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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너절하게 죽는구나 / 이숭녕

너절하게 죽는구나 / 이숭녕

 

 

 

 

지난 1월 23일, 영하 10도를 넘는 날씨에 춘천에서 화천으로 넘어가는 ‘오음제’고개에서 우리 내외는 버스를 내려 오봉산으로 붙은 것이다. 그때 틀림없이 죽어야 할 위기에 살아난 것이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싸늘해진다.

그것은 T산악회에서 내 이름으로 컵을 마련했으니 오봉산 등행대회엔 꼭 참석해 달라는 청을 받자, 어딘가 빚을 진 것 같아서 응낙을 하고 만것이니 이것이 이번 실수의 큰 이유가 된다. 후배 중에는 이 소식을 듣고,

“암벽이 두 곳이나 있습니다. 70노인으로선 무리입니다. 더구나 처음 길이신데, 그만두시죠!”

그러나 T산악회에선

“제 1봉, 또는 제2봉에서 계곡길로 내려서면 됩니다.”

라고 하기에 중무장과도 같이 스토움 파커까지 지고 고도 7백 미터의 리지형(型) 능선에서 계곡길로 들어설 코오스를 찾는다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한 곳 사면(斜面)은 내리닫이지만 잡초 위에 낙엽이 있기로 밑을 토양으로 믿고 그리로 내려서기로 한 것이다. 목적지는 댐의 북쪽 청평사이니 대체로 동남방 4킬로미터로 본 것은 좋았다. 아내의 각오를 촉구하면서,

“아이젠을 벗고 짐을 다시 꾸려요. 피켈로 미그러지지 않게 잘 조절해요……”

내가 한 걸음 내리딛자, 걷잡을 수 없이 냅다 미끄러지며 한두 차례 딩굴었다. 겨우 피켈로 자세를 바로잡고 속력을 멈추고서 뒤를 돌아보니, 아내가 쏜살같이 앉은 채로 내리닥쳐 내 등에 와락 덮친다.

“다친 데 없소?”

“없어요, 당신은……?”

우리는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앉은 채로 미적미적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30미터쯤에서 삽시간에 가시덤불에 들이박히고 말았다. 일어서려니 등산모, 스토움 파아카, 룩작…… 등 마구 갈구리로 찢어 내는 소리를 내며 무서운 힘으로 우리를 잡아훑는다. 가지를 꺾고 칡넝쿨을 넘고 해서, 간신히 이 고비를 뚫고 나왔다. 그러자 오른쪽으로 멀리 허연 얼음장이 보였다.

“저기가 계곡이야. Y과장이 계곡길로 가랬으니 거기에 길이 나오겠지.”

조심조심 가 보니 계곡은 틀림없는 계곡이지만, 그 아래가 얼음 덮인 낭떠러지라서 우리는 앞의 능선으로 오르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는 하늘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골짜기라서 지옥으로 통하는 길목 같다. 우리는 능선을 오른다고 체력을 거의 다 낭비한 셈인데 낙엽이 두껍게 쌓인 급경사를 오르려니 발을 붙일 수가 없이 낙엽과 같이 미끄러진다. 나는 마음이 다급해짐을 느꼈다.

“피켈로 찍고 올라가요.”

라고 소리를 지르고서 시범을 보였다. 피켈을 힘세게 박고 또 자루를 뽑고 하면서도 한두 걸음 올라선다. 이 피켈을 힘세게 때려 박지 않으면 낙엽의 겉만 찍을 뿐이다. 피켈을 찍고 두어 걸음 올라서서 다시 그 피켈을 뽑기란 수월한 일이 아니다. 도 피켈을 뽑자마자 그 위에 때려 박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곧 미끄러져 내리떨어져 밀린다. 나뭇가지를 휘어감으면 밑둥에서부터 와작작 소리를 내고 떨어져 가니 나무도 신용이 안 된다. 아내의 숨소리가 등 뒤에서 다급하게 들린다. 우리는 드디어 능선에 올라섰다. 아내는 주저앉아 호흡을 가다듬는 듯이 말이 없다.

“간식을 있는 대로 다 꺼내요, 우선 먹어야지.”

아내는 룩작의 양 옆 주머니에서 설마하고 입가심 정도로 가져온 소량의 간식을 다 내려놓는다. 초코렛 3통, 귤 5개, 오렌지 통조림 1깡통. 우리는 이것을 나누어 먹었다. 그러자 아내는

“저 봐요, 사람의 소리가 들려요.”

라고 하나 내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사막에서 헤매다가 ‘오아시스가 보인다’고 정신 이상을 일으키는 이야기는 있지만 나는 아내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일어서서 계곡 쪽을 향해서 배에 힘을 주고,

“야호!”

하고 크게 불러 보았다. 그 ‘야호’소리는 여러 골짜기에 매아리가 되어 ‘야호’, ‘야호’, ‘……’로 연이어 되돌아오는데 우리의 죽기를 기다리는 악마의 소리같구나.

다시 아래의 계곡으로 내려가서 길을 못 찾고 그 남쪽 능선으로 오르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이 새 능선을 오르느라 체력을 거의 송두리째 소비한 셈이다. 피켈을 찍고 뽑고 하면서 오르려니 나는 피켈 자루를 잡은 손이 맥이 풀려 떨리기 시작한다. ‘인제 여기서 너절하게 죽는구나.’를 의식했다. 나는 능선에 올라가서 거꾸로 엎드려 아내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아내도 올라서서 기진맥진한 모양이다. 시계는 네 시가 훨씬 넘었고, 해는 맞은 편 봉우리에 가까이 내려앉고 있었다. 아내는 자칫하면 죽는구나 의식한 모양이다.

“난 도시락 먹겠어요.”

라고 하더니 아내는 다시 떡국에 넣어 끓일 도시락을 꺼내어 몇 술 씹는다.

“자! 저쪽 능선길로 갑시다. 계곡길은 인제 포기야!”

우리는 능선으로 올라붙어 가지고 서남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나는 그 능선이 갈려 나가는 지점에 이르러 어디로 갈지 주저했을 때다. 갈려 나간 능선의 낙엽 위로 잡목이 많이 서 있는데 한 곳의 사이가 벌어진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보! 길이야 길!”

그러나 그 능선으로 옮겨 붙으려면 약 10미터의 암벽을 내려서야 한다.

“내 룩작에서 보조 자일을 꺼내요.”

나는 이 자일을 소나무 밑둥에 걸고 내려가면서

“피켈을 아래로 던져요. 룩작은 굴려요. 그리고 줄을 잡고 내려와요. 아무것도 아냐……”

아내는 중간 지점까지 내려와서 버틴다. 나는 다시 아래로 내려가서 아내의 발을 손으로 어깨로 받아, 무사히 안아 내렸다. 그리고 잡목이 성긴 사이로 걸어 내려가니 그것은 정말 길이었다.

오후 5시 15분 우리 내외는 청평사 뜰로 들어섰다. 선수들은 정렬하고 있었는데 한 간부가 우리를 재빨래 발견하자,

“이박사님 내외분이시다!”

라고 외치니 식은 멈칫하고 ‘와’ 환호성을 올린다. 모두들 우리가 조난될 것으로 염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내외는 정녕 죽을 위기를 뚫고서 살아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