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15개의 창은 한 그림이다 / 박정희

15개의 창은 한 그림이다 / 박정희


 

 

세상이 덜 깬 시간이다. 일요일 꼭두새벽부터 희뿌연 연기가 쉼 없이 산등성이를 타고 오른다.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를 막으려 자라목처럼 움츠리지만 시선은 부지런히 그 움직임에 머물러 있다. 바람 한 점 없는데도 제 갈 곳을 찾아가는 모양에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형상에서 바삐 가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우중충한 날씨만큼이나 무거운 시간이다. 모두가 자신의 그림자를 얼굴에 실은 탓인지 태산을 짊어진 사람처럼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자불거리는 아이 하나 없이 묵묵히 마지막 배웅을 한다. 그들은 가슴속에 제각각 크기와 무게가 다른 정한의 덩어리를 끌어안고 있을 터이다. 남의 일일 때는 죽고 사는 일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대범한 척하지만 정작 피붙이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에게는 그 안타까움의 크기를 어찌 재겠는가.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순간이다. 왔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는 시간. 영과 육을 분리하는 공장. 죽은 자와 산 자를 가르는 화장장은 고인이 남녀노소 누구든 간에 똑같은 절차를 밟는다. ‘얼마나 멋진 인생을 살았는가.’얼마나 높은 자리를 차지했는가.’에 따라 다르지 않다. 모니터의 마무리 작업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순순히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15개의 모니터에서는 각각의 예정된 시간에 맞춰 시신을 밀어 넣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마지막 이별을 안내한다.

모니터는 떠나보내는 작업을 진행한다. 자막이 아무개 준비 중이더니 금방 화장 중이라는 말로 바꿔치기한다. 이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만 간간이 반복할 뿐이다. 열다섯 개의 창 너머에서는 한 곳도 쉬지 않고 두어 시간 남짓 만에 연기와 한 움큼의 재를 만든다. 부지런히 돌아가는 중이다.

대합실은 말 그대로 북새통이다. 혈육을 배웅하는 상주들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천정을 찌를 듯한 통곡소리가 차츰 낮아지면서 유족들은 넋을 놓고 멍하니 모니터만 주시한다. 망인의 이름이 적힌 모니터 앞 긴 의자에 몸을 맡긴 채, 함께한 날을 훑고 있는 모양이다. 비통한 표정으로 못다 나눈 정한을 중얼거리며 지난 시간을 곱씹는 모습도 보인다. 자신의 아픔을 덜어내고 망인의 용서를 비는 마음일까. 울먹이며 독백으로 그간의 인연을 매듭짓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찌 마음에 맺힌 날이 없었으랴. 원과 한이 있다한들 떠나보내는 마당에 어찌할 수 없지 않은가.

삶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죽음은 비껴가지 않는다. 엄연한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망자도 주어진 시간을 누리려 아등바등 살며 희비쌍곡선을 그렸을 터이다. 맛깔나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존재감을 키웠으면 좋으련만 시간에 쫓기고 알 수 없는 힘에 휘둘리다 결국 오늘을 맞이하지는 않았을지. 의식하든 아니든 누구나 맞이해야할 일이고 언젠가는 내 차례가 될 일이기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들의 눈물과 애달픈 마음이 전염되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누구나 왔다 가는 길이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에 애통하지 않을 수 없지만, 누구나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기에 자신을 반추해 볼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의 의미를 강조하려는지, 야속한 모니터 화면은 푸른 바탕만 계속 보일 뿐 벽 뒤쪽의 작업을 짐작하지 못하게 한다. 좋은 곳에 가서 고통 없는 삶을 살기를 기도하지만 삶 자체가 고통이라면 영면에 드는 순간이 고통을 털어버리는 일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다시 태어나는 윤회가 꼭 반가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한동안 오열하던 소리가 잦아드나 했더니 모니터를 따라 여기저기 옮겨간다. 또 다른 모니터 앞에서 살을 째고 소금을 치는 듯한 울음소리가 다시 공기를 가른다. 통탄스런 마음이야 하나겠지만 더 울 수 없을 만큼 비통하게 몸부림치는 유가족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 속의 망인이 젊고 나이 듦에 관계없이 오열을 토하는 것도 잠시일 뿐이다.

모니터의 마지막 문구를 기다린다. 15개의 모니터 앞에서 우는 것조차 지친 유족들은 멍한 눈빛으로 작업이 어서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일이 없는 망인을 보내며 나의 머릿속에는 내일 해야 한 일을 챙긴다. 그 와중에도 산 사람이 내일을 찾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스스로 생각해도 야멸찬 분별심이지만 어차피 떠나간 사람, 어서 정리하고픈 계산이 마음 바닥에서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