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때문에 / 김남조
기쁨의 말을 하렵니다. 유년의 햇빛처럼 찬연한 그 말을 하렵니다. 언제부턴가 잊어 온 말, 그러나 사시사철 솟구쳐 오르고만 싶었던 그 줄기찬 충동을 여기 불어 놓겠습니다.
축일 전야의 흥분, 수북하고 뻐근하게 마치도 홍역앓이 시초의 신열처럼 참 이상하고 이상하면서 못 견디겠는 그 증상을 헤쳐 놓겠습니다.
지금 세태에 기쁨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하실 분에게, 사실은 나의 절반도 이에 공감하면서 더듬거리는 서툰 말씨로 기쁨의 얘기를 띄워 보냅니다.
죽음의 유형지에서 시인 육사(陸史)가 마지막으로 노래했던 꽃을, 그는 절명지 옥사(獄舍)에서 핏빛 선연한 생명의 꽃을 읊어 후일에 남겼거니 죽음 앞에서 최후로 솟았던 순수의 미학, 추상의 빛 부신 꽃들, 그 만개(滿開)하는 환희를 오늘 날 이 암울한 땅 위에 다시 가꾸고자 뜨겁게 뜨겁게 말하렵니다.
친구여, 생각해 보십시오.
꽃철의 난만한 백화는 다만 꽃일 뿐이나 만물을 얼어 붙게 하는 결빙기(結氷期) 혹한의 꽃들은 훨씬 꽃 이상입니다. 꽃이 꽃 이상일 때 이 얼마나 존재의 빛 부신 광채입니까.
무릇 모든 생명은 갈수록 그 값어치를 상승시켜 가치가 충일에 나아 가야 합니다. 한 송이의 꽃도 꽃 이상이려 원하는 지향에 내달릴 때 여기 존재의 복락과 부어 넘치는 기쁨이 소리친다고 할 것입니다.
친구여 또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 무엇이라도 그림자 없이 혼자서만 태어나진 않습니다. 기쁨은 슬픔과 함께 소망은 낙망 속의 과핵(果核)처럼 싹이 틉니다.
먼 길을 춥게 온 그 사람만이 노변의 따스함을 알며 비탄의 막바지에 이르러 본 이가 동녀(童女)처럼 통곡하게 하는 위안을 품을 마침내 만납니다. 젊었을 땐 몰랐던 갖가지 유정(有情)과 갈수록 깊어지는 삶의 음미, 굽이굽이 흘러 온 청옥빛 물줄기의 그 기쁨을 우리는 모두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행복한 것 중의 하나는 두통이 없는 일’이라고 무명의 한 젊은 시인은 읊고 있습니다. 그 소박한 지혜는 몇 번이라도 미소를 자아냅니다. 어느 때 세상이 햇빛 투성이듯이 사람 마음의 조명 나름으로 삶 또한 기쁨 투성이일 수가 있습니다.
내 친구여, 기쁨에 대해 말하렵니다. 기쁨 때문에 자주 바쁘고 기쁨 때문에 때때로 나는 참을 수가 없다고.
마음 깊이 품어 덥히는 것에게 아마 몽매간에도 껴안고 있는 것에게 주홍의 불이 당겨 붙으면 내 몸도 내 영혼도 인(燐)이 칠해진 듯이 환히 불빛을 뿜어 냅니다. 진정 그러한 기쁨이 있음을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원하신다면 이 기쁨을 공손히 당신과 나누겠습니다. 이 기쁨 전부를 원하신다면 한꺼번에 모두 다 드리겠습니다. 그 다음 나는 또 기쁨을 만들 수가 있을 테니까요.
'수필세상 > 좋은수필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안목(眼目) / 김초성 (0) | 2012.02.27 |
---|---|
[좋은수필]2월의 소리 / 정목일 (0) | 2012.02.26 |
[좋은수필]별 다방 커피 두 잔 / 서숙 (0) | 2012.02.23 |
[좋은수필]눈길 / 성낙향 (0) | 2012.02.22 |
[좋은수필]라디오 / 박성희 (0) | 2012.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