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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광어와 도다리 / 류영택

광어와 도다리 / 류영택

 

 

 

차가 들어온다. 덜컹덜컹 1톤 트럭이 들어온다. 사람이 내린다. 또 한 사람이 내린다. 둘은 서로 등을 떠밀다 사내가 앞장을 서고 여자가 뒤를 따른다. 한발, 또 한발 슬쩍슬쩍 눈치를 살피며 내게로 다가온 사내가 묻는다.

"발통 있습니까?"

"발통 있습니다."

사내는 그렇게 내게 말을 붙여왔고, 나는 두 사람에게 그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멀건 눈을 한 그들의 입에 웃음이 묻어난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내 모양이 오십 보 백 보니 아마도 동지애를 느낀 모양이다.

이젠 마음이 놓이는지 남자를 슬쩍 밀치고 여자가 나서서 말을 한다.

"차도 똥차고, 저기에 맞는 발통 넣어주소."

나는 바퀴를 살핀다. 펑크가 난 게 아니라 바닥에 철심이 드러나도록 굴렀으니 고무신 바닥처럼 막중이 나버렸다. 보아하니 펑크 값으로 허름한 타이어를 끼고 싶은 모양이다.

이 일을 어쩌지, 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장사는 냉정해야 한다. 부자지간에 물건을 팔아도 장사는 이윤을 남겨야 한다. 원금에 수고비를 포함하면 펑크 두 방 값은 받아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돈을 주지도 않을 것 같다. 받기도 걸렸다. 내가 그 돈을 달라고 하면 틀림없이 그 돈에 맞는 타이어를 넣어 달라 할 것이다. 가게에 그 돈에 맞는 타이어가 없다.

"조금 더, 써시죠?"

"없는데요."

잠시 전 마음을 놓던 모습과 달리 금세 울상을 한다. 내 눈치를 살피는 여자의 한쪽 눈이 가물가물 너울에 잠겼다 드러났다 작은 바윗돌 같아 보인다.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지.' 곁눈질을 하지만 금세 여자에게 들키고 만다.

지금 뭐하는 짓인가. 잠시 신경전을 벌이던 나는 웃고 만다. 여자도 찌푸린 눈을 뜨고 웃는다.

나는 작업을 하며 그들의 모습을 살핀다. 두 사람은 쌓아놓은 타이어를 살피고 있다. 여자는 잔뜩 허리를 굽힌 채 위를 바라보고, 사내는 타이어위에 올라서서 아래로 내려다본다.

'저 타이어는 펑크 세 방짜린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물건은 아니다 말을 할까하다 다시 웃고 만다. 타이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쪼그려 앉은 두 사람의 모습과, 그들을 곁눈질하는 내 모습이 며칠 전 그 모습과 너무나 흡사했다.

 

나는 길을 걷다말고 횟집 앞에 놓인 수족관을 들여다봤다. 작은 물방울들이 쉴 새 없이 솟아오르는 대형수족관 안은 수많은 어류들이 노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내가 바다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커다란 농어와 참돔은 수심 주앙부에서 어슬렁거리고, 중간 몸집을 한 우럭은 그 위에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잡어들은 물 아래위를 헤엄쳐 다닌다.

바닥에는 광어와 도다리가 미동도 않은 채 엎더려 있다. 입도 움직이지 않는다. 생긴 모양도 비슷해서 그놈이 그놈 같아 분간이 안 간다. 마치 한 몸뚱이를 둘러 가라놓은 것 같았다.

 

먹이를 낚아채듯, 사내는 쌓아놓은 타이어 중에 제일 괜찮은 것을 빼들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좀 심했나! 싶었던지 물건을 손에 든 채 내 눈치를 살핀다.

이걸로 교체해주세요. 말이라도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술케 나올 텐데. 실적이 웃음을 내놓으니 물고기의 입질에 걸린 찌처럼 오를락 내릴락 목구멍만 간질거릴 뿐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타이어를 받아들고 두 사람을 바라본다. 어쩌면 저렇게 닮았을까. 약속이나 한 것처럼 두 사람은 눈에 티가 들어간 것 같이 지긋이 눈까풀을 내리깔고 있었다. 여자의 눈빛은 더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그 눈빛은 들어주지 않고는 도저히 배겨날 수 없는 무언의 압력으로 다가왔다. '어쩌노, 먹고 살아야 안 되겠나.' 장사꾼의 마음에 쐐기를 박는다.

