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의 산책 / 김미원
온갖 꽃들이 아우성치며 피어나고, 꽃이 진 자리에는 연두빛 새순이 제 살을 키워가던 화창한 봄날. 지인의 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하려고 성장을 하고 길을 나섰다. 봄기운이 내 몸까지 전해져 다소 높을 것 같은 7cm 하이힐을 신고 발걸음도 경쾌하게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걸었다.
조금 지나자 오랜만에 신은 높은 구두 때문인지 무릎이 시큰거리는 듯했다. 이제 이런 신발도 못 신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지하철역 하행 에스컬레이터 틈에 뾰족한 구두굽이 끼어 헛발질을 하다가 그만 넘어져 버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걱정스런 눈길을 보냈지만 나는 창피한 느낌보다는 이제 멋스런 신발과는 안녕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 아팠다. 집에 돌아와 신발장을 열어보니 굽 높이가 거의 다 5cm가 넘는 것들이었다. 그동안 키를 감추느라 단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굽 낮은 구두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구름 속의 산책’ 이라는 신발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신발이 편하면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 들까. 일탈까지는 아니지만 일상을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기대하는 여행객이 되어 비행기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름은 얼마나 환상적이었던가. 몽실몽실 포근한 구름 위를 산들산들 걷는 내 모습을 그리며 호기 있게 가게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에 진열된 신발은 킬힐은 물론 5cm 정도의 굽도 없었다.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하이힐을 신고 구름 위를 산책할 수는 없는 게 아니겠느냐고 나를 위로하며 굽 낮은 무난한 구두를 샀다.
신발은 패선의 마지막 정점이다. 멋쟁이는 신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옷에 맞춰 굽과 디자인, 색깔을 선택한다. 친구들 모임에 가 무릎이 아파 높은 신발을 못 신겠다 했더니 벌써 그러냐는 듯 모두들 큰 소리로 웃어 나는 머쓱해졌다. 하긴 10cm 넘는 굽을 신은 친구도 있으니….
내 약한 무릎은 모계를 닮은 듯하다. 엄마는 세상에 나올 때 달고 나온 무릎이 닳아 없어져 사람이 만든 관절을 넣는 수술을 하셨다. 수고를 다한 엄마의 무릎은 나이 77세의 인공관절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무릎 통증이 심해 걸을 수 없던 어머니는 한 때 무릎으로 기어 다녔다. 초인종을 눌렀더니 어머니가 현관까지 기어 나와 문을 열어주시는데 차마 송구해 바라볼 수 없었다. 수술에 대한 염려도 있었지만 더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수술을 권했다. 수술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앉았다 일어날 때 누군가 부축을 해 주어야 하고 날씨가 추우면 수술한 부위가 굳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어느 정도의 통증을 안고 살아야하고 ‘여포화(여자를 포기한 신발)’를 신어야 하지만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을 맘대로 가실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보여 지는 것에 대한 욕망이 강한 만큼 키가 중요한 잣대가 되는 세상이다. 과년한 딸은 얼마 전 소개팅이란 걸 하고 들어와 다른 조건은 다 좋은데 남자 키가 작다며 딱지를 놓았다고 당연하다는 듯 말을 했다. 나는 얼굴도 보지 못한 그 젊은이가 안 되어 보여 사람의 중심을 보라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외국여자들이 출연해 한국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던 프로그램에서 한 미녀가 키 작은 남자를 루저(loser-실패자)라고 해 시청자들로부터 여론의 물매를 맞아 결국 그 프로그램이 폐지된 적이 있었다. 요즈음 인물은 성형해도 되지만 키는 크게 늘일 수 없으니 남자들도 키높이 구두를 신는다. 허상일지라도 높은 굽을 신으면 일단 키가 커 보여 기분이 좋아진다. 또 여자가 하이힐을 신으면 라인이 살아 다리가 길어 보이고 날씬해 보인다.
대학 다닐 때 나도 요즘 말하는 킬힐을 신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하이힐이 아니라 구두 앞 코부터 귀까지 굽이 높은 통굽이 유행했던 시기라 땅에서부터 구두 본체가 10cm 이상은 떨어져 있어 신발을 벗으면 구두에서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높은 구두와 친해지고 싶은 게 욕심임이 분명해졌다. 나는 작은 키를 그대로, 내 몸 그대로, 본질 그대로 보여야하는 나이가 되었다. 무엇으로 내 본질을 드러내야 하나. 엄마처럼 무릎도 아프지 않고 평생 르네 마그리뜨의 그림에 등장하는 툭 치면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파아란 하늘에 떠다니는 하얀 구름 속을 거니는 걸음걸이로 살아가고 싶다면 욕심이려나.
신발가게를 나오며 한 편의 풍경화 같았던 오래된 영화 <구름 속의 산책>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수확한 포도를 커다란 통속에 집어넣고 주인공인 키아누리브스가 여주인공과 손을 잡고 춤을 추며 포도를 밟던 장면 말이다. 줄거리도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포도를 으깨는 행복한 표정의 남녀 주인공의 모습만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몽실몽실한 포도가 발바닥을 간질이는 느낌일까. 알알이 포도가 내 발에 밟혀 포도즙이 되고 와인이 되는, 조금은 취한 기분으로 일정한 형체도, 머무는 곳도 없는 자유로운 구름처럼 남은 세월을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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