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방 커피 두 잔 / 서숙
정가 만원의 책을 손에 쥐어본다. 살까말까 망설인다. 책을 손에 들고 다른 책들을 기웃거리며 비교한다. 치사하게 신중하다. 오랜 망설임 끝에 계산대에 선다. 이제 친구와의 약속장소로 간다. 친구와 마시는 커피 값은 책 한 권의 값과 비슷하다. 이때 커피 값은 전혀 아깝지 않다. 그런데 책을 살 때면 유독 인색해진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가 주는 만큼의 즐거움을 책이 주지 못할까봐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친구를 기다린다. 흔히들 커피전문점의 대표 격인 스타박스와 커피 빈을 각각 별 다방, 콩 다방으로 부른다. 약속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조금 전에 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펼쳐든다. 간간히 책에서 머리를 들어 찻집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도 살핀다. 찻집의 정경을 살피는 일이나 독서를 통해 그 작가를 상상해보는 일이나 타인에 대한 호기심의 일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만원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 만원으로 무엇을 하면 가장 즐겁고 행복할까. 책을 사거나 친구와 커피 잔을 사이에 놓고 담소를 나누는 것은 이미 꼽았다.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시외버스를 타고 멀리 다녀올 수도 있다. 바다도 보고 산도 보고, 그러고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꽤 여러 가지다. 독서와 여행, 그 가운데 깊은 사색의 공간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 그만하면 내가 살면서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행복의 요소가 다 들어있다.
사람에 따라 화폐단위가 다르다. 물건 값을 생각할 때, 술 좋아하는 사람은 그 돈이면 소주가 몇 병인데 할 것이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를 몇 갑 살 수 있나 계산할 것이다. 예전에 사진 좋아하던 이는 필름 한 통 값이 화폐기준이었다.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과 취향이 보이기도 한다. 사회적인 흐름도 살필 수가 있다. 사람들의 대체적인 정서가 책에는 인색하고 커피에는 후하다. 요즘은 상대와 자신의 자아가 직접 교류하는 것에서 기쁨과 성취를 느끼는 추세이므로 독서보다는 대화에서 더 생동감을 느끼는 때문인 것 같다. 아무려나 나는 만원으로 행복한 선택을 즐길 수 있다. 별 다방 커피 두 잔이냐, 책 한 권이냐,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직접적인 교류도 좋고, 책을 매개로한 간접적인 만남도 소중하다.
희귀한 원석의 가치는 다분히 주관적이다. 어떤 이에게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인가 하면, 어떤 이에게는 일 푼의 값어치도 없다. 책의 가치도 그와 같다.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책을 펼친다. 마음에 드는 문구를 몇 줄 건진다. 더불어 책값을 건진다. 기쁘다.
‘별 다방 커피 두 잔만큼 좋군. 후회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나의 책도 누군가를 후회하게 만들면 안 되는데. 내 책을 손에 쥔 누군가도 이렇게 말해주면 참 좋겠는데. 별 다방 커피 두 잔보다 더 낫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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