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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 시

[명시]나무에 대하여 / 정호승

 

나무에 대하여 / 정호승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