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손 / 최민자

/ 최민자

 

 

굼뜬 걸음으로 뒤뚱거리는 도시 비둘기들은 높이 날아 멀리 보는 새의 꿈을 잊고 만 것일까.

때 묻은 깃털을 쪼고 있던 흰 비둘기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본다. 높이 날아 멀리 보면 무엇이 달라지는데? 하는 표정이다. 고가도로 난간에 알을 품고, 상한 소시지를 쪼아 먹으며 차도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 새.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이 잿빛도시에서는 공해를 가장 잘 견디어내는 악착꾸러기 새로 살아남았다.

 

비둘기는 이제 내가 앉아 있는 발치 가까이에서 제법 큰 빵 부스러기를 발견했는가보다. 대낮에 공원에 나와 앉은 여자가 아무래도 미심쩍은 듯, 빵 조각을 물고 저만치 달아난다. 한 번에 삼키기에 너무 커서였을까. 비둘기는 연거푸 땅바닥에 먹이를 패대기친다. 쪼고 흔들고 내던지고, 다시 바닥에 동댕이친다.

 

손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불편한가. 그리고 얼마나 비천한 일인가. 게걸스레 쪼아대거나 흙바닥에 팽개쳐 부스러뜨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입에 넣을 수 없다니. 손이 있다면 냅킨을 얌전하게 펼쳐두고 양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서 우아하게 먹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기실 인간의 품위라는 것도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처리해 주는 손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른다. 물 위에 떠 있는 백조의 우아함이 보이지 않게 물살을 헤치는 물밑 다리운동 덕분이듯이. 

 

이제 나는 왜 천사에게 날개와 팔이 함께 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날개 없는 천사는 있어도 손 없는 천사는 없을 것이다. 날개만 있고 손이 없다면 금빛 나팔을 불지도, 배고픈 이에게 적선을 하지도, 슬픔으로 얼룩진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지도 못할 것 아닌가. 천사도 백조도 날개만으로 우아해 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