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Yes)와 노(No) / 김요영
‘B와 D사이에는 C가 있을 뿐이다.’
시청률이 제법 높은 MBC의 주말버라이어티 <무한도전>에서 MC 유재석이 오프닝 멘트로 소개한 말이다. 그날 주제는 yes or no 였으므로 고정 출연자들이 촬영장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아무런 준비 없이 무조건 ‘예스와 노’중에 선택을 하면 그 선택에 해당하는 질문에 따라 벌칙을 주는 황당한 행위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날은 방송이 끝날 때까지 두 가지 중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각자의 미션이 달라졌으므로 멤버들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촬영을 했다. 아침식사로 자장면과 짬뽕 중 선택을 해야만 했던 순간부터 그들의 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으므로 시청하는 나로서는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궁금증을 유발하여 재미를 더했으나 정작 본인들은 손에 땀이 나게 만들었음에 틀림없다.
사르트르는 이처럼 매순간마다 결정을 내리며 살아야 하는 인간 심리를 ‘B(birth)와 D(death) 사이에는 C(choice)가 있다.’로 압축하여 표현했다. 얼마나 적절한 비유인가.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수히 많은 예스와 노 사이에서 방황한다. 태어남은 불가항력이었지만 그 후의 인생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도 있으므로 신중함이 요구되지만 대부분은 그냥 별 망설임 없이 결정하면서 살아간다.
죽음이 그 선택권을 거두어 갈 때까지 간혹 잘못된 선택에 때늦은 후회를 해보기도 하고 떠나간 세월에 ‘만약’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만약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하고 헛된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나도 오십 년을 살아오면서 한 순간의 판단으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가. 일일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자잘한 오판이 결코 적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만큼 큰 잘못 없이 살아온 걸 보면 다행이지 싶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도 난 생각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로버트 프루스트, <가지 않은 길> 중에서
그러나 아직도 나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부족한 것은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한이 아니라 지금도 옳게 가고 있는 것인지, 매 순간을 가장 현명한 쪽으로 선택을 하고 있는지 확신이 안 드는 까닭이다. 비단 나 혼자만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믿기가 어려워짐은 또 무슨 연유일까.
불혹도 지나 지천명의 나이에 입성했지만 세상의 유혹은 끊임없이 나를 스치며 지나가니 하늘의 뜻을 알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또 얼마나 많이 남을 가르치려 했던가. 나잇값도 못하고 사는 셈이다.
오늘도 하루 종일 예스와 노에 노출되어 있었다. 찌개를 끓일까, 아니면 국을 끓일까. 소소한 먹을거리부터 지금 자정이 훨씬 넘었는데도 계속 이 작업을 할 것인가까지 계속 맘속으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제 잠자리에 들면 내일 활동에 지장을 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결국 기나긴 인생도 순간순간 선택의 연속인 것을 박장대소를 하면서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본 TV의 한 프로가 일깨워 준 셈이다. 그냥 웃고 지나쳐도 아무도 책망할 사람은 없지만 웃음을 주려고 선택했던 아이템이 한 시청자의 뇌리를 스치게 하여 잠깐이라도 인생을 재고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고마울 뿐이다.
그리하여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조금만 더 신중할 수 있으면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 보면 세상을 보는 안목이 조금씩 나아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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