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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첫눈 / 은옥진

첫눈 / 은옥진

 

 

 

점심을 먹고 가겠다던 딸아이는 오늘도 가기 싫은 눈치다. 하루하루 미루어온 것이 그렁저렁 열흘이 넘는다. 아침에 오면 찻길이 한산한 저녁에 가계다고 하고, 저녁이 되면 길이 미끄러우니 다음날 가계다고 한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끝낼 참이라더니 그 일을 마쳐좋고도 뭉그적거린다.

안되겠다 싶어 내가 서둘렀다. 흐트러진 옷가지를 챙기고 쓰던 것들을 가방에 넣었다. 며칠 전부터 만들어 냉동시켰던 찌개거리도 꺼내놓고, 가자마자 금방이라도 먹을 수 있는 몇 가지는 따로 그릇에 담았다. 보자기에 산 반찬 그릇을 본 딸아이는 그제서야 일어나 신발장 문을 연다. 곁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던 사위가 가방을 받아들고 앞장을 선다.

현관을 나서니 마침 내려오던 승강기가 우리 앞에서 멎는다. 어서 타라며 들여보냈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떨구니 왈칵 목이 멘다. 엉겹결에 단추를 눌렀다. 스르르 문이 닫힌다. 덜컹 하고 내려가는 순간에 가슴에선 뜨거운 것이 치민다.

현관문을 닫고 거실로 올라서니 휑뎅그레 어지럽다. 딸아이가 있었다고 해야 제 방에 누워 지냈을 뿐인데, 그 아이가 뜨고 나니 갑자기 빈 집처럼 허허롭다. 탁자 위에 놓인 알람 시계 초침 소리가 바늘 끝이 되어 가슴을 찌른다.

반찬거리를 담을 때만 해도, 옷가지를 챙길 때만 해도, 지금 같지는 않았다. 그저 가슴이 시리기만 했다. 너무 서둘러 보낸 것은 아닐까? 도로 부를까. 그 자문이 구원이라도 된 것처럼 잰걸음으로 다용도실 창문을 열었다. 딸아이가 내려가고 있음직한 곳을 더듬었다. 바로 거기, 뒷마당을 지나 전나무가 서 있는 내리막을 가고 있다. 사위는 몇 번씩이나 뒤쪽을 올려다보며 걷는다. 서너 번쯤 더 그러는 것을 보자,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사위는 양손의 짐을 한쪽으로 모아들고 빈 쪽 팔을 번쩍 들어 보인다. 옆으로 머리를 돌리는 것 같더니, 그때까지 고개를 떨군 채 걸어가던 딸아이가 내 쪽을 바라보며 발길을 멈춘다. 그리고는 둘이서 연신 손사레를 친다.

걸어가는 두 아이의 모습이 흐릿하게 뭉개지면서 세 사람 네 사람으로 보인다. 비탈진 굽이를 내려 모퉁이를 막 돌아설 때 빨간 코트 자락이 잠깐 펄럭이는가 싶더니 이내 시계에서 사라진다. 그 애들의 손짓이 허공에 나와서 남아 있으려니 눈길을 드는데, 앞을 막아선 이웃 동(棟) 위에는 눈구름이 잿빛으로 내려앉는다.

작년 이맘때다. 딸아이가 시집가던 날이.

그날도 울지는 않았다. 새신랑이 튼실하여 딸아이를 보내는 아쉬움이나 섭섭함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결혼 적령기라는 나이보다 늦어진 터, 조바심치던 어미였으니 후련히 돌아서 왔다.

자그마하나마 전세 아파트에 살림을 옮기고, 여행에서 돌아와 먹게 될 음식을 만들어 나를 때도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햇살 가득 고인 발코니에는 오롱조롱 꽃들이 방긋거렸다. 화분에 심은 벤자민은 푸르러 잎새마다 스치는 모차르트 선율이 집안 가득 넘쳐났다.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며 쉬임없이 맞일하는 두 사람의 빈집은 언제 문을 열어도 말끔했다. 서둘러 아이를 가져야 될 나이니 일터를 그만두는 게 좋잖겠느냐고 말햇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며칠 뒤에, 난데없는 재난이 덮칠 줄이야. 아침 출근시간이 늦어진 딸아이는 바삐 택시를 잡아타고 골목을 나오는데, 갑자기 옆길에서 튀어나온 승용차에 받혔다는 것이다.

