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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똥방 / 김은주

똥방 / 김은주 

 

 

통영에서 먹은 점심이 끝내 탈이다.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길목에서 차를 세웠다. 가을을 맞으러 거제까지 왔는데 가을은커녕 오전내 비만 내린다.  

미동도 하지 않는 바다는 비안개에 젖어 회색으로 가라앉아 있고 곳곳에 떠 있는 섬들은 안개 속에 흐리다. 밥벌이를 위해 설치해 둔 양식 구조물은 비 내리는 바다에서 그 모습 그대로 풍경이 된다.  

갈곶리 좀 못미처 똥방이 하나 보인다. 바람의 언덕으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 언덕 위 솔밭 사이에 있다. 반가운 마음에 우산도 없이 빗속을 뛰어 그곳으로 갔다. 똥방 입구에서 검은 물체에 흠칫 놀라 발길을 멈췄다. 놀라 쳐다보니 누가 내다 매어 놓은 흑염소다. 주인은 내다 놓은 짐승을 잠시 잊었는지 제법 비를 맞은 그놈들 등짝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흑염소를 보고 딱하다는 생각은 잠시 내 볼일이 바빠 달랑 두 칸뿐인 똥방 안으로 급히 몸을 들였다.  

그런데 똥방 문을 여는 순간 뭔가 이상했다. 변기의 위치가 보통은 문 쪽을 향해 있기 마련인데 문을 등지고 돌아앉아 있었다. 그 생각도 잠시 더 시급한 문제에 온 힘을 쏟으며 ?해우소는 걱정을 끊는 곳이라 하지 않았던가.? 혼자 중얼거리며 내려놓는 일에 열중했다. 허물 덩어리를 처리하는 내내 오감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외계와 완전히 차단된 그곳의 안온함을 내심 즐겼다. 

우리가 느끼는 생리적 현상은 보통 무의식과 닿아 있게 마련이다. 옷으로 가려진 몸이 반쯤 벗겨지면 그로 인해 긴장하게 되고 그 긴장감이 배설의 속도에 따라 서서히 고삐를 풀어 갈 즈음, 온몸에 들떴던 신경들도 모두 제자리를 찾아간 탓인지 그제야 눈이 열리고 불현듯 바다가 내 눈 안으로 들어왔다. 

세상에! 이런 곳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니.  

고개 들어 앞을 보니 색유리 너머 파도가 수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유리의 색깔 탓인지 전혀 다른 바다가 그곳에 있었다. 이 무슨 조홧속이란 말인가? 약간 휘어져 들어간 해안으로 쉼없이 들이치는 파도는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똥방에서 이런 풍경 안에 오롯이 들 수 있다니 나는 잠시 세상만사를 다 잊고 깜박 몰아(沒我)의 경지에 들었다. 너무나 짧은 찰나였지만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예전에야 똥방에서 앞집 감나무도 볼 수 있었고 빠진옹이 사이로 오가는 사람의 기척도 느낄 수 있었지만, 요즘에야 밀폐된 사각의 공간에서 그저 그 고단한 일거리를 성급히 해결하는 수준밖에 더 되었던가?  

바람이 드나들고 햇살이 비켜 가며 냄새까지 바깥 세상으로 실어 나르던 그런 똥방은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데, 오늘 문득 그 옛날 똥방을 만난 듯 반가움이 밀려온다.  

비로소 변기가 왜 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눈으로 전해 오는 저 무량한 풍경을 보다 문득 이 똥방을 설계한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졌다. 그의 작은 배려가 뭇사람에게 이리 큰 기쁨을 주다니. 유리창 너머 들이치는 파도를 보고 있자니 밖에서 누가 들여다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아무도 보는 이 없었지만, 후다닥 손으로 앞을 가렸다. 그리고 혼자 웃었다. 창밖은 바다로 떨어지는 둔덕이다 보니 비스듬히 드러누운 해송 몇 그루만 나를 훔쳐보고 있을 뿐이었다. 커다란 키를 건들거리며 서 있는 해송이 동네 건달 같아 보여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똥방은 급하게 찾아들어 옷섶을 쥐고 쪼그려 앉아 있다 보면, 자연스레 시선은 문에 머물게 되고 보통은 그곳이 낙서로 뒤덮여 있기 마련이다. 그 낙서에 잠시 마음을 빼앗기다 바쁘게 돌아서 나오기 일쑨데 이런 똥방에 길들어져 있던 나로서는 이 무슨 호사인가 싶었다.  

이젠 아예 뚜껑을 덮고 앉아 바다를 내다보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만 따지자면 이곳에다 도저히 ?간(間)? 자를 붙일 수가 없다. 측간이니 뒷간이니 별스런 간들이 많이 있지만 난 이곳의 안온함이 편안한 방에 든 듯하여 우습지만 이름 끝에 꼭 ?방(房)? 자를 붙이고 싶었다.  

빗금으로 비스듬히 열어 놓은 창으로 습한 바람이 들이친다. 솔숲을 건너온 바람은 그 냄새만으로도 시원하다. 편안히 눈을 감아 본다. 우리가 명상할 때 알파파를 활성화하기 위해 듣던 바람 소리가 여기서도 들린다. 꼭 좌선하고 면벽해야만 명상에 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열리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든 진아(眞我)를 만날 수 있다.  

맞은편 오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내 오감 중에 유독 청각을 자극하며 불어온다. 젖은 띠풀을 거슬러 올라온 바람이 솔숲에서 꼬리를 물고 빙그르르 돈다. 

귀에 윙윙대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자니 쓸데없이 쌓아 두려고만 애썼던 일상들이 한순간 깃털이 된다. 통기가 이루어져야 숨을 쉬고 숨을 쉴 수 있어야 생명이 산다. 한순간 내 의식 안의 묵은 때들도 바람에 밀려 가뭇없이 날아간다. 호흡이 느리고 골라지며 몸과 마음의 모든 구멍이 바깥 세상을 향해 일순 활짝 열린다.  

"예헤―햄― 예헤―햄" 

비에 젖은 소리 하나, 의식의 밖에서 나를 치고 들어온다. 들었던 삼매(三昧)에서 화들짝 깨어났다. 눈을 번쩍 뜨니 소나무에 매여 있던 염소가 제풀에 빙빙 돌아 유리 앞에 와 있다. 

그 새까만 눈동자 뒤로 속계(俗界)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