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씀대로 / 유혜자
선배님 댁에서 품격 있는 반닫이를 만났다. 귀한 고가구를 갖고 계시다고 했더니 문을 열어 안을 보여주시는데, 개켜둔 와이셔츠 사이로 한지로 바른 바닥의 글씨들이 또렷하다.
글씨를 보니 6‧25 전 할머니의 백동 장석이 달려 있던 반닫이가 생각났다. 반닫이는 크기나 폭, 높이의 비례, 재질이나 구조 그리고 금속장석의 형태에 따라 지방색이 뚜렷하게 구별되었는데 백동장석을 단 것으로 충청반닫이였던 것 같다. 할머니는 옷과 버선 등을 넣어 두었는데 어느 날 밑바닥에 소중하게 간직했던 두루마리 서첩을 얼핏 보았다. 9‧28 수복 후 피난지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 집은 폭격으로 불타버려서 허망했다. 한숨을 내리 쉰 할머니께서는 소치(小癡) 허련(許鍊)선생의 병풍과 반닫이에 있던 어머니가 시집올 때 써온 서첩이 타버려서 아깝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분들의 생존 시에 그 서첩에 무엇이 쓰여 있었는지 여쭤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반닫이는 살림에서는 검소하고 겸허한 것을 요구하던 것이었으나 한때 대청마루나 거실에서 터줏대감처럼 뽐내던 시절도 있었다. 6‧25한국전쟁으로 남아 있던 목가구들이 불타버려 귀한 데다 1970년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집도 없애고 좁은 길도 넓히고’ 하던 시절, 시골 골방에 있는 반닫이마저도 고물장수의 손에 넘겨지고 번들거리는 호마이카 장롱이나 철제 캐비닛으로 바뀌었다. 그 후 민속가구의 진가가 다시 평가되고 클래식한 것이 모던한 것이라고 수집 붐이 있어 민속가구를 사들인 이들이 대청이나 거실에 놓아두고 자랑을 했었다.
느티나무, 감나무, 소나무 등 천연재료 그대로를 사용하여 앞면의 반쪽을 여닫을 수 있게 만든 작은 반닫이는 소박한 자연미와 조형미를 갖추었다. 구조(構造) 면에서도 선과 면이 잘 배분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 키가 작은 반닫이라고 광에 이르기까지 쓰인 다목적 가구였지만 강화반닫이 같은 고급품은 왕실에서도 쓰였다고 한다. 본시 화류장이나 자개장처럼 화려하지 않아 비단옷이나 패물보다는 검소하고 실용적인 것들을 품어 안았다. 이불장이 없는 좁은 집에서는 이불까지 개켜서 얹어놓고 지냈다.
선배님 댁의 고급반닫이는 어렸을 때 자주 본 소박한 반닫이가 아니고 유명한 강화반닫이다. 우선 높이가 다른 지역의 것보다 높고, 두꺼운 무쇠장석에 만(卍)자를 부각(透刻)하여 장식했다. 중심의 표형(表型) 경첩과 그 아래 배꼽장식까지 있어 화려하다.
고가구는 나이 들어도 대접 받는데 뒷방에서 노쇠해가는 선배님이 안타깝다. 선배님은 돌아간 남편이 아끼던 반닫이인지라 머리맡에 놓아두고 애정을 쏟고 계셨다. 신작로처럼 밝지 않고, 아늑한 골목처럼 간직하고 싶은 것을 은근하게 넣어두기에 좋은 반닫이, 은은한 그리움을 품고 만자, 아자 무늬를 보면 삶의 진실과 깨달음으로 남겨 놓은 남편의 정서나 유품을 귀중히 여기고 있다. 선배의 부군은 찬란한 꿈이나 얼토당토않은 허명에 사로잡힐 때 단정히 앉아 글을 읽던 선비의 안빈낙도를 떠올리고, 청렴하고 개결한 선비의 기품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할머니의 반닫이 밑에 간직했던 어머니의 글씨가 고급내용을 담았었을 것으로 짐작해보고 싶다. 소혜왕후(昭惠王后)가 부녀자들의 훈육을 위하여 <소학> <명심보감> <예교> <열녀>에서 행실과 도리에 긴요한 부분을 간추려 만들었다는 내훈(內訓) 중에서 또 간추렸을까. 시집올 때 적어온 것이라면 기본적으로 부녀자에게 필요한 언행이라든가 시부모에 대한 효도, 남편을 어떻게 섬기야 하는 일들을 적었을 법하다. 나아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 것까지도 써오시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선비 집안에서 자랐지만, 묵향에 젖지 못하고 출가해온 처지에 자녀만은 반듯하고 품격 있게 살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달빛 흐르는 밤에 두루마리라도 펴보셨을까. 강화반닫이 위에 놓아둔 선배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니 어머니의 젊을 적 모습이 환상처럼 스쳐간다.
반닫이는 과장과 허식으로 꾸민 화려한 가구처럼 모든 문이 열려 바닥까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반닫이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한 가지 꿈 쯤 감춰두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바닥의 비밀을 갖고 싶어 한다. 세상의 모든 문이 다 열린다 해도 반만큼은 닫고 있는 반닫이에 믿음이 가고, 거무스레하게 변색된 나뭇결의 은은한 무늬에서 주제넘은 욕심 나무람도 느낄 수 있다.
단 한 번의 실족으로도 바닥에 널브러질 수 있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바닥이라고 일러줄 것 같다.
선배님 댁의 반닫이는 그 댁의 가풍을 지켜주고 그 댁의 상징으로 남아서 살아 있는 가족들의 맥박과 가락에 스며서 이어질 것이다.
우리 집 반닫이의 바닥에 있던 서첩엔 인생의 지혜가 함축되어 있는 말씀들이 있었을 것이다. 역지사지 남의 입장이 되어 보라고 자주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도 씌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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