 어둠의 경계이기도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물 속같이 고요한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된 터널은 최초의 빛과 연결된 통로이다. 첫울음을 터트리며 입성한 그곳에는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집이라는 울타리가 쳐져 있다. 눈부신 햇살이 가득한 그 마당에서 몸과 마음이 훌쩍 자라면 아이는 울타리너머의 삶이 궁금해져 깨끔 발을 한다.
도처에 널려있는 크고 작은 터널은 시작과 끝이 존재하며 어려운 지형을 통과하는 지름길이다. 또한 너와 나를 이어 우리가 되게 하는 연결고리 이기도하다. 터널의 캄캄함을 두려워하여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면 더 오랜 시간 길 위에서 방황해야한다.
하늘을 바라보며 미루나무처럼 자란 아이가 무지개 빛을 찾아 세상 밖으로 나가려 터널 앞에 서있다. 터널 너머의 세상이 어떤 곳인지 가늠조차 못해도 신발 끈을 고쳐 매며 마음을 다진다.
가로막힌 벽을 허물어낸 마음의 터널은 서로 소통되어야 제 몫을 다한다. 소통되지 않은 감정은 물에 뜬 기름처럼 빙빙 돌다 그릇 가장자리에 눌어붙는다. 세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온통 설거지통을 미끈거리게 한다. 나는 밥상을 차리기 전에 설거지 걱정부터 하는 오지랖을 갖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보다. 나물에 참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무치면 양념과 어울려 맛있는 반찬이 되듯이 세상사 하기 나름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식 앞에서는 때로는 무용지물이 되어 아예 소통을 거부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한사코 밀어낸 우려했던 일이 막힌 터널이 되어 현실로 닥쳤다. 냉방된 차안에서 영어와 일어, 한국어가 비빔밥처럼 뒤섞여 어우러졌다. 말귀를 서로 알아듣는지 셋이서만 웃고 떠들고 있다. 내 입과 귀가 먹통이니, 이러다가 나 혼자만 왕따 당하는 게 아닌가 은근히 샘이 났다. 내 눈치를 살피던 남편이 아들 녀석을 불러놓고 한마디 한다. 집안이 잘 돌아가려면 너희 엄마와 전화라도 자주 주고 받아야하니 빨리 한국말을 가르쳐 라고 엄명을 내린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며느리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고 나니 마음은 한결 홀가분해진다.
아무려나, 말이 안통하면 만국공통어인 몸짓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면 될 것이다. 뻐드렁니에 홑겹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내가 말을 건네면 앵무새처럼 따라 한다. ‘귀엽다, 이쁘다, 파이다’ 라고 그대로 흉내 낸다. 이제는 아무렇게나 말도 함부로 내뱉을 수 없다. 나도 이제 틀어진 마음을 돌려먹고 새로운 언어에 도전해야 할 가보다.
어쩌면 내가 갖고 있는 막연한 거부감은 낯선 나라의 며느리를 받아들여 함께 헤쳐 나가고 적응해 가야하는 것이 두려웠는지 모른다. 살아간다는 건 어차피 수많은 터널을 지나야하는 긴 여정이다. 터널 속에 헤매기는 둘 다 마찬가지이니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별도리가 없을 듯하다.
새처럼 콩닥 이는 가슴을 안고 미소 짓는 그 얼굴 위로 아직은 촛불 같은 아들의 손을 잡은 터널 속 그녀를 또 다른 터널에 선 내가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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