내가 왜이래 약해졌지. 애써 머리를 흔들어도 가자미 같은 눈망울이 일손을 서둘게 할 뿐이다.

 

왜 저렇게 생겼을까. 생존경쟁에 밀려 살길을 찾느라 저렇게 됐을까. 남들과 어울러 살 배짱이 없어, 눈에 잘 띄지 않게 황갈색 위장을 해도 배겨날 수가 없어 아래로 아래로 기어들다보니 한쪽 몸이 짓눌러 저렇게 됐을까.

납작한 모양에 눈은 왜 저모양이야. 더 이상 내려 갈 바닥이 없어 혹시나 잡아먹힐까봐 자신을 보호하느라 내리깔린 눈을 위쪽으로 옮겨놓은 건가. 아니야, 원래 저렇게 생겨서 부끄러워 남들 앞에 나설 수가 없어 저렇게 가만히 바닥에 엎이려 있는 걸 거야.

그래도 살아보려고 점박지만한 두 눈을 한쪽에 하고 누워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못해 가슴이 시리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언제 밥 먹고, 알은 언제 났지? 나는 수족관을 툭 쳐본다.

 

여자는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주물럭거리고 있다. 돈을 셈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여자도 빙그레 웃는다.

"아지매, 더 달라 않을 테니 있는 데로 다 꺼내소?"

"그게 아니고,,,"

사내가 눈치를 주자. 여자는 어쩔 수 없는지 손에 잡힌 것을 다 내놓는다. 펑크 두 방 값도 안 되는 돈이다.

'아지매, 진짜 남는 것 없구마.'라는 말이 차마 목구멍을 넘어오지 못한다. 장사 밑지고 판다는 말 거짓말이다. 그 말을 들을까봐 못하는 게 아니다. 꼬깃꼬깃 접은 지폐를 마저 내놓으라는 말로 들릴 것 같아 "아지매, 물건 잘 산 겁니다." 씽긋이 웃음을 내놓는다.

 

모서리를 지어박아도 광어와 도다리는 꿈쩍도 않는다. 엇갈려 누운 녀석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좌광우도' 그 말을 되뇌어 보지만 구분이 안 간다. 눈이 좌측에 있으면 광어라고 했는데, 문제가 간단치 않다. 내가 중심인가 아니면 광어가 중심인가. 분명 눈은 반대로 붙었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광어가 도다리 같고, 도다리가 광어 같다.

나는 등을 돌리고 뒤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도다리가 광어 같고, 광어가 도다리 같다. '뭐가 이래 어려워!' 헷갈려하는 나를 향해 두 녀석이 뭐라고 하는 것 같다. '별 미친 놈 다 보겠네. 나는 나 일 뿐이야. 임마!'

하긴 욕을 먹어도 싸지. 인간들이 언제 광어와 도다리를 옳게 구분을 했나. 편리에 따라 사월에서 유월까지는 도다리가 제철이니 광어가 도다리로 변하고, 산란기 겨울철에는 도다리가 광어로, 입맛 따라 수시로 변하다보니 백날 좌광우도를 외쳐봐야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게 광언지, 꽁지를 흔들며 도망가는 게 도다린지 헷갈릴 수밖에.

 

"장사 잘하소."

말을 건네고 차에 오르는 두 사람을 향해.

"돈 많이 버소."

인사를 한다.

저만치 멀어져 가는 차량을 바라보며 나는 셈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가를 제하고 나니 담배 값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도 밑지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다 싶기는 하지만 내가 손해를 본 것 같다. 펑크 두 방 값은 받아야 했는데 하필이면 그때 광어가 생각이 날게 뭐람, 별반 다를 게 없는 도다리가 괜히 광어를 생각하다 손해를 보고 말았다. 아니다 광어가 도다리를 생각하다 그렇게 되고 말았다. '좌광우도'는 누가 중심이냐에 따라 다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