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글 / 김진식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쓰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닐진대 늘 ‘이런 글’을 써야지 하면서도 막상 쓰려고 하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먼저 나의 삶을 담아내고 싶지만 간단하지 않다. 기량도 문제지만 솜씨가 따르지 않는다. 내 삶과 글의 괴리가 있고 뒤엉켜 있어서 풀어내기가 어렵다. 그래도 마음을 거두지 못한다. 숙업(宿業)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산자락에 숲길이 있다. 이 길을 거닌다. 거르고 추스르기 위해서이다. 저만큼 언덕에는 그루터기가 있다. 세월의 성쇠가 부질없다며 쉬어가라고 이른다. 숲가지에 바람이 깃들고 산새들이 반기는데 성근 틈새로 구름이 지나간다. 한적함이 기지개를 켜게 한다. 나는 그루터기의 연륜을 세고 있다. 이런 여유를 글 바구니에 담고 싶다.
들길을 걷는다. 온갖 색깔의 풀꽃이 피어 있다. 꽃들은 제자리을 지키며 어울린다. 저마다 주어진 색깔의 천분(天分)을 거스르지 않는다. 자연의 조화요 질서이다. 나는 주변의 문사(文士)들을 떠올린다. 글에도 색깔이 있다. 파랑으로 빨강을 대신할 수 없다. 저마다 타고난 것을 숨길 수 없다. 그것이 개성이고 글로써 드러내는 것이 역할이다. 단지 다루는 솜씨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색깔은 천분이지만 역할은 솜씨에 따라 갈린다. 나는 내 색깔을 드러내며 기품과 경지를 보이고 싶지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재능은 솜씨의 필요조건이지만 절대조건은 아니다. 재능이 있더라도 끈기가 따르지 않으면 일회용이 되기 십상이다. 재능에 끈기가 따라야 깊은 우물을 팔 수 있다. 우물이 깊으면 물맛이 시원하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글샘은 끈기가 따라도 목마른 우물이기 일쑤다. 그런데도 인생을 건 숙업이라면 우물을 팔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원하게 마시고 싶다.
개성과 재능이 있고 끈기가 따라도 새로운 발상이 따르지 않으면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새로운 발상은 무한대의 광맥으로 비길 수 있다. 그 광맥의 발견으로 새로움을 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영감은 상상력에 있고 그것이 창조성이다. 그러니 우물 안 개구리는 작은 하늘밖에 볼 수 없다. 우물 밖으로 열려 있는 무한대의 하늘은 새로운 발상의 원천이다. 하늘을 마음대로 날고 별나라에 이르는 상상력은 미지의 꿈이다. 그런 꿈을 바구니에 담을 수는 없을까.
이제 고요로 드는 도량(道場)이다. 모퉁이에 바위가 웅크리고 있다. 발을 멈추게 한다. 이따금 지나가는 바람이 씻어주고 새들이 말을 걸지만 부동의 선정이다. 내 바구니에 고요를 담지 못하더라도 뜻을 접은 것은 아니다.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다. 새해 초 어느 수필지에서 소망을 물어왔다. 별로 망설이지 않고 석굴암 부처님의 미소 같은 글을 한 편 쓰고 싶다고 했다. 주제넘다 해도 발원일 뿐이다. 쓰고 싶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 틈새와 어긋남을 좁혀가고 싶다.
막상 쓰고 싶은 것이라 했지만 잘 잡히지 않는다. 관념의 모호함 때문이다. 그만큼 글도 인생도 ‘이렇다’고 딱히 말할 두 없다. 어쨌든 어려운 일이다. 글이 곧 사람이 아닌가. 숲속 오솔길을 빠져 나온다. 바쁜 삶 가운데서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루터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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