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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박수를 보낸다 / 김상립

박수를 보낸다 / 김상립

 

 

1년을 사이에 두고 부모님께서 차례로 돌아가신 후, 나는 남은 집을 정리하다가 내가 사회 초년병 시절에 시작하여 꽤 오랫동안 썼었던 일기장 몇 권을 발견하고는 밤을 새워 읽었던 적이 있다. 더러는 정겹고 재미도 있었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후회나 슬픔이 밀려와 가슴을 울컥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마도 지난날 내게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이 특별하게 모나지가 않고 고만고만한 것들로 채워져 있어서, 내가 살아온 역사를 한 개 줄거리로 엮기에 별다른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따져보면 오래전의 내 삶도 그랬고 장년기를 지나 지금까지 살아온 내 생활도 모험적이거나 강하게 튀는 쪽보다는 대게가 평범하고 작은 것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중견기업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는 은퇴할 때까지 근 40년을 같은 업종에서만 종사했으니 일의 내용에서 큰 변화가 있었을 리도 없다. 그 긴 세월을 두고 내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회사를 크게 번창시키지 못했던 것이 안타깝기는 하나,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무모한 짓을 하거나 권력과 야합하여 이익을 도모하는 무리수는 두지 않았던 까닭으로 가슴 졸이는 일을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게 그나마 위로가 된다.

나는 잘 웃는 여자들을 좋아했고, 욕심 덜 부리는 남자들을 존경하며 살았다. 일상에서 사생결단으로 경쟁하는 짓은 피할 만큼은 피했고, 내 것을 위해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지도 않았다. 가능하면 내 마음 속에 모질고 독한 생각이 뿌리 내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종종 허공을 향해 정신 줄을 놓고 크게 웃기도 했다. 나는 힘 있는 소수 편에 끼어들기보다는 늘 군중 속의 한 사람으로 머무는 것을 편안해했다. 그런 까닭으로 내가 속한 어떤 단체든지 그 장(長)의 자리를 맡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머리 숙여 부탁할 마음도 없었고 애써 그런 입장에 놓이려 한 적도 없다. 기회가 오면 유쾌하게 술을 마셨고, 혼자 흥얼거리며 신명을 낼 만큼 노래도 좋아했다. 나는 즐겨 한국화를 그리고 수필을 쓰지만, 취미 생활을 넘어서서 특별한 이름 얻기를 갈망하지는 않았다. 어쭙잖은 내 취미 생활 때문에 주변에 공연한 신세를 지거나 번거로움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는 판단에, 적지 않은 손님을 초대해야 하는 개인적인 출판기념회나 그림 전시회을 열 계획은 아예 멀리하고 있다.

근래에 와서는 번잡한 모임이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회의에도 참석하기를 자제하며 산다. 대신 이웃과 함께 흙먼지 나는 동네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며 “헬스장 다니는 것보다 낫다.”고 즐거워한다. 그리고 1년이면 몇 차례씩 만나게 되는 초등학교 동창생들을 붙잡고는 늘어난 주름살을 헤아리며 마음껏 깔깔거린다. 뒤늦게 시작한 사군자 동호인인 할머니들과 어울려 오천 원짜리 국밥을 앞에 놓고 질곡 많았던 그들의 지난 얘기를 들으며 함께 콧물을 훌쩍거리기도 한다. 아내의 입원실을 구하지 못해 며칠씩 애를 달구면서도 연줄 찾아 남에게 부탁할 배짱조차 없는 위인이었고, 나이 든 그 사람을 수술실에 들여 보내놓고서야 긴 시간 복도를 서성이며 ‘평소에 좀 더 살갑게 잘해 줄 걸’ 하고 후회했던 그런 남편이었다. 그 후, 1년이면 10여 차례씩 정기적으로 서너 개의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아내를 위해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운전을 해주는 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내 삶이 소심하고 평범하게 이어졌던 까닭으로 남 앞에 나서서 달리 자랑할 내용도 없지만, 애당초 부끄러워할 마음도 없다. 혹자는 나에게 열정도 모험도 없는 그런 단조로운 삶을 드러내어 말할 게 뭐 있느냐고 비아냥거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더하여 어떤 특정 분야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지도 못하고 살았던 일생이 후회스럽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내 비록 대단한 성취를 통한 만족감에서 오는 뿌듯한 행복은 경험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평범한 일상을 통하여 쌓인 작은 기억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분수에 넘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에 늘 감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작은 기억들은 선명하게 각인된 강렬한 기억보다는 다정하고 다감한 측면이 많아서 잔잔한 행복감을 안겨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이유도 포함된다. 더러는 삶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날에도, 매일 같이 만나는 아주 작은 일들로 말미암아 삶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까닭도 있다. 아무리 모진 풍상이 섞어 쳐도 어찌 어찌 견디다 보면 그런대로 사는 재미를 쏠쏠하게 맛볼 수 있는 게 보통 사람들의 삶이었다.

과연 명예나 돈을 쫓아 열심히 사는 일만이 꼭 훌륭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때 잘나갔던 일에 집착하여 평생을 두고 그때를 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욕망에 매달려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놓고 말은 못해도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든가? 높은 자리에서 떨어져 내릴 때의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여 아주 무기력하게 되어 버린 저명인사들의 근황을 들으며, 인생무상을 느끼지 않는 사람 누가 있으리오.

내 성격으로 미루어 보면 만일 내 마음속에 가슴 터질 듯한 환희나 죽을 만큼 아팠던 사연 몇 개가 뚜렷이 자리잡고 있었더라면, 웬만한 다른 기억들은 모두 밀어 내어버리고 내 삶은 잊혀지지 않는 그런 일에만 매달려 여기까지 질질 끌려 왔을 것이다. 나는 이 험난한 시대를 산 소시민으로서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었던 것으로 만족하련다. 위대하거나 비범한 일이 존중 받고 흠모의 대상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작고 평범한 일도 무시당하거나 폄하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게 내 소신이다. 그래서 이름 모를 보통 사람들의 삶이 남 앞에서 더욱 당당해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

사람 삶이란 게 무슨 화보(畵報) 만들 듯이 제가 알리고 싶은 것만 따로 편집하여 내놓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어떤 사람이든 살아가면서 잘한 일도 있고 잘못한 일도 있을 터이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성공을 했지만 여러 사람에게 씻지 못할 아픔을 주었을 수도 있을 것이요, 그 자신은 고통 속에 살았어도 많은 사람을 진정 위로하고 도와준 삶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하는 데는 그가 한 번 기억에 남는 선행을 했다하여 열 번의 악행을 상쇄시켜주어도 아니 될 일이요, 열 번의 선행이 계속되었다 해서 용서받지 못할 한 번의 악행을 덮어주어도 아니 될 것이다. 좋든 싫든 그가 살았던 모든 순간이 죄다 모여야 완전한 그의 일생을 말할 수 있으리라.

나는 작지만 건강한 일상들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다. 평범한 하루에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그 사람의 생애 또한 감사해야 할 삶으로 남겨질 것이라는 사실 또한 믿는다. 화려한 기억 몇 개가 삶 전체를 지배하는 행로보다는, 작지만 고만고만한 기억들로 촘촘히 꾸며진 그런 삶을 끝까지 지키고 싶다는 바람을 나는 버리지 않을 것이다.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 나는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남은 내 인생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