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뒷다리 / 간복균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공휴일이다. 모처럼 시외로 빠져나오니 우선 가슴이 트이고 별천지의 기분이 들어 공휴일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생각이 몇 번이고 든다.
우연히도 커다란 8톤 터럭에 까만 돼지들이 소복이 실려간다. 어린 자식 놈이 신기한 듯 “아빠, 돼지 좀 봐.” 즐거운 기분에 또 하나 구경거리가 생긴 셈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탁 트인 고속도로 옆에 펼쳐진 옥색 가을 하늘과 단풍을 보는 기분으로 즐거웠는데, 이젠 돼지들의 여행이 새 구경거리가 된 셈이다.
왜 그렇게 시골길이 아닌 고속도로를 달리는 돼지들이 신기해 보이고 즐거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가 고속도로 여행에 익숙하질 못했던지 뒤쪽 맨 가의 트럭 바깥쪽에 뒷다리를 내놓고 있었다. 돼지를 싣기 위해 약 1m 정도의 울타리를 쳐 놓았는데 어떻게 했는지 뒷다리 한 쪽이 빠져 나왔다. 이놈은 육중한 몸으로 뒷다리 하나를 안전한 차 안으로 들여 놓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연거푸 시도를 하며 애를 쓰도 허사다. 자가용을 타고 그것을 뒤쪽에서 지켜보던 우리 식구들은 또 하나 재미있는 볼거리를 발견한 것이다.
돼지는 뒷다리를 울 안으로 들여 놓으려고 잠시 번쩍 들었지만, 수 초 후 도로 바깥으로 빠져 나온다. 그때마다 흥밋거리로 조마조마하며 보던 우리들은 “와아!” 하고 웃어 버렸다. 돼지는 그와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되풀이 했고, 다섯 명의 우리 식구들은 그때마다 또 되풀이해서 웃었다.
돼지란 놈이 다리를 들여 놓으려고 엉덩이를 움찔움찔하고 다리를 들먹들먹할 때는 우리 집 애들은 “으샤! 으샤!” 힘을 같이 주었다. 마치 운동시합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뛰는 선수에게 ‘용기를 내라!’ 하는 식으로 응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힘이 다해 들먹이던 다리가 촌지의 난간을 넘지 못하고 허공에 내려질 때면 “에이~.” 하는 실망과 아쉬운 탄성을 참지 못했다. 차 안은 어느 틈에 1984년 10월에 한국 청소년 축구가 4강전에 올라 준결승전을 볼 때의 흡사한 분위기가 되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돼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착추를 구부리고 엉덩이를 쩔룩쩔룩, 뒷다리가 들먹거리면 우리 모두는 같은 마음이 되어 어금니를 깨물기도 했다. 울타리 난간에 다리가 거의 들어가고 5cm쯤 남아 돼지 발톱만 보일 때면 곧 돼지 다리가 안으로 들어갈 것 같은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에 “어, 어! 조금만!” 하는 것은 축구 준결승을 볼 때에 상대방 패널티 박스 안에서 슛을 할까 말까한 순간에 “슛, 슛!” 하고 소리치며 보던 그런 기분과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돼지가 5cm 남은 그 난간을 넘지 못하고 힘에 지쳐 허무하게도 털썩 허공의 트럭 밖으로 다리 한 짝이 떨질 때면 결정적인 노 마크 순간에 어이없이 실축을 해서 볼이 빗나갈 때의 아쉬움과 낙담의 기분으로 “에이, 신경질 나!” 하는 것과 똑같았다. 그러나 축구 준결승을 볼 때는 멋있게 슛이 터졌을 때는 “와아!” 하고 함성이 터졌었는데, 그런 후련함이 없다. 우리 식구들이 그토록 응원과 성원을 보냈건만 끝내 그 돼지는 밖으로 빠져나간 하나의 다리를 끌어들이지 못했다. 국제 운동경기에서 꼭 이겨야만 될 게임을 진 기분이었다. 온종일 돼지 생각을 잊지 못했다.
모두들 공휴일 하루를 유원지에서 즐겼지만 나만은 그렇지 못했다. 그날 저녁 잠자리를 들 때까지 자꾸 그 돼지 생각이 났다. 처음 그 모습을 볼 때는 흥밋거리로 보았고, 또 마음이 변하여 운동 시합에 이겨 주기를 바라며 응원하고 성원하는 마음으로 변하고, 돼지가 뒷다리를 차 밖으로 늘어뜨린 채 부산 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볼 때는 꼭 이겨야 할 시합을 놓친 것 같은 기분에서 아쉬움을 저버릴 수 없었고, 하루가 지난 지금 잠자리에 든 시간에는 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그 돼지를 실은 트럭을 세우고 내 손으로 그 혼신의 힘을 다해 넣으려는 뒷다리를 차 안으로 쑥 넣어 주고 그 낯모르는 돼지의 토실토실한 엉덩짝을 탁 한 대 때려 주고 싶다. 그렇게 하지 못한 지금의 기분은 하잘것없는 돼지 짐승이나마 퍽 안됐고 측은한 생각이 든다. 그 돼지는 어디까지 가는 차를 탄 것일까? 또 가서는 어떻게 될까? 그 뚱뚱하고 커다란 몸집으로 봐서는 분명히 도살장으로 가는 돼지다. 그런데도 그 순간만을 모면하려 그토록 기를 쓰며 애를 쓴 것이다.
그런데 나 역시 그 돼지의 다리가 지금도 궁금하다. 도착지까지 가는 동안에 그 다리를 끌어들였을까? 어쨌을까? 끝내 기진한 채로 못 끌어들였을까? 그 돼지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어떻게 되었을까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 트럭에는 같은 운명의 수십 마리의 돼지가 있었다. 그러나 열굴도 모르는 그 돼지의 뒷다리만 생각하면 여전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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