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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단지한 처녀 / 이상

단지한 처녀 / 이상

 

 

들판이나 나무에 핀 꽃을 똑 꺾어본 일이 없다. 그건 무슨 제법 야생 것을 더 귀해한답시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대체가 성격이 비겁하게 생겨먹은 탓이다.

 

못 꺾는 축보다는 서슴지 않고 꺾을 수 있는 사람이 역시 - 매사에 잔인하다는 소리를 듣는 수는 있겠지만 - 영단이란 우수한 성격적 무기를 가진 게 아닌가 한다.

 

끝엣누이 동무 되는 새악시가 그 어머니 임종에 왼손 무명지를 끊었다. 과연 동양도덕의 최고 수준을 건드렸때서 무슨 상인지 돈 3원을 탔단다. 세월이 세월 같으면 번듯한 홍문이 서야 할 계제에 돈 3원이란 어떤 도량형법으로 산출한 액수인지는 알 바가 없거니와 그 보다도 잠깐 이 단지한 새악시 자신이 되어 생각을 해보니 소름이 끼친다. 사뭇 식도로다 한 번 찍어 안 찍히는 것을 두 번 찍고 세 번 찍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격으로 기어이 찍어 떨어뜨렸다니 그 하늘이 동할 효성도 효성이지만 우선 이 끔찍끔찍한 잔인성은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치고 오히려 남음이 있는가 싶다. 이렇게 해서 더러 죽은 어머니를 살리는 수가 있다니 그것을 의학이 어떻게 교묘하게 설명해 줄지는 모르나 도무지 신화 이상의 신화다.

 

원체가 동양도덕으로는 신체발부에 창이를 내는 것은 엄중히 취체하다고 과문히 들어왔거늘 그럼 이 무시무시한 훼상을 왈, 중에도 으뜸이라는 효도의 극치로 대접하는 역설적 이론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

 

무슨 물질적인 문화에 그저 맹종하자는 게 아니라 시대와 생활 시스템의 변천을 좇아서 거기 따르는 역시 새로운, 즉 이 시대와 이 생활에 준구되는 적확한 윤리적 척도가 생겨야 할 것이고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입법해내어야 할 것이다.

 

단지 - 이 너무나 독한 도덕행위는 오늘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어떤 종류의 생활 시스템이나 사상적 프로그램으로 재어보아도 송구스러우나 일종의 무지한 야만적 사실인 것을 부정키 어려운 외에 아무 취할 것이 없다.

 

알아보니까 학교도 변변히 못 가본 규중처녀라니 물론 학교에서 얻어 배운 것은 아니겠고 그렇다면 어른들의 호랑이 담배 먹는 옛이야기나 그렇지 않으면 울긋불긋한 각설이떼의 효자충신전이 트여준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 밖에 손가락을 잘라서 죽는 부모를 살릴 수 있다는 가엾은 효법을 이 새악시에게 여실히 가르쳐줄 수 있을 만한 길이 없다. 아 - 전설의 힘의 이렇듯 큼이여.

 

그러나 수삼일 전에 이 새악시를 보았다. 어머니를 잃은 크나큰 슬픔이 만면에 형언할 수 없는 추색을 빚어내는 새악시의 인상은 독하기는커녕 어디 한 군데 험 잡을 데조차 없는 가련한, 온순한 하디의 '테스'같은 소녀였다. 누이는 그냥 제일같이 붙들고 울고 하는 곁에서 단지에 대한 그런 아포리즘과는 딴 감격과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적으로 상처는 도지지도 않고 그냥 아물었으니 하늘이 무심치 않구나 했다.

 

여하간 이 양이나 다름없이 부드럽게 생긴 소녀가 제 손가락을 넓적한 식도로다 데꺽 찍어 내었거니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가련한 무지와 가중한 전통이 이 새악시로 하여금 어머니를 잃고 또 저는 종생의 불구자가 되게 한 이중의 비극을 낳게 한 것이다.

 

극구 칭찬하는 어머니와 누이에게 억제하지 못할 슬픔은 슬쩍 감추고 일부러 코웃음을 치고 - 여자란 대개가 도무지 잔인하게 생겨 먹었습네다. 밤낮으로 고기도 썰고 두부도 썰고 생선대가리도 죽이고 나물도 뜯고 버들가지를 꺾어서는 피리도 만들고 피륙도 찢고 버선감도 싹둑싹둑 썰어내고 허구한 날 하는 일이 일일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것뿐이니 아따 제 손가락 하나쯤은 비웃(생선) 한 마리 토막치는 셈만 치면 찍히지 - 하고 흘려버린 것은 물론 기변이요, 속으로는 역시 그 갸륵한 지성과 범키 어려운 일편단심에 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여 머리 수그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불행히 시대에서 비켜진 지고한 효녀 그 새악시! 그래 돈 3원에다 어느 신문 사회면 저 아래에 칼표 딱지만한 우메구시(단신)를 장만해준 밖에 무엇이 소저의 적막해진 무명지 억울한 사정을 가로맡아줍디까. 당신을 공경하면서 오히려 '단지'를 미워하는 심사 저 뒤에는 아주 근본적으로 미워해야 할 무엇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소저! 그대는 꿈에도 모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