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줍는 비둘기 / 김윤희
4월의 상당공원을 가로질러 갑니다. 꼼지락꼼지락 애순을 피워내며 한창 파르름히 물이 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보도블록에서 경망스럽게 또각거리던 구두굽 소리가 공원에서는 부드러운 흙바닥 속으로 잦아들어 이내 민망함을 면합니다.
잎보다 꽃을 먼저 피워 올린 나무는 하르르 ‘꽃보라’를 떨어내고 새살 돋듯 푸른 잎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잎을 먼저 틔운 나무는 팔딱팔딱 맥박 뛰는 소리를 냅니다. 잠에서 깨어나 아침 준비에 분주한 저 여린 잎에 밤새 봄비가 잎 그물로 내려앉았나 봅니다. 맥이 선연해진 잎살에도 또르르 윤기가 돌아 화음을 이룹니다. 여린 잎들의 크고 작은 숨소리가 마치 가슴에 안고 듣던 내 아이의 어릴 적 심장 발딱이는 소리 같아 다소 설레고 평화롭게 들립니다.
공원 군데군데 놓여있는 벤치에는 발목이 덜렁 드러날 만큼 깡동한 햇살을 당겨 덮고 있는 할아버지들이 눈에 띕니다. 그들은 대개 듬성듬성 혼자 앉아 담배연기로 동그라미를 허공에 매달고 있습니다. 그들 발치에는 구두 소리를 잃어버린 비둘기들이 제각각 뒤뚱대며 꺼덕꺼덕 햇살을 줍고 있습니다. 어쩌면 떨어진 꽃밥을 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무심을 그림자로 드리우고 어기적거립니다.
한때는 날렵한 몸매에 자유롭게 고공, 저공비행을 즐기면서 터전을 닦던 새였습니다. 노아의 방주에서 비둘기를 날려 보내본 후에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전설에서처럼 평안과 안식을 상징하는 새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사랑을 한껏 받으며 관계를 돈독히 맺어 왔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 평화의 전령을 구가하며 사람들이 지어준 집에서 먹여주는 대로 먹고 자고 그렇게 도시의 상류사회에 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둘기 몸은 점점 살져갔고 날갯짓도 가물가물 추억처럼 아스라해져 더 이상 날지 않는 새가 되어버렸습니다.
암수 모두가 분비하는 피존 밀크로 새끼를 키우는 비둘기들은 어느덧 그들 조상 대대로 먹어왔던 풀씨나 곡물보다 무려 30배 이상이나 지방이 많이 들어있는 스낵과 튀김음식 등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물 찌꺼기를 먹어 영양과잉이 되었습니다. 지나친 영양은 왕성한 번식욕을 불러와 한 해에도 네댓 차례씩 번식을 하여 숙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합니다.
많은 무리 속에 생존본능은 더욱 강해져 닥치는 대로 먹다보니 이제는 아예 모이 주는 곳에 눌러 삽니다. 어쩌면 닭들처럼 가축으로 삼아 키워달라고 띠 두르고 농성을 하며 떼쓸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고개만 돌려 멀뚱멀뚱 바라보다 겨우 어기적어기적 게걸음을 칩니다.
삶의 목표도 의지도 깡그리 잊은 치매환자가 되어 여기저기 똥칠입니다. 나무로 반듯하게 집을 지어 예쁘게 색칠까지 해준 제집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하는 건물에도 배설물을 마구 칠해 댑니다. 생활이 부패하면 배설물까지 독상을 더하는지 이 배설물들은 그저 비위생적이고 지저분한 차원을 넘어서 건물을 부식시키고 인체의 폐질환과 뇌수막염까지 일으킨다니 어찌 곱게 보이겠습니까.
“이렇게 된 건 사람들이 우리를 도시에 풀어 방치한 결과이지, 결코 비둘기들 탓이 아니에요.”
애물이 된 비둘기가 되똥거리며 할아버지 곁으로 가가가 애처롭게 껄떡껄떡 동의를 구하는 눈치입니다. 사람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사람들의 속담을 어느 결에 얻어들은 듯, 그들도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모양입니다. 할아버지는 맞장구 대신 먼 하늘을 보며 자신의 삶을 거슬러 올라 가느라 가물가물한 기억의 끄나풀을 추슬러 세월을 뀁니다. 그러다가도 가끔씩 눈꼬리를 꾹꾹 누르며 짓무른 눈가를 봄볕에 말리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할아버진들 기막힌 사연이 비둘기만 못하겠습니까?
고령화된 인구가 비둘기 숫자 늘 듯 늘어나고, 고령화 노인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비둘기들 실정보다 더 심각합니다. 자신들의 젊음을 송두리째 바쳐 일궈온 산업화 문명, 그 병폐를 고스란히 떠안고도 말을 입안에 담아두고 있는 그들입니다. 희뿌옇게 빛바랜 저고리 하나에도 두 어깨가 눌려 있는 노인들이 회색 빛 비둘기와 닮은 듯 다르게, 무관한 듯 닮은 모습으로 그 빛을 벗어나려 이렇게 공원 속을 찾아 들었을 겁니다.
공원의 나무들은 이 모든 걸 보고 듣고, 찾아든 이들의 한숨으로 저문 날에도 밤새 혼신을 다해 잎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키워낸 잎이 한 해도 채 못 넘기고 떨어져 발밑을 구르다 채이게 될 줄을 뻔히 알면서도 해마다 기꺼이 그 일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마도 순명의 지혜를 터득한 때문일 것입니다.
노인들의 주름 같은 나이테를 속살에 문신으로 새기며, 4월을 엮어가는 나무들의 모습을 통해서 자연의 순리를 봅니다. 깡동하던 햇살이 점점 노인의 발목으로 내려와 낮잠에 잠겨듭니다. 조금 떨어진 한쪽에서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속속 모여들어 천막을 치고 있습니다. 이마에는 붉은 띠를 두르고 심각한 표정으로 눈길을 주고받습니다. 곧 무언가 일어날 듯 분주한 몸놀림이 성긴 이파리 사이로 출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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