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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백년이 지난 후에 / 장원의

백년이 지난 후에 / 장원의

 

 

 

요즘 냉동인간이란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현대과학의 발달로 사람을 냉동시켜 놓았다가 십년 또는 백년 후에 해동시켜 다시 살려내는 의술이 현실로 가능해졌다. 냉동인간의 연구는 180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1967년에 정신과 의사 제임스 베스포드 박사가 최초로 냉동인간이 되었다.그 이후 30여 명이 미래의 부활을 꿈꾸며 냉동실에 들어가 있다. 액체질소를 이용하여 섭씨 영하 196도로 순간적으로 얼려 놓았다가 해동시켜야 하며,2045년에 처음으로 냉동인간이 깨어날 계획이라고 한다.

몇 년 전 알프스 산중턱에 있는 스위스의 샤모니라는 곳에 들른 적이 있다. 이 마을에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옛날에 아름답고 작은 이 마을에 마음씨 착하고 잘생긴 샤몬이라는 양치기 소년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에니라는 아가씨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 둘이는 밤이면 풀밭에 누워 별을 헤이며 알프스 산위에 있는 만년설과 같이 깨끗한 사랑을, 뜬구름 같은 꿈을 꾸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달과 별, 산과 물, 꽃과 구름까지 온 세상이 자기들의 사랑을 축복해 주는 듯 부풀어 있었다. 행복과 불행은 동행한다던가. 어느 날 샤몬이 양떼를 몰고 산으로 올라가 돌아오지 않았다. 눈사태를 만나 눈 속에 묻히고 말았다. 에니는 샤몬을 보게 해 달라고 산신령께 빌고 또 빌었다. 소원대로 언젠가는 꼭 살아 돌아와 행복하게 살 꿈을 꾸며 혼자 살았다. 60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에니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샤몬을 못 잊어 하고 있었다.

얼음이 녹고 알프스 산 중턱에 새가 지저귀고 꽃이 만발하는 봄이 왔다. 어느 날 얼음 속에 묻혔던 샤몬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샤몬은 청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에니는 그를 껴안고 뒹굴며 울었다. 할머니가 청년을 안고…. 얼어 죽었던 샤몬이 에니의 체온에 녹아 눈을 부스스 뜨고 일어났다. 그 후 그들은 옛날을 회상하며 할머니가 손자 같은 청년과 사랑을 하며 잘 살았다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백 년 전이나 백년 후로 돌려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 성싶다. 백 년 전에는 상투를 튼 선비가 호롱불 밑에서 사서삼경을 읽고, 가마로 신부를 실어 나르고, 소가 연자방아를 돌리고, 지게로 짐을 나르던 생활이었다. 백 년 전의 오늘과 앞으로 백년 후의 오늘을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1년은 피라미드를 쌓던 시대의 4천 년과 맞먹는 빠른 변화를 한다고 한다.

백년 후의 변화를 상상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며,아마도 4.50만 년 전 석기시대나 청동기 시대 사람이 지금 서울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심정과 같지 않을까. 어리둥절하고 당황할 것 같다. 과거(科擧)를 보기 위해 몇 달씩 걸어 한양에 왔던 것에 비하여 오늘날엔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변하듯, 백년 후에는 아마도 세계는 하나로 통일되어 이웃집 다니듯이 가까워질 것이다. 대형 백화점이 생겨 구멍가게나 슈퍼마켓이 없어지듯 백화점도 없어지고 뉴욕에 가서 쇼핑하고, 달나라에 가서 점심을, 파리에 가서 영화를, 저녁에 쌍파올로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삼바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점심도 먹기 싫으면 콩알만 한 대용식으로 때울 수 있을 것이다.

내게 40여 년 전 서울의 첫인상은 공포와 놀라움과 황홀함이었는데, 앞으로 백년 후의 변화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냉동되었다가 백년 후에 깨어난 사람이 변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처음 보는 자동차, 건물,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낯선 사람을 보고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까. 돈도 쓸 줄 모르지만 백화점도 없어 물건을 살 수도 없고, 식당도 없어 얼마 못가서 굶어 죽게 될 것 같다. 예를 들면 마치 아프리카나 아마존 밀림지대의 사람들이 전깃불을 번개 번쩍이라고, TV를 보면 상자 속에 귀신이 들었다고 굿을 할 것이고, 핸드폰을 보면 외계에서 온 UFO라고 신기하게 생각할 것 같다. 하물며 같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격세지감을 느끼는데…. 

인간은 유한성이기에 오늘이 소중하고 삶이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내세, 부활, 미라, 정자은행, 복제인간, 냉동인간이란 말은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은 그 시대, 그 장소에, 그 연령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어른은 어른스럽게, 웃을 장소에서는 웃는 얼굴이 아름답다. 사람이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아이를 낳지 않고 의학의 발달로 노인천국이 되어도 사회적 문제가 많다는 학자들도 있다. 남녀노소가 균형을 이루어야 바람직스러운 사회가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