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와 나팔꽃 / 서경희
태어나자마자 인간의 손에서 자란 오소리가 성장한 후에는 야생으로 돌아갔다.
평생 ‘인간행태학’을 연구한 어느 학자가 동물의 선천적 특성에 대해 밝힌 한 대목이다.
이 글을 어디에선가 읽고 있는데 엉뚱하게도 나의 뇌리를 ‘올챙이’와 ‘나팔꽃’이라는 두 단어가 탁 때렸다. 불현듯 이어진 그 연결 고리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오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돌아간 그 ‘야생’의 자리에 나의 올챙이와 나팔꽃이 대신 자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올챙이와 나팔꽃은 나도 모르게 내가 가끔씩 돌아가는 내 유년의 야생 들판인 것이다.
내가 때때로 ‘그건 참 다행스런 일이었어.’라고 생각하는 일 중의 하나가 내가 태어나서 자란 유년의 뜰에 대한 행복한 기억이다. 누구에겐들 유년이 없을까마는, 나는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 도시의 한 변두리 마을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대구시 산격동, 그곳은 행정 구역으로는 대도시 대구이지만 실제 분위기는 순수한 시골 마을이었다. 달성 서씨 집성촌이기도 한 그 서당골 마을에서 나는 그야말로 ‘나도 모르게’ 자연의 영양분을 충실히 섭취하며 튼튼한 뿌리를 키울 수 있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은 아니지만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그 마을은 내가 가끔씩 나도 모르게 오소리가 되어 돌아가는 곳이다.
눈이 왔어요. 지붕 위에도 소복소복, 장독대에도 소복소복…….
그때는 눈이 참 많이도 왔다. 그 하얗고 소복하던 겨울이 끝나면 파릇파릇 새싹 돋는 봄이 정직하게도 달려왔다. 그 파릇한 봄날이면 은근히 열 올릴 일이 나를 꼭 기다리고 있었는데, ‘올챙이 잡기’였다.
길 앞으로 난 신작로를 따라 낮은 등성이를 넘으면 산 동네에 작은 못 하나가 있었다. 지금은 높다란 아파트가 그날의 촉촉함을 다 묻어 버렸다. 그 못가에서 바라본 별보다 많은 올챙이들의 군무는 어린 나에게 너무나 신비스러웠다. 볼록한 배와 앙증스런 꼬리로 봄바람처럼 하늘거리던 그 예쁜 것들을 청정 물가에 서서 바라보며 나는 홀딱홀딱 반하고 있었다.
올챙이는 올챙이끼리 통하는 것일까.
뭐 땀시(무엇 때문에) 올챙이가 그토록 좋았을까, 다시금 싱그럽다. 내 봄날의 바람기를 다스려 주었던 그 올챙이를 더러 그릇에 담아 집에 가져오기도 했다. 집에까지 따라온 나의 올챙이는 동네 또래들의 부러운 구경거리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못내 올챙이한테 미안한 일이 있다.
그릇에 담아 산길을 걷다 무겁고 귀찮아서 가끔 쏟아 버린 적이 있었다. 맨땅에서 파닥거리며 괴로워하던 그 올챙이의 모습은 지금도 나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나를 원망하였을 어린 올챙이, 내 봄기운에 도취되었다가 나는 살생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런 기운에서 벗어날 무렵 우리 집 앞마당에서는 채송화며 나팔꽃이 호랑나비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여름이 온 것이다.
‘왜 이제야 일어났니? 내가 여태 너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아침에 눈을 떠서 밖을 보면 언제나 나보다 먼저 일어나 뚜따뚜따 나팔 불고 있던 나팔꽃. 나는 또 그 나팔꽃에 이유 없이 매료되고 있었다. 무턱대고 좋아하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그것이 내 안에 와 있는 것이니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냥 그 나팔꽃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기쁨과 희망에 나부끼곤 했다.
자연에 대한 향수가 없이는 큰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큰일을 할 사람은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문학도 분명히 큰일이다. 문학은 자연과 인생을 다시 사랑하는 일이다. 자연에 대한 기쁨과 생명에 대한 사랑은 어른이 되어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유년의 야생을 거치며 저절로 얻어 가는 것이다.
나에게 그런 소중한 유년의 뜰이 없었다면, 만약 야생의 들판과 살을 섞으며 자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돌아갈 곳을 잃은 철창 속 오소리가 되었을지 모른다.
올챙이가 신나게 헤엄치고, 나팔꽃이 방긋 피어나 웃음 짓는 그 자연의 뜰에서 나는 지금도 마음을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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