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희고 눈부시다 / 김선굉
오래 닫혔던 가슴의 빗장을 연다.
잘 열리지 않는다.
깊게 쌓인 먼지에 선명한 지문을 남기며 힘주어 흔들면,
몇 번의 반동만 풀썩 먼지를 날리며
문은 이윽고 삐, 꺽, 열린다.
삐이꺼억!
광솔이 다 된 나무의 결들이 부딪치며 내는 마찰열에
시간은 심한 화상을 입는다.
갈비뼈의 촘촘한 사이사이를 훑고 지나가는
강한 빛!
섭씨 1200도를 넘기면 빛은 희고 눈부시다.
어두운 기억의 심연으로 흰 길이 길게 휘어져 놓이고,
나는 그 길을 오래 걸어
유년쪽으로 꺾여 흐르는
환상 같은, 환상의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수필세상 >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시]어떤 사기 / 최영미 (0) | 2010.04.12 |
---|---|
[명시]이별가 / 박목월 (0) | 2010.04.11 |
[명시]서리꽃 / 유안진 (0) | 2010.04.09 |
[명시]어혈 / 공영구 (0) | 2010.04.08 |
[명시]지실댁 / 곽재구 (0) | 2010.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