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린 눈 / 김은미
활짝 핀 벚꽃을 바라다보면 아름다움에 겹다 짠해진다. 두꺼운 등걸을 뚫고 새살을 내듯 그렇게 꽃눈을 틔운 벚나무이기에 명치끝이 아려 오기 때문이다. 비바람이라도 치면 벚꽃은 한꺼번에 쓰러져 내린다. 그런 모습을 대할 때면, 겨우내 생명을 키워낸 보람이 허물어진 것만 같아 나는 이내 슬픈 벚나무가 된다.
내 아리가 학교를 떠나오는 날에 폭우가 내렸다. 벚나무는 호된 매를 휘두르는 비바람을 어쩌지 못하고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쓰러진 꽃잎들이 젖은 길바닥 위로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것을 보며, 한창 피어나야 할 아이의 건강한 몸도 미래를 향한 꿈도 그처럼 내동댕이쳐진 것만 같았다. 나는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을 나뒹구는 꽃잎 사이로 날개 다친 나비가 되어 하염없이 허우적거렸다.
만발한 벚꽃에 이끌려 봄밤은 축제로 술렁이더니, 비바람에 자지러진 오색등이 꽃을 잃은 벚나무 사이로 며칠이고 애처롭게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화관을 잃어버린 벚나무의 모습을 외면했다. 내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에서도 나는 싸늘함을 느꼈다.
동네 어귀에서 들려 오는 무성한 말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나와 아이는 날아든 말의 화살에 가슴을 앓았다. 일일이 해명하려 들다 보면 상처만 덧났다. 상처를 다독이고 고름을 삭일 수 있는 묘약은 기도뿐인 듯했다. 기도는 매번 좋은 항생제가 되어 주곤 했다.
꽃을 잃은 벚나무가 상실감을 추스르고 이내 잎을 피워내듯이, 내 아이도 그런 벚나무이기를 소망했다. 곷이 지고 나면 꽃보다 더 아름다운 신록이 피어난다는 걸 아이에게 몇 번이고 말했다. 그것은 아이가 아닌 내 자신에게 일러두고 다짐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이물이 끼여든 조개가 살아 남는 길은 그 이물에 의해 상처를 덧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품에 껴안고 제 살처럼 품어 나가는 것이다. 인내가 가장 큰 기도라 했던가. 어느 날 그 조개는 자신도 모르게 진주를 품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꽃이 진 자리에서 버찌가 자라고 있음을 보았다.
수백 번 수천 번 같은 경을 되뇌면서 나는 차츰 단순해져 갔다. 기도는 거창하거나 복잡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기도는 간절함이었다. 기도는 내 안에 있는 혼을 불러내는 초혼(招魂)이 되어 태초의 내 혼과 마주하게 했다. 진흙으로 빚은 후 하느님의 입김을 불어넣어 창조된 인간이라면, 나와 마주하는 그 혼은 창조주의 혼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기도는 희미하게 보이던 것을 또렷하게 보여 주며 분별력을 심어 주고 나를 한없이 정화시켜 주는 듯도 했다. 마른 가슴에 따스한 물기가 돌며 모두에게 잘해 주고 싶어졌다. 누군가를 향한 기도는 망망대해에 떠도는 작은 배가 목적지로 나아가게끔 순풍이 되어 줄 것만 같았다. 나는 내 아이와 나만이 아닌 내가 아는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교만한 내 마음을 양파껍질 벗기듯 한 겹씩 깎아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나의 사랑은 로맨스, 남의 사랑은 불륜’ 이란 말을 두고 나를 반성한 적이 있었다. 나의 기쁨과 행복은 당연한 결과라 여기면서도 남의 기쁨과 행복에는 왠지 티를 잡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나에게도 카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 카인의 피를 묽게 해 달라 기도하였고, 그 기도는 있는 그대로 남을 축복하게 하였고 타인의 허물을 나의 허물로 투영하도록 도와 두었다.
한 주먹 되는 약을 먹어 가며, 집에서 혼자 인터넷 방송을 듣거나 학습서를 껴안고 씨름하던 아이였다. 운동 시간과 충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면 시간을 빼고 나면 보통 아이들에 비해 티없이 부족한 학습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다 보면 아이는 이내 가뭄에 시달린 듯 잎이 마르고 가지가 축 늘어진 벚나무가 되곤 했다. 건강과 학업은 늘 시소처럼 기우뚱거렸고 그 평형점을 찾아 가족이 모두 긴장하며 살았다.
깊은 밤에는 분주한 낮 동안에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려 온다. 시계 바늘이 째깍거리는 소리, 창가에 와 닿는 바람소리. 조약돌 구르는 소리,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도 들린다. 삶에도 낮과 밤이 있다면, 나는 어쩌면 아이의 일로 삶의 낮 시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를 경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어쩌면 불행이 아니라 축복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어렵고 힘들어도 왠지 불행하지 않았다.
나는 이이를 데리고 매주 한 번씩 점자도서관을 찾아 도서 녹음을 하고 장애아동을 돌보는 시간도 가졌다. 물론 이런 날에는 아이의 체력이 그것만으로도 소진되어 그날의 공부는 포기해야 했다. 온전하지 않은 몸으로, 명색이 수험생인 처지에 이런 본사는 차라리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무기력해지는 아이에게 지렛대가 되어 주리라 믿었다. 다음날이면 단비를 머금은 듯 시들해져있던 아이의 가슴이 촉촉하게 되살아나곤 했다.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전화기에서 들려 오는 아이의 목소리가 소풍날처럼 들떠 있었다. 하늘이 내려 주는 축하 선물일까. 창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함박눈이었다. 차창 안으로 날아든 눈꽃이 젖은 내 볼을 타고 자꾸만 녹아 내렸다.
귀가한 남편은 웃음을 애써 감추며 아이에게 불쑥 한마디 던진다.
“오늘의 함박눈도 내일에는 어제 내린 눈일 뿐이야.”
아직 아이의 건강에 푸른 신호등이 켜진 것은 아니다. 남편은 어느새 내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함박눈을 맞을 때의 기쁨도 어쩌면 잠시다. 그러나 내일 결빙이 되어 또 걱정이 앞선다 해도, 그래도 오늘은 즐거운 것이다.
나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만발한 벚꽃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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