X-ray 사진상으로는 크게 다친 데가 없다는데, 우선 허리를 못 쓰고 받힌 쪽 다리를 짚지 못한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외에는 잠잘 때까지도 무거운 추(錘)를 메달고 있어야 했다.

특별한 외상도 없기로 위 일어나려니 수월케 생각했는데, 여름이 다 지나도록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숙고한 끝에 병원에서 쓰던 물리치료기구를 그애가 쓰던 방에 설치하고 집에 데려다 놓았다. 두 달 반의 지루한 나날이 이어졌다.

여름의 열기가 수그러들고 소슬바람이 일면서는 그 아이 입가에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고, 뒷마당 꽃사과나무는 올 들어 잇꽃처럼 붉은 열매가 다닥다닥 매달렸다. 붉게 익은 그 열매를 보고서는 빨간색 코트를 입고 싶다면서 가까스로 나들이를 했다. 코트를 사오던 날, 새옷을 입고 벗으며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린다.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 앞에 섰다가는 다시 지우고 그러기를 여러 번. 그런 딸아이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두둥실 구름 위에서 노닌다.

이번에는 큰 숨을 내쉬더니, 신발장에서 하이힐을 꺼내 신고 몇 걸음 옮겨딛다가 풀썩 주저앉는다. 구두를 벗어버리고 우두커니 창 밖을 내다본다. 그럴 때는 그 아이 눈에 짙은 그늘이 서리고, 내 마음에도 먹물이 고인다.

제 방으로 들어가 TV를 켠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설원에서 스키를 타는 장면이 확대된다. 스위치를 눌러 끄더니 침대에 가서 누워버린다. 희망과 좌절이 반반씩 대거리로 교차된다.

아이 넷을 두어 어느 하나 마음 밖으로 내치지 않았건만, 그 애는 항시 내 가슴 명치 끝에 있다. 맏이여서 그럴까. 여린 순 같아서 그럴까. 나이가 들어서 세상 먼지도 묻었을 법한데 여전히 순하기만 하다. 어려서부터 여낙낙하여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지만, 그것이 되려 실팍하지 못한 연연함으로 처졌다.

딸아이가 조금 우선해지면서 내가 더 안달이 났다. 6개월이 넘게 병구완을 하는 동안 출퇴근길이 멀어 고생한 사위. 아무리 편하게 있으랬지만 제 집만 하랴 싶은 생각에, 어서 너희네 집으로 가거라고 다그치는 심정이 되었다. 결혼할 때 등을 떼밀어 보낸 에미가, 또 지금은 아직 성치도 않은 딸을 마구 내 몰아야 하는 에미가 될밖에 없다니…….

닫혀 있는 딸아이의 방문을 열었다. 여느 때와 똑같다. 방이 어두워 낮에도 늘 켜두는 침대 어리 작은 등이 꺼진 것 외에는. 책상 위의 볼펜, 좀전까지 만지작거리던 음악 테이프와 CD, 로션, 쓰고 갈까 머뭇거리다 두고 간 모자, 읽던 책 등. 미처 끄지 못했는지 카세트 라디오에는 불이 들어와 있는 채다.

이불 자락을 젖혔다. 아직 따뜻하다. 베개 대신 베고 있던 얇은 방석은 가운데가 꺼져 있다. 장신구마냥 허리에 매달고 지내던 쇳덩어리 추는 발치에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

다시 창가에 섰다. 어느새 눈발이 날린다. 첫눈이다. 그 애들이 걸어간 언덕빼기에는 딸애만한 여인이 유모차를 밀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 꽃을 사러 가야 되겠다. 내일이 바로 그 애들이 첫 번째 맞는 결혼기념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